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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Jan 17. 2018

다들 가끔씩 불행하면서
살지 않아요?

그렇게 살다가 또 행복해지고 그런 거고 

용하다는 곳에서 사주를 봤다.


사주에 따르면 올해 나는 임신을 한다. ‘남친이 생기나요?’라고 물었더니 남자친구는 2019년에 생긴단다. 아니,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수도승 같이 살고 있는데? 사주 상으로 나는 지금 연애 운이 대번성하는 때를 만나서 남자가 득실득실하단다.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피부 트러블이 대번성해서 나날이 못생겨지고 있고 하루 종일 보는 남자라고는 유부남 부장님밖에 없다고요. 아무래도 연애는 글렀다 싶어서 이직을 물으니 연말에 좋은 회사에 이직할 수 있단다. 역시 용한 곳은 다르다고 감탄하며 밖으로 나왔다.  


아침마다 카카오톡 운세를 보고 뭔가 안 풀린다 싶을 때는 타로나 사주를 보러 간다. 매일의 운이 다르기에 운세를 보는 것도 언제나 새롭다. 




처음 본 타로는 맞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운을 점친 건 중학생 때였다. 우리 동네에 유명한 타로 아줌마가 있었다. 


길거리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3000원을 내고 카드를 몇 개 고르면 아줌마가 ‘네 주변 남자 중에 널 좋아하는 애가 있어!’라는 식의 점괘를 내주었다. 


‘아줌마가 여름에 남자친구가 생긴다고 했는데 진짜 여름이 되자마자 남자친구가 생겼다’


는 식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온 아이들이 긴 줄을 섰다. 


카드를 뽑기 전에 진학, 건강, 이사 등등의 카테고리 중에서 하나를 골랐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연애를 점쳤다. 주로 ‘언제쯤 생길까요?’가 궁금했고 썸남이 있으면 ‘걔가 왜 고백 안 하죠?’가 문제였으며 남친이 있으면 ‘얘가 나 좋아하는 거 맞아요?’라고 하며 아줌마를 찾았다. 


어떤 이유로 카드를 뽑건 아줌마는 ‘예쁜 사랑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뽑아’라고 했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을 점치는 거라면 내 간절함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하는 의심은 무슨 ‘제발 남친 생기게 해주세요.’라고 생각하며 카드 한 장 한 장을 뽑았다. 그리고 ‘다음 달에 남친이 생길 거야!’라는 아줌마의 말에 설레곤 했다. 


결과적으로 아줌마의 말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친구들의 연애는 기막히게 맞히던 아줌마였지만,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 연애를 시작하는 건 맞히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본 사주는 꽤나 용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사주로 운세를 봤다. 처음으로 찾은 사주카페의 아저씨는 생년월일을 듣고 책을 몇 번 뒤적이더니, 근 10년간 끊임없이 외국에 나갈 거라 했다. 곧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남자를 만나지만 결혼할 사람은 아니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절을 조심해야 한단다. 


아이고, 내가 한두 번 속냐! 칼 졸업하고 취업할 4학년에게 외국은 무슨 외국이며, 당시에는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타고난 통뼈인 20대 초반에게 관절 건강에 대한 경고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곧 잊어버렸다. 


어쩌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이후 졸업유예까지 해가며 없는 돈 있는 돈 쥐어짜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고, 시끌벅적하게 꽤 오래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줄넘기하다 무릎을 다쳐서 비 오는 날이면 무릎이 시큰거리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몇 년이 지나서 그 사주 아저씨를 다시 찾아갔을 때는 이미 당시 유행하던 대만식 카스테라 가게로 바뀐 후였다.  


이것저것 더 물어볼걸..


행운도, 불행도, 결국 나의 인생인 것을


그 이후로도 나는 꾸준히 운을 점친다.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아니 그래서 도대체 운세를 왜 본다는 거냐?라고 묻는다면, ‘운세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서 본다’라고 답해야겠다. 


운세에는 굴곡이 있다. 나쁜 시기가 있으면 좋은 시기도 있다. 대체로 좋은 시기가 더 많은 운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시기가 반복되는 사람도 있다만 어쨌든 그렇다. 


그래서 ‘2018년에는 삼재라 힘들어요.’라는 운세가 나오더라도 ‘2023년쯤에는 일이 술술 풀리네요.’ 하는 희망적인 말을 들을 수 있다. 비트코인 급등 같은 대박은 없는 인생이라도 ‘언젠가는 다 잘 된다.’는 위로를 들을 수 있으니 치킨 한 마리 값 정도 되는 복채의 대가로 나쁘지 않다 싶다.  


오늘 내 운세는 최악이다. 되는 일이 없고 건강도 조심하란다. ‘아, 이래서 오늘 아침에 상사님이 나한테 그렇게 화를 냈구나!’ 하며 언제쯤 운세가 좋아지는지 살펴본다. 안 좋은 운세가 연속해서 나올 때도 있지만, 일주일에 하루쯤은 좋은 운세가 나오니 그 운수 좋은 날을 기다리며 힘든 오늘을 버텨낸다.  




추신 1.

다른 사람에게 운세를 믿으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나도 2023년에 잘 풀린다는 한마디 말보다는 눈앞의 치킨 한 마리가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으니까.


추신 2.

애 아빠 어디 계시나요? 참고로 전 보수적인 사람이랍니다. 그래도 혹시 아나요. 내 생각이 바뀔지.


*본 글은 원문입니다. 편집본은 (http://20timeline.com/935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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