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물류업계 중에서도 항공수입 쪽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빨간 날은 없다. 그나마 일요일에는 두 명만 출근하는데 그날은 나와 P의 차례였다. P와는 최근 들어 산책, 커피, 운동 등 공통점을 찾으며 동료 이상의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1년 전 퇴사한 K, 그리고 두 명의 동행을 구해 몽골여행을 간다고 했다. 10대 때부터 여행이라 하면 아프리카, 인도, 몽골에 끌리던 나다(한중일 말고는 가본 곳이 없지만).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도 낄 수 있는지 물었고, 10분 뒤 나는 그녀와 같은 몽골행 티켓을 끊었다. 퇴근 후 나는 여행단톡방에 물었다. ‘근데... 저희 어디 어디 가나요?’
그날 그녀와 근무가 겹치지 않았다면, 우연한 기회로 친해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부러워하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나 하고 말았을 텐데. 돌이켜보니 운이 참 좋았다.
분명 꿈꾸던 여행지에 둥글둥글한(여행 전 다 같이 한번 만났다) 사람들과의 여행인데, 티는 안 냈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혼자 하는 배낭여행이나 계획하던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여행이라니. 싸우거나 부딪힐 것보다는, 그 관계에 마음 쓰느라 내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없을까 걱정됐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가 동시에 몽골몽골 피어나면서, 또 바쁘게 일하고, 운동하고, 글 쓰다 그렇게 떠나는 날이 왔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약 3시간 후. 창문 아래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참깨같이 보이는 동물들, 새하얀 점의 게르*들, 아스팔트 검정이 아닌 갈색 기다란 흙길들이 이어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몽골에서는 한국인의 국제면허증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여행사를 통해 한국어가 능숙한 현지 가이드와 관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의 투어는 이틑날부터 예정되어 있어 환전, 유심구매 등 미션을 수행하고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울란바토르는 차 막힘으로 악명이 높은데, 그래서일까 하늘은 맑아도 목이 칼칼했다. 동행들과 컵라면과 맥주를 먹는 밤늦게까지 도시에 경적소리가 가득했다.
여행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나의 동행들은 하나같이 부지런하고 나서서 배려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불평, 짜증이야말로 여행에서 최악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돌아가며 아픈 와중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여행하던 우리들은 우당탕탕 터지는 사건에도 대체로 이러했다.
- 여행 고작 둘째 날, 바퀴가 어디 빠진 것도 아닌데 잘 달리던 푸르공*에 문제가 있어 초원 한가운데 멈춰 섰다. 맑던 날씨는 갑자기 흐려져 비바람이 쳤고 선루프에선 뚝뚝 물이 샜다. 블로그 후기를 통해 이 정도는 모두 예상한 듯 우리는 낄낄거렸고 선루프 모서리에는 휴지를 끼워 넣었다. 휴대폰이 터지는 지역도 아니었기에 종이를 잘라 유행하는 게임을 하고 수다로 시간을 때웠다. 두 시간쯤 흘러 출발하게 되었을 때 누가 말했다. 이제 다시 노래 틀까요?
- 여행 7일 차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날, 숙소 근처에서 가이드와 함께 새벽까지 술을 먹다 귀가할 때였다. 피곤해 먼저 들어간 K가 밖에서는 풀 수 없는 잠금장치를 하고 깊게 잠이 들었다. 전화를 20통쯤, 벨을 30번쯤 눌러대고, 새벽 세시에 우연히 만난(!) 에어비앤비 주인까지 와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나. 근처 잘 곳을 알아보겠다는 가이드에게 나는 말했다. 그냥 문 앞에서 잘게요. K도 알람은 맞췄을 거고 일어나서 문 열면 우리 비행기는 탈 수 있겠죠 ㅋㅋ. 가이드는 말했다. 너네 이런 줄은 알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웃다니.
다시 푸르공이 멈춰 섰던 날로 돌아가, 깜깜해져서야 도착한 숙소는 망망대초원의 한 가정집이었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게르 대신 가이드가 선택한 곳이었다. 비바람 치던 곳을 지나 그곳엔 구름 한 점 없었고, 외딴곳이었기에 별구경에는 최적이었다. 아- 그날의 은하수는 정말. 몽골여행기에서 수없이 본 은하수사진보다 백만 배, 별 하나하나가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생애 두 번째로 만난 별똥별에 손을 모아 소원도 빌었다. ‘우리 모두 다치거나 아프지 않길’.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 여행 끝까지 날이 흐렸으니 날씨가 가장 맑았던 날 그 숙소에 묵은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들썩이는 푸르공 드라이브가 제법 익숙해졌다. 저 멀리 언덕 끝까지 이어지는 한 줄의 아스팔트 도로도,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는 오프로드도 눈 뗄 수 없게 흥미진진했다. 초원에서의 그림자는 오직 구름이 만들어낸다. 그 거대한 그림자 밑을 푸르공을 타고 달린다. 졸다 일어나면 눈앞이 몽골의 들판이고 언덕이고 양 떼와 소 떼다. 가이드 태수(한국 이삿짐센터에서 일할 때 아저씨들이 준 이름이라고 한다. 대부분 태수, 탁수 라 부른다고)의 선곡은 몽골노래와 한국노래, 힙합과 발라드, 락까지 적절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해가 질 무렵 홉스골로 가는 길에서의 질주는 샘스미스의 노래와 함께 진한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 다섯은 어디 내리지도 않고 이대로 달리기만 해도 좋겠다는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2000KM를 달렸다.
여행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그때 찍은 사진들과 휴대폰 메모장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행운은 내 열린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었을까. 다음 여행지는 발리로 하자는 나의 몽골동행들과, 친구가 되어 여전히 사막사진을 보내주는 태수를 떠올리며 깨닫는다. 아, 나는 사람들을 잘 만나 좋은 여행을 했구나. 정말로 운이 좋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