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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Jan 24. 2023

캐나다 교육은 대안일까, 환상일까

이건 나의 정신 승리일까


"캐나다 초등은 아이들의 천국이에요. 우리도 원래 1년만 살려고 했는데 애들 때문에 아예 눌러앉았죠."

"캐나다는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학력이 달성되는 시스템이에요."

라는 칭찬 일색의 후기를 많이 들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캐나다 소개 책이나 조기유학 업체의 글은 더 구체적으로 근거를 들어 캐나다 공교육을 찬양한다. 한국에서 읽었던 <캐나다 교육 이야기> 책도 그중 하나다. 경쟁 위주의 한국 교육에 부담을 느끼고 캐나다로 이민 와 두 아이를 대학까지 보낸 부부가 쓴 만큼 학부모로서 겪은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구체적인 통계까지 들고 있다. 한 마디로 '지식 획득보다 건강한 발육에 초점을 둔 교육 이념, 고등학교 때까지 마음껏 놀다가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업 문화'를 많고 탈 많은 한국 교육의 대안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나는 위 책을 비롯하여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캐나다 공교육의 특장점을 이렇게 요약해 본다. 

교과서, 공부 스트레스, 수능이 없다


즉, 학생 중심의 커리큘럼 편성(no 교과서), 입시보다 발육과 문해력을 강조(no 공부 스트레스), 내신을 강조하는 대입 제도(no 수능)이다. 결과적으로 PISA 랭킹이나 대학 순위와 같은 국제적인 기준을 놓고 보면 캐나다 교육은 꽤 성공적인 것 같다. 그래서 캐나다 교육은 한국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리송했던 경험을 하나씩 더듬어본다.



첫째, 캐나다 학교는 교과서가 없다.


그 대신 교사가 준비한 유인물을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는 학생의 학습선택권을 존중하며 자율화, 다양화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애 책가방에는 소설책, 3공 바인더, 도시락이 전부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었던 지난겨울에는 겨울 스포츠가 주제였는데 먼저 체육관 활동으로 시작해 각자 좋아하는 캐나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발표로 마무리되는 수업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융합형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시스템에 의문이 생겼다. 자율성이라는 건 막강한 교사의 권한을 뜻하는 것인데,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학업 성취도가 달린 것이다. 담임교사의 영향력은 한국도 다를 바 없지만, 한국은 정해진 교과과정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일정 수준의 학업 성취가 보장되는 편이다. 우리 애들은 겪은 4명의 담임교사는 부모가 느끼기에 역량이 천차만별이었다. B는 매우 훌륭했고 KS는 괜찮았으며 L은 당황스러웠다. B는 본인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융합교육을 시도했으며, 주간 단위로 성실한 피드백을 주었다. 반면 L은 매주 하루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캐나다가 노동자로서의 교사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점을 나도 존중한다), 교실에서 컴퓨터 게임을 허용하는 등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교사에게 위임된 캐나다의 시스템은 과연 학생에게 최선일까.

 

+ 교과서를 안 만드는 이유가 사실은 국가 단위의 교과서 제작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산이 없어서라는 음모론(?)도 있다. 진실은 모르지만 학교 예산 부족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부모 대상 기부 모금을 하니 말이다.



둘째. 캐나다 아이들은 공부 스트레스가 없다.


입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고교 졸업생의 30% 이상이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취업한다. 가더라도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어 모두 명문대를 향해 달리는 경쟁이 약하다. 나이아가라 근처에 사는 S는 자신의 아들이 6학년 때까지 시험 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고, 8학년때까지 숙제가 없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진짜 공부는 대학에서 시작되는데, 문제도 그때 시작되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음껏 놀았던 대학 입생들은 고등 졸업 후 계단식으로 상승한 학업 난이도와 엄격한 과락제도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온타리오 지역에서 오래 강의를 한 P의 말에 따르면 O대학 O학과 1학년의 반 가까이가 2학년 진급을 못했다. 졸업장 받는데 4년이 아니라 6~8년 걸리는 경우도 많단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는 4년만 다니는 게 모두에게 더 이득 아닌가? 대학 등록금이 더 비싼데...


이런 불안은 주로 아시안계 이민 가정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 우리 동네 한인 미용실 사장님에게 뭔가 사연이 있는 거 같다. 아이 이발을 하러 갔을 때였다. 우리 애가 몇 학년이냐며 운을 떼더니, "캐나다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풀어줘서 큰일이다, 교육에 희망이 없다"라며 얼마나 성토하시는지 애 머리에 땜통이 생기는 줄 알았다. 다른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한숨 많이 들린다. 


