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심장병과 나의 느린 걸음
계피가 10살쯤 되던 해, 월드컵공원에서 신나게 돌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녀석이 갑자기 끼익 멈춰 앞발을 들고 낑낑거렸다. 왜 그러냐며 다리를 만지려 하자 비명을 질렀다. 성대 수술로 소리는 안 나지만 평소와 다른 아픈 비명임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계피를 ‘들쳐업고’ 조수석에 태운 뒤 미친 사람처럼 동물병원으로 내달렸다. 수의사 선생님이 다리를 접고 펴고를 반복하자 똑!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바닥에 내려놓으니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계피는 다시 멀쩡하게 걸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일이 처음인데. 접질린 걸까요?”
“계피는 노견이니까요. 여기저기 조금씩 노화하는 거죠.”
병원에서는 딱 눈물이 눈 밖으로 흘러내리지 않을 만큼 꾹 참았는데, 병원을 벗어나 ‘노화’라는 단어를 곱씹으니 서러움이 들어찼다. 계피는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이곳저곳 킁킁댔고, 나는 환한 대낮의 동네를 걸으며 한 손으론 개줄을 붙잡고 한 손으론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 맞네. 우리 개 노견이지.
다리 좀 접질린 걸 가지고 오열하던 나는, 그로부터 한참 지나 다시 같은 수의사 선생님 앞에 서 있다. 계피와 함께한 지 10년이 되었으니 이 동물병원과도, 선생님과도 10년을 함께 했다. 새로 온 젊은 수의사였던 김 선생님은 이제 김 원장이고, 최근에 아이 엄마가 되었다고 들었다. 김 원장님과 함께, 눈꺼풀처럼 빠릿빠릿하게 닫혀야 정상인데 맥없이 너풀대는 계피의 심장 판막을 초음파 영상으로 보았다. 좌심실, 좌심방, 판막, 역류, 이첨판, 삼첨판…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나 들었던 단어들이다.
심장판막 이형성증.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단계가 아니지만 심장의 펌핑과 함께 실핏줄 정도의 굵기로 피가 삐질삐질 역류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푸드덕푸드덕 너풀대는 판막’과 ‘얇게 삐질삐질 뿜어져 역류하는 피.’ 선생님의 단어 선택이 너무 절묘하여 저 작고 새카만 심장 안의 상황이 눈앞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시간이 지나 판막 기능이 더 떨어지면 기절하는 개도 있다고 했다. 또 미친자처럼 오열할 이야기인데 오늘은 슬픔보다 담담함이 앞섰다. 걱정병자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걱정은 ‘내가 집에 없을 때 기절하면 어쩌지?’였다. 나는 ‘-면 어쩌지?’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죽음’을 먼저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죽을 텐데… 그럼 이것 때문에 죽게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어느 장기가 먼저 노쇄할 지는.”
아 맞다. 수의사는 점쟁이가 아니지. 당장 치료는 권하지 않았고, 흥분도를 높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릴랙스드(relaxed)한 노년을 보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흥미로운 미션이다. 개들은 보호자 성격을 닮으니 이 미션은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 마침 나는 내 삶의 긴장도가 너무 높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나는 걸음도 빨랐다. 개밥 차리는 속도도 빨랐다. 시계를 너무 자주 본다. 작은 틀어짐과 압박에도 크게 스트레스받았다. 마음을 좇아 긴장한 몸은 늘 아프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도수치료를 받는 것인데, 며칠 전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 정신도 치료가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스름한 저녁, 잠시 공사 현장에 들렀다. 이웃집에서 장작 태우는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심호흡하며 장작 냄새를 코에 깊이 담았다. 그 느린 냄새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계피 떠나기 전까지 나 홀로 여행은 글렀구나, 체념했다. 외출도 삼가고 늙은 노견네 옆에 찰싹 붙어 집순이로 살아야지, 다짐했다. 덩굴진 나무들을 베고 나니 갑자기 훤히 넓어진 마당이 고민스럽다. 어떻게 꾸며야 천방지축 우당탕탕 동분서주 흥분쟁이 조계피가 여유로운 노년을 누릴 수 있는 ‘느린 마당’이 될까.
이곳에서는 나부터 느려질 자신이 있다. 빠른 숨과 걸음이 지배하는 서울을 떠나는 것은 내가, 우리가 건강해지는 첫걸음이다. 오늘부터 우리 가족의 키워드는 ‘릴랙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