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丼(규동・소고기덮밥)
난 어쩔 줄 모르고 그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 표정을 읽었는지 제일 조심스러웠던 그 친구가 말을 건넸고, 대화는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
"네가 아재라는 거 아니야~ 그냥 규동이 그래. 규동은 보통 아저씨들이 많이 먹으니까."
"응, 맞아. 규동은 맛있지만 규동집은 어쩐지 가기 싫어..."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면, 그 규동집 앞에서 줄을 서 있던 건 어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근처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을 받고 나온 남성들이었다. 절대로 규동은 '학생들을 위한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학에 갓 들어온 새내기들, 그것도 아주 파릇파릇한 여학생들에게 규동을 먹으러 가자는 건 아마도 국밥집(국밥은 죄가 없지만)에 가자고 하는 것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왜 그날따라 난 규동을 찾았을까.
한 차례 에피소드를 마치고 우리는 지하철 역 근처 아케이드에 있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요기를 했다. 새로 나온 메뉴를 한 입 먹을 때마다 '어떡해!!! 맛있어!!!'(일본 특유의 높은 옥타브의 리액션모드)를 마구 날려주며 먹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이상하게 난 그들 사이에서 '규동녀(女)'가 된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양파를 채 썰고, 얇게 저며진 소고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물이나 육수에 간장 조금과 쯔유 조금, 그리고 단 맛을 내 줄 설탕을 적당히 섞어 양념도 만들어 둔다.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다가 은은한 향기가 올라올 때 준비한 양념을 부어준다. 팬에서 '촤아~'하며 소리 내는 양념을 잠시 끓이다가 준비한 소고기를 들러붙지 않게 한 장 한 장 넣어준다. 이렇게 양념에 고기를 끓이면 거품이 생기는데 이건 꼭 잘 걷어내야 나중에 잡내가 덜 난다. 정성껏 거품을 걷어내며 고기에 국물맛이 잘 배도록 落とし蓋(오토시부타・국물이 잘 배도록 눌러주는 뚜껑)로 덮어 잠시 둔다. 특유의 짭짤하면서 달큰한 향이 풍겨오면 완성. 복잡하지 않은 레시피로 만들기 참 만만한 음식이지 않은가.
규동은 갓 지은 차진 쌀밥에 한 국자 쓱 퍼서 올려 먹는 게 제일 맛있다. 국물이 스며들고 고기와 양파도 적당히 올라간 덮밥. 간이 세지 않아 심심한 맛이 먹으면 자꾸자꾸 들어간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내숭은 못 떨겠다. 고기 냄새가 쿰쿰한 곳에서 아저씨들과 함께 먹으면 어떤가. 먹으면 맛있다는 건 사실인데.
'너희 정말 규동 별로였어?'
이제 서른을 맞이하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