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필요해
휴가가 필요해
민혁이는 우리 나이로 4살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직장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매년 어린이집을 옮겨야 했다. 직장 어린이집인데?라는 질문이 나올만하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 회사가 운영하는 직장 어린이집이 아니라 회사 근처의 직장 어린이집이었다. 이곳은 여러 회사가 모여있는 곳이라 근처에 있는 회사원이면 모두 신청이 가능했다. 혹시나 하고 6개월 전에 신청해두었는데 합격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렇게 1년을 지나고 나서 연장을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회사가 근처에 있는 3개의 회사와 함께 신규 어린이집을 설립했다(이미 1개의 어린이집은 운영 중이었지만). 신규 어린이집이기에 민혁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청을 했고, 합격을 했다. 단, 남자 직원은 1년만 다닐 수 있고, 1년 후에는 재추첨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재추첨을 했는데, 탈락. 이렇게 직장 어린이집과의 인연은 끝인가 싶었다. 그때 회사 담당자가 기존 어린이집에는 정원이 있다고, 그곳이라도 다니겠냐고 물었다. 고민이 되었다. 이제 겨우 친구들과 익숙해졌는데, 다시 새로운 친구들과의 적응이라니. 그래도 민간 어린이집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다니게 되었다. 이때는 민혁이도 많이 힘들어했다. 같은 나이뿐만 아니라 한 살 어린아이들과 합반을 했기 때문. 같은 나이 남자 친구는 없었고. 또다시 시간은 흘렀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7살 반을 운영하지 않았다. 민혁이도 이제는 유치원을 가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신규 어린이집에는 7살 반을 운영하고 있었고, TO가 생겼다. 유치원이냐 어린이집이냐의 고민에, 결론은 어린이집. 그렇게 1년이 지나서 다시 오게 된 어린이집. 다행히도 많은 아이들이 재작년에 다니던 민혁이의 친구였다. 이렇게 민혁이는 4년간이나 나와 함께 출퇴근을 한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에, 퇴근 때는 그날 있던 일들을 대화하곤 한다. 누구나 그렇듯, 재밌었던 일보다는 속상한 일을 더 많이 얘기하게 된다. 어제도 차 속에 타자 "아빠, 나 속상한 일 있었어"라고 말을 한다. "뭔데?" "점심에 카레가 나왔는데" "민혁이가 좋아하는 카레가 나왔어?" "응. 근데 못 먹었어" "왜 못 먹었어?" "카레에 사과가 들어 있어서, 선생님이 안 줬어" "사과가 있었구나" 민혁이는 사과 알레르기가 있어서 사과가 있는 음식은 주지 말라고 얘기를 해뒀는데, 그렇다고 아예 안 줬을 줄이야. 이 이야기를 집에서 들은 와이프는 바로 카레를 뚝딱 만들어줘서 다행히 카레에 대한 속상함은 풀어줬다.
하지만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또 속상한 일 있었어" "아이고, 왜 이렇게 오늘 속상한 일이 많았지?" "아니, A랑 B가 자기들 스키 타러 가기로 했다고, 그래서 내일 어린이집 안 나온다고" "그래? 내일 안 나온데" "응, 그러면서 넌 스키 타러 못 가지 그러면서 놀렸어. 속상해" 앞서 말했지만, 지금의 어린이집은 3개 회사가 함께 만든 건데, A랑 B는 같은 회사의 아이들이다. 아마도 그 회사에서 워크숍을 스키장으로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민혁이에게 "민혁이도 스키장 갈래?" "아니, 스키장 말고, 나도 하루 쉬고 싶다"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하루 쉬고 싶다니. "그래? 그럼 할머니가 쉬는 날 너도 쉬면 되잖아?" "싫어. 엄마랑 아빠랑 쉬고 싶다고. 맨날 나만 어린이집 계속 가고, 다른 애들은 쉬고. 속상해"
요새 어린이집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최소한의 등원 횟수만 채우고 있는 느낌이다. 이래저래 입학을 앞두고 분주할 테니까. 그 모습을 본능적으로 민혁이도 알아차린 것일 테다. 그래서 민혁이에게 말해주었다. "민혁아, 너도 2월에는 열심히 11번만 나가자. 그리고 나면 그때 휴가 내고 놀러 가자" "11번만 채우면 돼?" "응. 그럼 아빠도 휴가 내서 민혁이랑 엄마랑 같이 놀러 가자" "알았어"라며 나름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2월에는 연차를 소진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옆에 있는 민혁이가 혼잣말을 한다. "아, 쉬고 싶다"
아, 나도 정말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