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출퇴근제와 IT 외주 시스템에 대한 단상
앞서 '개발자'가 된 이유에서 어떤 부분을 높게 사서 개발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적으로 글을 써두었다. 하나씩 나의 상상과 달랐던 개발자의 세계를 비교해봐야겠다.
출퇴근이 불규칙적이다.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보통 회사들이 '시차 출퇴근제', '자율 출퇴근제'라고 불리는 정책들을 가지고 있는데 스타트업이나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하는 회사들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 회사 같은 경우, 타의적으로 이 제도를 이용하기는 가능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다른 부서들을 예로 들자면, 해외에 있는 사무실과 협업해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 오전 10시 출근 또는 오후 2시 출근 이런 식으로 출근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개 이럴 경우에는 퇴근 시간이 없다고 보면 된다. 즉, 9to6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 다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6시 땡 하면 퇴근을 할 수 있지만 오후 2시 출근, 오후 11시 퇴근 이런 식이면 과연 11시에 퇴근할 수 있는지 장담하지 못한다.
나는 특이하게 병가를 두 달 정도 다녀온 적이 있어서 회사에 다시 복귀했을 때 조금만 심사가 뒤틀리면 퇴사 각을 세울 기세로 복귀를 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8to5를 요구했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9시에 출근할 때 혼자서 8시에 출근하고, 다른 사람들 한창 일하고 있을 때인 오후 5시만 되면 퇴근하고 피트니스 센터로 내려가서 운동을 하곤 했다. 물론 약 한 달 정도 그렇게 지내고 프로젝트가 시작해버려서 행복한 시간이 끝나버렸지만 그 한 달 덕분에 병가 복귀 후 회사 생활에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자유로운 시차 출퇴근제를 꿈꾸는 일개 회사원이지만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것 같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거나 회사에서 정해놓은 특정 시간대(예를 들면 오후 1시부터 5시)에만 자리를 지키면 되는 분위기의 회사들도 있다고 한다. 또, 어떤 회사들은 주 40시간을 정해서 4일에 몰아서 일을 하고 쉬어도 되는 그런 시스템도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 회사도 '워라밸' 관리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그 시스템이 내 워라밸을 관리하는지는 2년째 미지수다. 특히 우리 프로젝트는 망이 분리되어 있어서 내부망에서만 돌아가는 워라밸 시스템이 프로젝트 망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 내 워라밸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고민해본다.
왜 우리 회사는 시차 출퇴근제가 자의적으로 이뤄지지 않(못하)는가?
여기서 내가 취준생 때 미처 몰랐던 IT 외주의 개념이 나오는 것 같다.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취준생 때 입사 원서를 쓰고 할 때는 IT계열사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웬만한 대기업들은 IT기업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 그룹에는 현대 오토에버라든지, 삼성전자의 삼성 SDS, LG전자의 LG CNS, 롯데그룹의 롯데정보통신처럼 그룹 내 IT 서비스를 담당하는 IT 자회사들이 있다. 나도 어떠한 그룹의 IT자회사로 입사원서를 썼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무수한 IT 자회사가 있는지, 그 회사들 간의 차이는 어떠한 점이 있는지 몰랐다.
만약 누군가가 내 주변에서 나처럼 전공을 바꿔 개발자를 준비하는 취준생이라면 IT 자회사는 뜯어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얼마나 좋은 소리를 하겠느냐만 규모가 작더라도 회사가 직접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회사만의 솔루션이 있는 곳에 가길 추천한다. 즉, '갑'인 회사에 가라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시차 출퇴근제'는 회사 생활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회사의 단순한 논리를 따져봤을 때, 일을 하는 시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월급을 주는 직원이 회사가 정한 규칙안에서 언제가 되었든 일만 하면 돈을 주겠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만약 여기에 '갑'과 '을'의 관계가 껴버리면 '갑'의 입장에서는 '을'의 사람의 시간을 산 것이니 '을'이 어떻게든 최대한의 효율성을 내길 바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갑'은 '을'의 업무 시간은 최대한이어야 할 것이며 그 시간 동안 최대의 효율을 내길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을'의 회사 경영진들은 과연 '을'회사 직원들이 시차 출퇴근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아무리 '을'인 회사가 집중 근무시간같이 하루에 네 시간을 기본 룰로 정했다 쳐도 감히 '갑'에게 '을'회사의 정책을 들이밀면서 '우리 직원 출퇴근 시간은 관여 마시고 집중 근무시간에 있는지 없는지만 체크하세요'라는 식의 공문은 절대 못 보낼 것이다. 근데 여기서 더 심각한 문제는, 만약에 '갑'인 회사가 여럿이라면? 시차 출퇴근제의 ㅅ자도 못 꺼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갑'과 '을'의 굴레는 단순 시차 출퇴근제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에 직면하면서 시차 출퇴근제와 함께 급부상한 키워드는 '재택근무'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논리로 '을'회사는 '갑'회사에게 절대 본인 회사의 직원들이 재택 근무를 시켜달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나에게 '왜 이렇게 '갑'회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거야?'라며 나를 '을'회사에 다니는 열등감 덩어리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4년 정도 '을'회사에 다니다 보니 보다시피 열등감도 생겼고 못 참겠어서 '갑'회사로 이직하는 여러 동료들을 보면서 늘 새로운 갑질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한 팀에서 재택근무 스케줄을 팀장에게 보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갑'회사의 팀장이 '왜 외주 직원들을 재택 스케줄에 넣었느냐'며 '갑'회사의 직원들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재조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안 그래도 '을'회사의 입장에서는 여러 '갑'회사로 퍼져있는 직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재택근무와 내외하며 입에도 올리지 않고 있었는데 그러한 수모를 겪으면서까지도 '을'회사의 직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해야 했다.
나 스스로도 '갑'회사에서 '을'로서 근무한 적이 있기 때문에 단연코 말할 수 있다.
IT 외주 시스템은 쓰레기다.
우선 '갑'과 '을'은 절대 형제니 가족이니 그러한 거창한 범주의 단어로 묶일 수 없으며 굳이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단순히 수익성의 논리밖에 없다. 사회는 냉정하고 회사는 사람을 갈아서 돈을 버는 구조라지만 IT 외주 시스템은 그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배제되어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갑'과 '을'이라는 수직적인 관계 안에서 사람 간의 유대성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갑'사의 사람들이 단순하게 던지는 농담도 '을'회사의 직원에게는 상처일 수 있고, '갑'회사와 '을'회사의 독립적인 인사 시스템, 복지 등으로 인해 서로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가 겪은, 겪고 있는 이곳이 지엽적이라 일반화하기 힘들 수는 있겠지만 이 시스템에서 과연 어떻게 잘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만약 처우와 인사, 복지 시스템이 '갑'과 '을'이 동일하다면 굳이 두 개의 회사로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입사 전에 내가 이런 IT 외주 시스템을 알았더라면 절대 그룹의 IT계열사는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시스템은 단순 인력 사무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에 나는 그저 '일용직 노동자'다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나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시간을 겪고 나니 IT외주 시스템에서는 내가 그렸던 개발자의 미래와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