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오늘을 추출하는 예술가

오, 늘 오늘입니다

by 수연


거대한 두 손 끝을 살며시 모아 맞댄 채 오랜 세월을 보낸 듯한 엷은 갈색 빛 동굴의 아치 너머로는 수평선이 희게 그어진 바다가 흐르고 있다.

단 1그램, 1초의 차이로도 물결과 파도 모양만큼 수없는 변화를 빚어낼 수 있는 세계. 단지 코와 입의 즐거움을 좇아 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생생하고 오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맡고 맛보고 느끼는 순간 밝은 덧문이 차곡차곡 열리며 확장되는 감각을 발견하고 선사하고 싶었다. 여유, 라고 불러도 좋고 향유라고 불러도 좋겠다. 살아가면서 줄곧 뒷전으로 밀리고 잊어버리기만 했던 두 요소를 마음의 한복판으로 끌어내는 경험. 지치지 않고 꾸준히 살아가려면 오히려 이것이 필요했다. 삶에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라고, 혹은 살짝 누락되어도 별 탈 없을 것같이 여겨지던 측면. 나는 오르고 달리고 도착하는 일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에 집중하고 견디는 것을 넘어서 그 시간과 공간과 혼연일체가 되어 녹아드는 경험. 나는 육체로서 귀결되는 존재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시각각 바뀌는 생각들에 국한된 존재만도 아니었다. 지금도 한마디로 나를 정의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탐구와 탐험이 가능한 넓이와 깊이, 그리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오대양 육대주보다도 멀리 나아갈 수 있고, 혹은 지금 내가 새롭게 발들인 향미의 세계에서 만날 대략 300여 종으로 알려진 향과 맛과 바디감보다는 더 다양한 화학반응들과 느낌, 색채, 그리고 성향들을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 이름하여 바리스타.

바리스타는 요컨대 커피라는 매개로 당신에게 자로 재거나 셈해서는 얻을 수 없는 빛깔의 정신과 분위기, 명료함을 전하는 사람이다. 빠르게는 18초, 대부분은 25초에서 30초간 이어지는 집중된 마음과 동작이 빚어낸 진하게 농축된 한 잔으로 그 즉시 자신은 물론 당신의 기분을 전환시키고 원하는 힘을 주며 세상에서 가장 고소하고 향기롭게 당신을 응원한다. 나 역시 바리스타를 꿈꾸고 직접 커피를 배우기 이전에는 그러한 세상 가장 감미로운 방식의 응원을 받기만 해온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손수 빚어내고 연출하고 전할 수 있다. 굉장히 인간적인 21세기 화학자이자 한 잔의 추상화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매주 놀빛이 짙어지고, 공기가 건조해진다. 커피 내리기 좋은 계절이 되어간다. 주중 사흘은 학원에서 손수 에스프레소를 뽑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원 샷 양만큼 가지런히 원두 가루를 담은 포터 필터를 장착하고 다섯 번째 버튼을 누르면 기압계 눈금이 재빨리 9를 향하며, 김이 나도록 뜨거운 황금빛 크레마가 쥐어짜이듯 흘러나온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지켜보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기름진 갈색빛 물줄기가 투명한 샷 글라스를 채우며 고소하고 쌉싸름하고 타는 듯한 다채로운 향을 퍼뜨리면, 그때부터 전혀 다른 시공간이 펼쳐진다. 나는 나타나자마자 빠르게 휘발되어가는 향기를 깊숙이 들이마시고 머금는다. 사흘 낮 동안은 이렇게 코와 혀의 감각에 상상력을 더하여 연금술을 펼친다. 그 사흘 가운데 이틀은 밤에 화상으로 아이들을 만나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친다. 낮과 밤이 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낮에는 학생이 되었다가 밤에는 선생이 된다. 그러면서 삶의 균형이 잡히어간다. 참으로 재밌게도 꿈이 삶을 조정하고 이끌어간다. 덕분에 활기가 솟고 쓴맛을 희석시키려 남몰래 애쓰던 이 삶에도 새벽녘 귤꽃 피어난 펜션에서만 맡을 수 있는 시트러스 향의 가볍고 산뜻한 산미와 스스로 음미하고 감상할 만한 한 잔을 우려낸 데서 오는 기쁨과 만족감과도 연결된 충만한 바디감, 그리고 벗들과의 수다처럼 다정한 고소함과 마음의 담이 사라진 여유, 깊이의 맛이 시부저기 경쾌하게 배어들고 있다.

밤은 시시각각 진한 커피색으로 물들고, 오늘은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휘발되며 흘러간다. 그러나 꿈의 터널을 어렴풋 지나고 나면 갓 볶아 숙성한 원두 향 같은 신선한 오늘이 다가온다. 이 오늘의 향미를 순간순간 풍부하게 예술적으로 구현하고 전하는 바리스타이기를,

오, 늘 나는 이 손으로 꿈꾼다.

작가의 이전글헤세는 왜 데미안을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