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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Feb 16. 2024

뭐라는 거야 이 소시오패스가

내 아픔에 호들갑 떨어줄 사람

내가 씻고 있는 사이 동생에서 전화가 왔었나 보다. 웅이한테 전화 왔다고 알려주는 남편의 표정이 오묘하다. 매형 괜찮냐고 묻는 목소리가 무척 심각했다고 했다.

 

“걱정돼서 그러겠지. 엄마도 지금 엄청 심각해.”

“당신 가족들은 그렇구나.”


뭐라는 거야 이 소시오패스가. 그럼 이게 정상이지 니 반응이 정상이냐 따져 묻고 싶던 것을 참고 물었다.


“암이라는데 걱정되는 게 당연하지. 어떤 반응이 일반적이다 아니다 할 건 아니잖아.”

“일은 이미 벌어졌고 그럼 해결 방법을 찾아야지. 나는 누나가 그랬어도 안 그럴 것 같은데.”

“해결은 해결이고 감정은 또 다른 거지.”


남편도 단어를 고르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속 마음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유난 떤다 생각하고 있겠지. 우리 가족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쯤은 이제 저 얼빠진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부부다. 그럴 수도 있나... 아직도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고 앉아 있다.


나는 소위말하는 T의 문제 해결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F지만 자주 T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 원인을 찾거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거나. 하지만 당사자가 되어보니 배우자의 이성적 대응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우연히 티브이를 돌리다 나온 김창옥 강연자의 쇼를 봤다. 알츠하이머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안 주변의 반응이 제각각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정도 깜빡거리는 증상은 내가 더 심하다 너스레를 떠는 지인부터 되려 담담하게 반응하는 친구의 이야기. 김창옥 님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사람은 말과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파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남편의 무덤덤함이 우리 부부의 삶에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호들갑 떨어줄 타이밍이라는 것도 있는 거다. 아내가 갑상선 유두암 진단을 받았다던가, 갑상선 암 환자의 남편이 되었다던가 하는 순간 말이다.


갑상선 카페에 가면 종종 아내가 갑상선 암에 걸려 가입했다는 글이 올라온다. 어느 병원이 좋은지, 추천해 주실 교수님은 있는지, 도움이 되는 식단이나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묻는다. 나는 그런 글에는 차마 댓글을 달지 못한다. 너무 부러우니까.



조직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가장 먼저 공동 운명체인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나카드 결제일 지났는데 아직 못 빠져나갔다는 것과 보험 연체를 알리는 메시지도 복사해서 보냈다. 내 검사 결과는 우리 부부가 처리해야 할 여러 공지사항과 함께 전달 됐다. 마치 세탁세제가 떨어졌다는 이야기처럼 일상적이었다. 담담했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예후가 좋은 암이라 다행이다. 연로하신 부모나 내 어린아이가 걸린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날 저녁으로는 찜닭을 했다. 이럴수록 건강하고 맛있는 걸 먹어야지. 감자랑 당근, 양배추를 넣고 수프를 끓이듯 푹 고았다. 국물을 넉넉하게 해서 밥 위에 부어 먹을 생각이었다.


퇴근한 남편이 기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왔다. 회사 사람에게 소곡주를 받아왔다고 한 잔 하잔다. 그것도 원래는 회식에서 먹을 것을 회식이 미뤄져 자기가 가져왔다는데 그래서 잘 되었다는 건지 자랑을 하는 건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안 됐다.

저녁으로 찜닭 해놨으니 먹자고 했더니 얼씨구 뭐 시켜 먹잔다.


“아니, 뭐 축하할 일 있어? 뭐 파티할 일 있냐고.”


순간적으로 암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면 그 스트레스의 9할은 당신이라고 소리치려는 걸 참았다. 이 사람이 소시오패스가 아닌 이상 와이프가 암 진단을 받은 저녁에 이럴 수는 없다. 함께 산 지 올해로 12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저 사람을 다 알기엔 짧은 시간이었나. 감사는 내가 충분히 하고 있으니 너는 절망까진 아니어도 약간의 충격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늘은 잘 울지 않는 나에게 보란 듯이 울보 딸을 주셨고, 징징거리지 않는 나에게 징징거리지 말라는 남편을 주셨다. 그런 이유가 있겠지. 이것도 합이라면 잘 맞는 거겠지. 사는 동안은 최대한 잘 지내보다가 나중에 하늘에 올라가 꼭 물을 작정이다.


남동생은 주변에 물어 괜찮다는 병원과 경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톡으로 보내온다. 오늘 검사 결과 나오는 걸 아는 지인은 걱정 말라는 내 말에 어떻게 암인데 걱정을 안 하냐고 운다.

내가 바란 공감과 위안을 어째서인지 집 밖에서 얻는다. 그러한 까닭에 담담했던 내 진단명이 갑자기 서글퍼졌다. 나는 진짜 괜찮은데 당신은 좀 휘청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다 목구멍에 억지로 치킨과 소곡주를 밀어 넣고 먼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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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리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마흔 일기 / 암(1)>의 일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일방적인 내 입장의 글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남편의 입장을 써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에세이지만 이 글에 보이는 것 만이 사실은 아닙니다. 글 너머의 삶에 쌓인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결혼생활을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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