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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Jan 31. 2023

브런치 작가, 커밍아웃할까 말까

왜 말을 못 해! 내가 브런치 작가다, 왜 말을 못 해! (feat. 파리의 연인)


브런치 65일 차, 발행 글 18개.

내가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줄은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모른다.




브런치 작가 승인 후기


작년 여름에 앨버타 주 여행기를 네이버 블로그에 몇 번 써봤는데, 자꾸 여행 정보 공유성 글처럼 써지고, 사진과 이모티콘에 매몰되는 거 같아서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만 있다 보니 종종 좋은 글을 읽었던 브런치가 생각났다. 그런데 이건 블로그와 달리 '작가 승인'을 받아야 쓸 수 있단다. 입사시험 신체검사처럼 정말 문제 되는 글들만 걸러내는 형식적인 단계겠거니 하고 큰 부담 없이 신청해 봤다.


1. 작가소개 : 벌써 기억이 가물한데, "한국 IT회사에 다니는 컴맹, 캐나다 임시 거주자" 이렇게 썼던 것 같다.

2. 브런치 활동계획 : 캐나다 여행지와 영화나 책 얘기를 엮어 쓰겠다고 하고, 생각하는 테마 대여섯 개를 나열했다. 내 인생영화의 배경지인 루이스버그를 다녀온 기억이 계속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기 때문이다. 그때 아이템으로 냈던 것이  <루이스버그 + 영화 우리는 사랑일까>, <다운타운 토론토 + 헌트>, <PEI 썬더코브비치 + 헤어질 결심> <PEI 캐번디시 + 빨간 머리 앤>, <올드 퀘벡 + 도깨비> 등이다.

3. 자료첨부 : 루이스버그 여행기를 써서 냈다.

4. 활동 중인 SNS나 홈페이지 : 없어서 생략했다.


며칠 후 브런치팀으로부터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고, 바로 첫 글을 발행했다. 수필집 <매일 아침 여섯 시 일기를 씁니다>에서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에게는 그때가 결정적인 순간이었나 보다. 지금의 나, 글을 쓰는 부캐는 그 순간으로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나중에 브런치의 다른 글들을 많이 접한 후에야 작가 승인이라는 게 그리 간단한 단계가 아니고, 내가 운이 좋았음을 알게 되었다. 재수, 삼수, 십수 경험담도 꽤 있고 그중에는 구독자 수천의 인기작가거나 누가 봐도 탄복할 필력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심사 단계를 한 방에 통과했다고 으스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브런치팀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면, 물안경의 글은 다소 부족하지만, 여행기에 영화나 책 리뷰를 엮겠다고 한 야심이 기특해 보였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필력보다는 기획력이 먹혀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긴 케이스 번호 783 정도였을 것이다.


이후에 계속 기획안대로 쓰고자 했지만(헌트와 헤어질 결심까지는 계획대로 썼다.), 캐번디시와 올드 퀘벡은 까맣게 잊고, 냄비니 계란 프라이 따위로 글이 샜으니, 브런치팀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지금에라도 작가 취소를 진지하게 검토할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브런치는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일이 되었다. 글쓰기는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글 읽기와 시너지를 만들어 일상에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이 얘기를 더 쓰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구독자, 라이킷, 조회수와 글쓰기의 본질적 기쁨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써봐야겠다. 나는 내가 이렇게 수다쟁이인지 꿈에도 몰랐다.



브런치 작가, 커밍아웃할까 말까


누구라도 내 글에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에 글을 올리면서도,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는 나의 새로운 취미를 말하지 않고 있다. 물어보지도 않는데 괜히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 "수경아, 너 요즘 글 쓰니?" 이렇게 물어본다면야 "응, 브런치 아니?" 라며 자연스럽게 받겠지만, 이 세상 누구도 그런 식의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아니면 "요즘 뭐 새로운 일 없어?", "어 나 요즘 글을 써보는 중이야" 식의 대화도 있음직한데, 영어로 "What's new?"는 자연스럽지만, 한국어로 "새로운 일 있니?"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15년 넘게 임원을 위한 보고서만 쓰던 내가, 나를 위해, 돈이 안 되는 글을 쓴다는 게 도무지 입이 안 떨어진다. 평가받는 것도 두렵다. 재미로도, 미학적으로도 시시하다고 할까봐. 최악은 '너는 써라, 나는 읽던 거 읽으마'의 무신경한 반응일 것이다. 결국 내가 커밍아웃한다면 그건 '너에게 읽히고 싶다'는 뜻일 거다. 혈액형, 별자리보다 공신력 있다는 MBTI 검사에 의하면, 나는 '내면이 사사롭고 복잡하다'.


몰래 쓰는 것은 불편과 불만을 동반한다. 글 쓰는 부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갔거나, 늦은 밤 모두 잠든 후에만 활동한다. 가끔 식구들이 각자의 관심사에 빠져있을 때는 한낮이라도 좀 써보는데, 그러다가 누구의 인기척이라도 느껴지면, 황급히 노트북 화면을 MBC 뉴스로 바꾸고, 한국 출산율 때문에 밥맛이 떨어진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대화의 제약도 있다. 얼마 전 남편, 시누이와 얘기를 하다가 교육이 주제가 되었을 땐, 내가 쓴 <캐나다 교육, 대안일까 환상일까>를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고 싶었지만 대충 어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글을 발행하면서 얼마간의 이포함한 피드백을 기대했었는데, 댓글이 달리지 않아서 아쉬웠다.)


만약 누군가에게 살짝 내 브런치 링크를 건네어 본다면...


남편과 시누이.

한 보고서, 한 논문 하는 그들. 내 글의 소재가 그들의 일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흥미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곧 몇 개를 읽어 보고는 자신의 아내, 또는 새언니가 심각한 중2병 말기임을 눈치채고, 어디쯤에서 손절해야 될까 안절부절못할 것이다.


오빠와 엄마.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혼자서 부모님을 알뜰살뜰 챙기는 고마운 오빠. 오빠는 생활이 너무 바빠서 둘러보긴 하겠지만 읽지는 않을 것 같다. 만약 호기심에 몇 편 읽는다면, '휴직'이라는 전에 없던 호사를 누리면서도 수시로 앓는 소리를 하는 글에 무척 어이없을 것이다. 엄마는 원래 글을 잘 안 읽는다.


아빠.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한글을 가르쳐준 사람. 젊을 때부터 팍팍한 생활 중에도 틈틈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사은품을 챙기셨다. 아빠 사연이 몇십몇점몇 FM 배칠수의 딩굴댕굴쇼에 나왔다 해서 들어보면 꽤 재미있었다. 아빠는 일찍부터 글쓰기의 낭만을 알았던 사람이다. 작년에 퇴직해서 글 읽을 시간도 많다. 아빠라면 말 꺼내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관대한 사람들. 내 글의 주요 등장인물이므로 재미있게 읽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었어?", "내가 언제 그랬어?" 하면서 눈을 똥그랗게 뜰 거 같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어쩌면 아이들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엄마도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 엄마에게도 그릿 Grit이 있다는 것을.


친구들.

이건 정말 나중 일이 될 듯 하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나의 소중한 사건을 공유하지 않는 상황은 단점이 많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 그래, 언젠가 더욱 줏대있게 쓸 준비가 되 아빠와 아이들부터 시작해 보자. 오늘은 말고 조금 나중에.

일단 말하고 나면, 슬쩍. 구독 요청도 하자.






나에게 글쓰기란,

한소끔 뜨거워진 내 속을 살짝 식혀 담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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