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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틈 Aug 24. 2023

어린이의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

나는 어쩌다 글방을 시작하게 되었나

드디어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올여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글이 책이 된 것이다.


어린이의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은 타임캡슐이 공개될 훗날을 고대하며 추억을 모으는 교장 선생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야 빛을 발하는 무척이나 진득한 일이다. 성과가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 명예직. 그래서 누구나 쉽게 하지 못하기에 나는 깨나 자부심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다.


"이 의미 있는 일을 행복하게 하고 있어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라고만 말할 수 있다면 마음도 떳떳하니 더할 나위 없겠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고 힘겹게 연명 중이다. 

생소하고도 희귀한 일인 만큼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번 책을 받은 모든 분들이 감동을 하고 찬사를 보냈지만 내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 건 역시나 돈 때문이다. 노동 대비 한참 돈이 안 되는 이 일을 어쩌다 시작하게 되었나. 그것도 자발적으로.


상당히 복합적인 이유다. 난 오래전부터 '내 일'을 하고 싶었고, '내 일'을 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탐색을 해야 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다. 한글을 떼고 알게 된 문자가 문장이 되었을 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학년이 올라가 글쓰기 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지면서 처음으로 나의 글은 상이 되었다. 쓰는 글마다 어른들로부터 칭찬과 감탄을 받았고, 상장이 주어졌다. 나 스스로 글쓰기를 좋아한다거나 잘 쓴다는 생각이 퍽 들지는 않았지만, 글을 쓰면 받는 따스한 관심들이 좋아서 계속 글을 썼던 것 같다. 어느새 글쓰기는 나의 곁에 머무는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글쓰기가 유용한 순간들도 많았다. 학창 시절 수행평가는 물론이고 대학교 교양 글쓰기 수업에서, 자기소개서나 논문을 써야 할 때 두려움 없이 글을 썼다. 한 번은 인턴 면접을 볼 때 면접관님께서 개인적인 질문이라며 던진 질문도 있다. 자기소개서를 보니 글을 잘 쓰는데 글을 쓰는 원동력(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의 글이라면 늘 반갑게 맞아주신 엄마의 영향이라고 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글쓰기를 나만큼 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동생은 글쓰기를 끔찍이 싫어했고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는 거부감이 극에 달한 듯 막막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실마리를 찾았다.


내가 경험한 글쓰기를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전달하자!

문틈글방 초기 기획의도

평가의 두려움 없이 마음 놓고 편히 내놓을 수 있는, 혹은 돌아올 칭찬을 기대하는 쓰기의 장을 만들자. 글쓰기를 처음 마주하며 형성되는 첫인상을 책임지자는 마음이었다. 평가와 경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나의 글방만큼은 열렬한 관심과 따스한 칭찬, 다정한 환대로 무장하자는 의지를 품고 아이들을 만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나의 글쓰기를 만들어준 그때의 '엄마'가 되기로, 칭찬과 감탄을 보낸 그날의 '어른'들이 되기로 한 것이다. 나의 작고 소중한 글방, <문틈글방>은 그렇게 막을 열었다.


고민은 이어졌다. 나의 글쓰기 수업은 타교과의 수업과 달리 주입식 강의가 아니기에 보다 긴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강의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더 풍부한 경험을, 오래 남을 기억을 선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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