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외로움과 함께 걸어가는 입장에서 남기는 글
무뎌짐
나의 미국 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감정적으로 높낮이가 덜해졌다는 건 아니다. 짜증은 그대 로고 웃는 것도 잘 웃고 감정 표현도 잘하고 산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무뎌졌다고 느껴지는 여러 포인트가 있다. 며칠 전 친구들이랑 방에 모여서 수다를 떨다가 한 친구가 자신의 'red flag'에 대해 얘기해 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red flag', 우리말로 설명하면 '주의 경보' 같은 느낌인데 누군가로부터 한 모습을 보았을 때 이 사람의 이미지를 깎아 먹는 행동을 설명하는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늘 느끼는 것이 'emtional', 즉 '감정적'이다는 것이었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모두 "??"였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며 풀어서 설명해 보라고 했다. 네 명 중에서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말하게 된 것이었는데 다들 서로의 'red flag'를 말할 때면 빵 터지거나 깊이 공감해 주었는데 내가 말한 나의 'red flag'는 다들 동의하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emtional'한 부분은 가끔 나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생기거나 내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거나 또는 나의 공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거나 싶으면 기분이 팍 상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바닥에 떨어진 기분을 다시 끌어올리려 글을 쓰고 소리도 질러보고 친구를 불러서 하소연하면서 노력한다고 했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을 되게 감정적이라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그런 방법들이라면 너 스스로가 잘 컨트롤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건 'red flag'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직설적이야라고 했더니 결국 아이들이 빵 터졌다.
그렇게 친구들이랑 한참 수다를 떨다가 다시금 나의 감정적인 부분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좀 전에 말했던 '감정적'이라는 정의가 꽤 유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감정이 소용돌이 칠 것만 같아 걱정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나의 상태는 생각보다 마음이 더 잔잔해졌다는 것이다. 나의 이 고요한 마음 상태에 대해 파고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8개월을 보냈다. 솔직히 말하면 8개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멀어졌다고 깨달은 것은 코로나 유행 시기였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외로움에 무뎌지기 시작한 것은 수술하고 회복한 그 이후부터가 아니었을까. 사람이 아프고 나면 세상이 변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수술은 성격을 변하게 하거나 정체성을 변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외로움을 덜어준 것 같다.
미국에 와서도 나의 외로움은 항상 나와 함께 있다. 지난 학기, 월, 수, 금 수업이 있고 9월 한 달 정도는 파티로 점철된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냈던 것 같다. 중간고사도 치르고 어느 정도 인간관계가 안정적이던 금요일 저녁, 웬일인지 아무런 약속이 없었고 혼자서 와인 한 병을 따서 홀짝대면서 영화를 한 편 본 날이 있다. 그리고 그날, 나 혼자지만 너무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Despicable Me 2>와 추천받은 와인이 너무 맛있어서 예전에는 그토록 시간 가는 게 아깝던 금요일 저녁을 온전히 나에게만 썼다는 사실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정말 안 외로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금요일이 그렇게 아까웠고 토요일 밤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슬펐다. 이 토요일 밤이 지나면 일요일이 올 테고 나의 일요일의 시작은 항상 오후 12시였기 때문에 넷플릭스를 보거나 빈둥거리다 보면 해가 지고 또 월요일이 다가온다. 이런 반복되는 사이클이 어찌나 사람을 슬프게 만들던지. 사촌들과 5년 가까이 함께 살던 곳을 떠나 혼자 오피스텔로 독립한 이후로 외로움이 극치에 달했을 때 도대체 사람들은 이렇게 외로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외로웠던 시기를 지나 점점 외로움을 직장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무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누군가를 찾아서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그 감정을 간직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이 외로움은 밖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나의 성격이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니까 스스로 외롭지 않으려면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받아들이면서 점점 덜 외로워졌던 것 같다.
그리고 수술을 하고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두 달여 가까운 시간을 붙어 보냈을 때, 결국 이 외로운 인생에서 맹목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는 가족인 것을 깨달았다.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가족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픈 몸을 침대에 맡겨 천장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또는 가까이 붙어 있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존재는 가족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면서도 감사해졌다.
그렇게 나의 외로움은 가족으로부터 해소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같다. 미국에 와서는 가족과 함께 떨어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영상 통화를 하며 연락하고 있다. 막상 이런 생활에서 드는 생각이 정말 이 세상에서 나는 정말 '외로운 존재'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외로운 존재'라는 단어가 마냥 슬픈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는 나에게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연락과 응원의 말, 사랑이 가득한 대화 덕분에 외로운 내 자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내가 기댈 곳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 끝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내 안에서 찾아야하고 속이 답답해 미칠 것만 같고 고개를 파묻고 펑펑 울면서 기분이 나아지길 기대해보는 것도 결국 내가 나를 달래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외로운 존재에게 있어서 기댈 곳은 굳건한 마음을 가진 '나'라는 사실을 유학생활을 보내면서 깨닫는 중이다.
지금까지 유학생활에서 나와 외로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아직은 함께 같이 걸어가고 있다. 외로움이 나를 마주하고 덮쳐버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직 2년 넘게 남은 나의 대학원 생활에서 끝까지 나와 함께 걸어가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