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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Apr 08. 2023

직장인, 유학갈 수 있을까 4화

원서접수

지난 주, 다니던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하였다. 그렇다. 이 글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임을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내면서 드디어 원서 접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 전에, 너무 오랜만에 작성하는 글이어서 다시 한번 자기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필자는 미디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온 30대 직장인이다(이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을 알게 되면서 석사를 하기로 결심했고 한 교수님과의 상담을 통해 핀란드에서 석사 유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간이 별로 없는 핀란드는 대학 수도 많지 않다. 석사 프로그램(영어)을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총 13개, 그 중에 자격 요건이 안 되거나 갈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대학들을 제외하니 약 8개의 대학이 남았다. 정말 하고 싶은 프로그램만 지원할까 vs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다 지원할까. 고민이 좀 되었으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경험자의 조언도 있었고 이제는 뭐가 됐든 정말 핀란드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핀란드라는 나라에 이렇게 진심이 되다니. 그 동안 읽은 핀란드에 관한 책들 덕분이 아닌가 싶다. 대화를 계속 나누고 싶은 사람을 알게 된 느낌. 핀란드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직은 경험보다 환상이 많으니 나중에 더 이야기 하기로 하자.


핀란드 석사 프로그램 원서 접수는 올해 1월 말에 마무리 되었다. 헬싱키대학과 탐페레대학만 12월에 따로 접수를 했고, 나머지 대학들은 Joint Application(통합 지원) 시스템이어서 1월 같은 기간에 원서를 냈다(최대 6개 프로그램 지원 가능). 원서 내용은 대학과 프로그램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가 완료된 채로 지원하지는 못했다. 게으른 것도 있었고 마음이 썩 안 가는 프로그램은 지원동기서가 잘 써지지 않았다. '나란 인간, 싫은 건 결국 못 하는 사람이구나'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대신 정말 가고 싶은 대학인 헬싱키와 탐페레 대학의 지원서는 공을 들여 썼다. 영어 잘하는 친구들에게 첨삭도 받고, 영어성적표, 졸업증명서, 학사성적표 등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도 꼼꼼하게 확인하여 제출했다. 


왜 이 공부를 하고 싶은가. 원서 접수의 시간은 이 질문을 곱씹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프로그램마다 맞춤형으로 대답을 만들어 제출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공통된 지점은 있었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질문들에 답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 10년 가까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게 맞아? 이게 말이 돼?' 싶은 순간이 많았다. 한마디로 벽에 부딪친 순간들이었는데 스스로의 벽이었던 적도 있고, 산업 구조의 벽이었던 적도 있고, 이해하기 힘든 문화와 관습의 벽이었던 적도 있었다. 벽은 대게 무너지지 않았고 그 와중에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으므로 질문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그래서 공부의 세계로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한 질문에 오래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읽고 쓰고 데이터를 모으다 보면 질문의 근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떤 질문들에 대해서는 대답 비스무리 한 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퇴사 결재를 받는데 사장님이 슬쩍 이런 말을 했다. 

 "학벌 키우는 게 나중에 돈이 더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닐 수도 있어."

 "네, 그렇죠."

나는 그때 이 말을 잘 못알아 들었다. 뭔 소리지? 돈을 벌고 싶으면 당연히 일을 더 해야지 왜 공부를 더 하겠나.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사장님의 세계구나 싶었다. 왜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사장님은 돈을 기준으로 답하는 사람인 거다. 돈이 되면 하고 아니면 하지 않는 사람(확실히 비즈니스 맨이다). 좋다 나쁘다 할 거 없이 그 기준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덕분에 나도 내 기준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마 '말이 된다'를 기준으로 답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말이 되면 하고 안 되면 안 하는 사람. 말이 안 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읽고 쓰는 작업에 매달리나 보다. 


말과 글을 통해 어설프게나마 설명하는 세상으로, 

한번 가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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