의아한 점은 일부 학부모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평균적 학업성취도는 결코 낮지 않다. PISA* 랭킹은 세계 6위로 5위인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고, 토론토 대학, UBC, 맥길대 포함 대부분의 대학들의 순위가 높다. 내가 놀란 것은 얼마 전 EQAO** 결과다. 공부를 안 시킨다는 나이아가라의 S네 학교는 90점 대, 근처 내 조카의 학교는 98점으로 최상위권이었다. 그런데 아시안이 많은 우리 애들 학교는? 60점대다. 바로 옆동네와 바로 옆 가톨릭 스쿨은 80점대. 당연히 우리 학교 EQAO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이 학교들에는 Input 대비 높은 Output을 이끌어내는 비결이 있는 것 같다. 그걸 눈치채기에는 아직 내가 경험한 바가 너무 적긴 하지만 한 가지 체감한 것은 양질의 문해력 수업이다. 초등학교 수준에서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수업의 질이 뛰어나다. 상대적으로 수학 수업의 수준은 현저히 낮아 보이는데 6학년 수업에서 두 자릿수 나눗셈을 배우고 있다. 초등학생이 미적분 선행을 하는 한국 현실을 생각하면 두 나라 모두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수학 교육의 미흡함을 상쇄하는 높은 문해력 수업에 고성능의 공을 돌려야 할 것 같다.


* PISA :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에서 국가별 교육 시스템을 평가하기 위해 79개 나라 대상 15세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측정하는 연구. 3년마다 측정하며 가장 최근 결과는 2018년 자료.

** EQAO : Education Quality and Accountability Office. 온타리오 공교육 학업성취도를 평가 기관. 매년 3, 6, 9, 10학년을 대상으로 평가하여 개별 학교 단위의 결과 산출.


셋째. 캐나다에는 수능이 없다.


그래서 내신이나 봉사,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교과 외 활동이 중요하다. 그마저도 우리로 치면 고3인 12학년이 전성기니, 길면 10년 이상, 짧아도 고등 3년을 대입에 매달리는 한국 학생들에 비해 입시 기간이 짧은 편이다. 대학 서열이 없고, 진로 변화가 쉬운 것도 한몫한다. 정말 부럽다. 한국도 이게 가능할까?


교육부장관이 작년 말 "수능은 없어져야 마땅하고 없어진다"고 했다가 욕을 먹고, "수능으로 인한 입시 불리 없도록 개선하겠다"로 말을 바꿨다. "학생들이 학습 본연의 즐거움을 알도록 수시를 강화하고 학교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한다. 뉴스에 나온 각종 비리 사건이 머릿속에 떠돈다. 학교 안의 권력자뿐만 아니라, 학교를 넘어선 권력자들의 자식사랑을 보면 권력 없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함마저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수시의 공정성이야말로 환상이 되어 버렸다. 몇 해 전 미국 아이비리그 입시부정 사건만 봐도 명문대를 향한 일그러진 욕구는 민족을 초월한 네버엔딩 스토리인 것 같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입시 비리 뉴스가 들리지 않는다. 캐나다 입시가 탁월하게 공정하다는 얘기도 못 들어봤다. 이곳이 내신만으로도 잘 돌아가는 건 제도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한국, 미국과 달리 명문대 졸업장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대학 서열화의 높은 벽이 버티고 있는 한, 국가 차원의 표준화 시험은 공정을 위한 마지막 보루인 것 같다. 




나의 다짐


캐나다 공교육 그 자체는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고 솔직히 실망스러운 점도 많다는 것, 장점도 있지만 우리가 적용하기엔 문제점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다. 이곳의 교육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 사회가 부족한 공교육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하며 공평하다는 높은 시민의식이 이 사회에 있다. 정비기술만으로도 억대연봉이 가능한 사회, 미술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꿔도 시간낭비했다고 하지 않는 사회, 40대에 대학을 다녀도 왜 그 나이에 시작하냐고 묻지 않는 사회. 그 안에서 학생들은 남이 아닌 스스로를 학습 동력으로 삼고, 이것이 경쟁이 흉내 낼 수 없는 교육 효율을 만드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서 우리 가족은 학력지상주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계속해서 다짐을 중얼거려 본다. 옆집 아이의 성취에 조바심 내지 않아야겠다. 틀린 문제 9개보다는 맞춘 1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남이 쓴 걸 외우는 암기력보다 자신만의 한 문장을 내뱉는 용기를 응원해야겠다. 절. 대. 경쟁과 사교육에 미치지 않아야겠다.


사진은 모두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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