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대견하기 그지 없는 맛
동생이 친구에게 과자를 받았다며 나에게도 몇 개 주었다. 정확히는 두 개. 내 몫은 한 개였고, 나머진 엄마를 주라고 했다. 처음 보는 과자였다. 내 손바닥 반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은박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포장지 앞에는 파란색 소가 제법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과자를 한입 맛 본 나 역시 그 소 같은 미소를 짓게 되었다! 마치 쿠크다스처럼 부드러운 두 쪽의 쿠키 안에 치즈크림이 샌드돼 있었는데, 그 자그마한 쿠키 맛이 참 야무졌다. 잔머리라고는 전혀 굴리지 않고 정성껏 만든 맛이었다. 누워만 지내던 신생아가 생애 첫 뒤집기를 했을 때 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아마도 그러할 것이라 짐작하며, 확신에 차서 느낌표를 세 개나 찍었다.) 정말이지 대견하기 그지없는 맛이었다.
동시에, 내 안에서는 비열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나머지 하나를 엄마한테 줘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미 세계신기록을 갱신하여, 유일한 경쟁자는 자기 자신인 운동선수가 자신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려고 사투를 벌일 때의 그 필사적 노력으로, 나는 (눈물을 머금고) 하나 남은 과자를 엄마에게 드렸다. 엄마 역시 맛있다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정말이지 뼈를 깎는 인내로 쿠키를 건넨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됐을 테니까. 그러나,
두 개의 쿠키가 내 손을 떠난 후에도, 혀끝에 남아있는 쿠키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으허헝.) 검색에 돌입했다. 그 과자의 이름은 도쿄밀크치즈팩토리 쿠키! (당시만 해도) 국내에 딱 하나 뿐인 매장은 가로수길에 있었다. 일산에서 가로수길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의향이 있었다. 그 정도로, 다시 먹고 싶은 맛이었다. 그러나 가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10개들이 한 상자 가격이 무려 15000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쿠키 하나가 1500원이라는 뜻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난 그 맛을 알잖아...’
그런데 지난 추석. 도쿄밀크치즈팩토리 쿠키를 맛 별로 한 상자씩, 무려 3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노란소가 그려진 허니& 고르곤졸라. 빨간소가 그려진 포르치니 & 고다. 파랑소가 그려진 솔트 & 까망베르.) 갑자기 감당하지 못할 행운을 손에 쥔 기분이었다. 너무 좋으니까, 오히려 숙연해졌다. 책상 위에 과자 상자를 모셔놓고 한동안(그리 오래는 아니었다) 손대지 못 했다. 무슨 맛부터 뜯을지도 고민이었다. (역시 그렇게 오래는 아니었다.) 역시 안 먹어본 맛부터. 떨리는 손으로 빨간소를 선택했다. (그때서야 나는 백화점 명품 매장 직원이 제품을 다룰 때 왜 경건하게 흰 면장갑부터 끼는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앙증맞게 포장된 쿠키를 하나 조심스럽게 꺼내서, 혹시나 먹기 전에 부서질까 조심조심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쥔 쿠키를 서서히 입 쪽으로 옮겨서는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너무 경건했나보다. 처음 맛보던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그러나 긴장이 풀리고 비로소 스물아홉개의 쿠키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나는 예전처럼 소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앞으로 이렇게 웃을 기회가 스물아홉 번 더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또 한 번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에게 사진을 찍어서 쿠키의 존재를 알렸다. 이 소식을 접한 동생은 바로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난 몇 개 줄 거야?” 인생지사 새옹지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