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대소동
작년 추석날이었다. 큰 고모네 댁을 방문하여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얘기를 하다가, 내년에 민혁이가 학교에 간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사촌 형이 민혁이 가방은 형이 사줄테니 사지 말라고 했다. 그러곤 민혁이에게 물었다.
“민혁아, 책가방 어떤 걸로 받고 싶어?” “신비아파트요” “신비아파트? 알았어. 큰 아빠가 그거 사줄게” “네, 고맙습니다”
그래서 책가방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집 근처에 있는 사립초등학교에서 입학설명회를 하니 가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나도 아내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보다 사립초등학교는 어떤지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가보게 되었다. 설명회 때 들어보니 자기네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책가방은 학교에서 주니까, 남들이 입학선물로 뭘 줄까 하고 물어보면 책가방 빼고 아무거나요 라고 말하라는 얘기를 우스개 말처럼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런 2:1의 경쟁률에도 덜컥 당첨이 되버렸다(이 얘기는 다른 글로 더 자세히 말하기로).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였다. 아내는 새해 맞이 집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사촌 여동생이 전주에서 운영하는 향초가게에서 향초를 처음으로 주문(?)했다. 사촌 동생에게 향초를 알아서 보내달라고 한 거였다. 며칠 후 택배 상자에는 온갖 향초들과 함께 편지봉투가 들어있었다.
“민혁아, 8살이 되고, 초등학생 되는 거 축하해. 이모가 입학식 가고 싶은데, 못 가서 미안해. 대신 책가방 살 돈 보내니까 민혁이 맘에 드는 책가방 사서 학교 잘 다녀.” 민혁이가 편지를 더듬더듬 읽더니 “이모가 나한테 가방 사라고 용돈 줬다.”라며 좋아라했다. “민혁아, 가방은 학교에서 주는데?” “아, 그럼 이건 내꺼.”라며 돈만 챙겨 쏙 자기방으로 줄행랑.
그 일이 있은 뒤 사촌 형에게 전화가 왔다. 새해 인사 겸 전화온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민혁이 책가방 아직 안 샀지? 그때 캐릭터가 뭐라고 했지?” 이런, 아직 사립초등학교 합격했다는 소식도 못 전했는데. “형, 아니야. 가방 안 사줘도 돼. 여기 저기서 가방 준다고 해서.” “그래? 그럼 옷이랑 신발 사줄게. 설날 보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아, 다들 학생이 되면 제일 먼저 책가방을 생각하는구나. 초보 학부모인 나만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