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디자인 팀 리드로 일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 (11)
#11. 시속 120km와 시속 60Km 사이 그 어딘가에
나의 경우엔 일처리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이 부분은 디자이너 주니어 시절부터 줄곧 들어왔고 디자인 디렉터가 된 이후에도 종종 들어오고 있다. '일처리가 빠르다', '일머리가 있다'와 같은 말은 비단 직업인 '일'에서만 해당하진 않는다.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성격, 성향적인 부분 하고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아니 급한 편이었다. 그런데 성격은 급한 편이었지만 성향은 또 어느 정도 느긋하다는 것. 또 이게 내가 나를 바라볼 때와 나와 타인이 얽힐 땐 또 다른 관점으로 가곤 한다. 아, 인간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참 복잡하고 미묘한 것 같다.
무튼 이 빨리빨리 성격이 한국에서 살 땐 이 점이 장점이었지만 태국에서 살아가며 초반에 적응할 땐 조금 고생했다. 빠른 문화가 아닌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속도에 맞춰가야 했다. 그렇게 태국생활 6년 차가 되었고 나는 그동안 정말 많이 내려놓았다. 덕분에 성격이 조금은 느긋해지게 되었다. 어느 정도 성향과의 낙차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과 성향엔 기준이란 게 없기에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이럴 땐 타인과 비교를 해보게 되는데 이게 또 상대적인 것이라. 참... 정답이 없다.
내가 이끌고 있는 디자인팀의 팀원들은 어떠할까? 어떤 친구는 나의 빠른 속도에 잘 맞추어 오고 또 다른 어떤 친구는 비교적 속도가 빠르지 않다. 이건 일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측면도 함께 해당한다. 이 또한 성격과 성향이 연관된 부분이라 내가 팀원에게 '성격을 바꿔주세요', '성향을 바꿔주세요'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디자인팀은 늘 바쁘다. 회사 내부 클라이언트, 외부 클라이언트 모든 곳에서 크고 작은 디자인 리퀘스트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지난주 금요일에 가장 나중에 입사를 한 친구가 조금 지쳐 보이는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디자인 수정에 대한 미팅 중에 '저 이제 이번주에 쓸 에너지를 다 썼어요. 주말에 충전을 하고 와야 할 것 같아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이야기가 나에겐 진담처럼 들렸다. 그리고 내가 너무 빠른 속도로 팀원들을 이끌고 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빠른 속도에 팀원이 따라오기 버거운 것인가? 속도가 다른 팀원들과 어떻게 서로의 속도를 맞춰야 할까? 서로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야 할까? 지금처럼 이 속도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해야 할 일들은 테트리스처럼 무한대로 쏟아지는 중인걸?
그리고 이 친구는 지난 주말에 내내 아팠고 이번주 월요일엔 회사에 오질 못 했다. 그래서 이번주엔 이 친구와 천천히 가보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도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다.
시속 120km와 시속 60Km 그 어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지점을 찾아보려고 오늘도 함께 달려본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없는 그 지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