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부산, 한국
부산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고등학교 때 엄마와 싸우고 처음으로 집을 나갔을 때 무작정 부산으로 갔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 어딘가 찾아보니 갈 수 있는 곳이 부산이었다. 서울에서 밤 기차를 타고 달려와 부산역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몇 시간만 기다리면 아침이 될 것 같은 어정쩡한 시각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서면역 근처의 골목을 서성이다 보니 목욕탕 하나에 불이 들어와 있다. 일단 추위를 피해 들어가 보았다. 살면서 목욕탕에 거의 간 적이 없지만 목욕탕에서 나는 습기 가득한 그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목욕탕 문을 여니 오래된 자주색 가죽 소파가 있었다. 그곳에 털썩 앉아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교복을 입은 웬 허여멀건한 어린애 하나가 이 시각에 여기에 있는지’라는 눈빛으로 주인아주머니가 부스스하게 다가오셨다. 자초지종을 아주머니께 털어놓으니 목욕탕 건물 위층에 있는 본인의 집으로 데려갔다. 쭈뼛거리며 현관에 서있으니 아침을 차려주신다고 하셨다. 그때 뭘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주머니는 차비를 손에 꼭 쥐어주셨다. 그 따뜻함에 나는 부산을 사랑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줄곧 했다. 영화, 바다, 회, 술 취한 사람들, 폭죽. 해운대 포장마차 촌에서 많은 영화인, 친구들과 한데 모여 뒤풀이를 했다. 밤을 새워 가며 영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산에 자주 갔다. 그러다 부산에 살았던 지인이 ‘영도’로 데려갔다. 영도 다리를 건널 때 즈음 그 사람이 내 다리 위에 손을 슬쩍 올렸다. 잔뜩 흐렸던 영도의 하늘. 비가 막 내릴 것 같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해녀 마을에 도착했다.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파라솔에 앉았다. 멍게 김밥을 알게 되었다. 소주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별미였다. 그 사람이 만든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영도를 사랑하게 되었고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이맘때가 되면 부산에 가고 싶다. 올핸 꼭 부산에 다시 갈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