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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un 10. 2023

푸르고도 우울한 나의 6월


몇 번의 사랑에 실패한 20대의 어느 날. 결혼은 30살이 넘어 늦게 늦게 하겠다고 선언했던 적이 있다. 열심히 일하고 솔로라이프를 즐기다가 나중에 결혼할 거라며 당당하게 말하던 나를 보며 부모님은 그래라 하며 허허 웃곤 하셨다.


하지만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었던가. 나의 당찬 선언이 있던 그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해 버렸다. 조금은 민망하고 귀엽기도 했던 나의 20대 시절. 우리는 반드시 결혼해야 할 운명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녹음이 짙어지던 초여름 사랑도 덩달아 짙어져 사뿐사뿐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던 눈부셨던 6월의 우리.


6월이 오면 10년 차 주부인 겉모습과는 달리 마음만은 산뜻해진다. 집안일을 하며 거실을 이리저리 다니다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면 살짝 보이는 푸릇한 나무의 끝에 시선이 머무른다. 우울하기만 하던 일상에서 겨우 마음이 누그러지는 시간이다. 사랑까지 짙어지던 그때의 6월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저녁이면 돌아올 남편이 문득 보고 싶어 진다.




한 달 전, 병원문을 나서는 나의 손엔 약봉투가 들려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닦아대는 나에게 우울증 약을 처방해 주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멍한 기분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차로 돌아와서 생각하니 정말 우울증이 맞는구나 라는 깨달음에 다시 한번 펑펑 울어버렸다.


아침이면 무기력한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고 입맛이 없어 요거트 하나로 하루를 버티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랑한다며 양쪽에서 나를 꼭 안아주는 두 아이들이 있다는 것. 아이들의 사랑으로 간신히 웃고 늦은 밤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하면 또 한 번 웃을 수 있다.


6월이 왔으니 흐릿하기만 한 내 마음도 다시 푸르게 짙어질 수 있을까. 더위가 몰려와 내 무거운 마음을 쫓아내 줄 수 있다면. 싱그러운 초여름을 닮았던 10년 전의 나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면. 나는 이제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몇 발자국만 걸어도 푸릇한 나무들이 보인다. 6월엔 나무를 보며 많이 걸어야겠다. 걷다 보면 언젠가 나무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 이제는 그만 울어볼까 생각도 해본다. 푸르른 6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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