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성공에 대한 생각 재정립 - 1

내가 생각한 성공한 개발자의 삶

by 모라키무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 내 눈에 들어온 개발자들은 소위 성공한 IT기업의 CEO들이었다. Meta(구 Facebook)의 Mark Zuckerberg라든지 Microsoft의 창립자 Bill Gates라든지 차고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어놓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리던 이상은 위에 언급한 사람들처럼 세상을 뒤집는 기술을 만드는 개발자였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진 않았었지만 20년 뒤의 나는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은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야망 쩌는 미래를 그렸었다.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3학년 2학기였기 때문에 3학년 겨울방학, 4학년 1학기 동안 내가 어떻게 취직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길을 찾았던 것 같다. 잡코리아, 자소설닷컴 같이 흔히들 취업하기 위해 직장을 찾는 곳에서 '나는 개발자로 지원할 거야'하면서 채용 공고의 '마케팅'과 '영업'을 외면하며 기술 직군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충격적인 건 '전공 무관'은 내가 앞에서 스루한 '마케팅'과 '영업' 직군뿐이었다. 보통 개발자나 기술 직군은 채용 공고에서도 엄청나게 세분화해서 신입을 뽑았고 지원 자격에는 관련 학사나 석사만 뽑는다는 말을 기재해놓았다. 나는 심지어 컴퓨터공학을 복수 또는 부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3학년 2학기이다 보니 최소한의 학점으로 IT에 발을 걸칠 수 있는 요상한 전공을 복수 전공으로 이수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지원 자격을 충족 할리 없었다.


잠시 절망했지만 '그래도 이왕 개발자 하기로 마음먹은 거 다른 길을 찾아보자'라는 생각으로 '비전공생 개발자'와 같은 키워드로 열심히 찾아보았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IT국비 교육 프로그램, 부트캠프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성격이 굉장히 급한 편인데 IT국비 교육이나 부트캠프는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코스가 많았다. 그리고 무슨 배짱이었는지 인문학도 컴퓨터공학도 아닌 요상한 전공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했고 (주전공에 비해) 학점이 꽤 높으니 나는 이미 개발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고 착각했다. 그때 내가 컴퓨터로 해 본 것이라곤 Java로 계산기를 만든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scanner로 숫자 두 개 받으면 더해주는 그런...). 그래서 IT국비나 부트 캠프는 또 스루하고 나 같은 애를 바로 뽑아주는 회사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회사들이 있었다. IT에 관심도만 있다면 3~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회사에 입사시킨 후에 자체 교육을 통해 회사 입맛에 맞는 개발자로 길러내는 채용 과정들이 더러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 '개발자가 되자'라는 생각뿐이었으므로 그런 채용 공고를 보자마자 냅다 지원서를 내고 만다. 웃기게도 냅다 처음으로 쓴 회사에 인적성을 보고 면접을 치른 후에 합격까지해서 지금까지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물론 이때 잡플래닛에 이 회사를 검색을 안 해보진 않았지만 평점이 약 3.4 정도였고 이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이 평점은 사명이 바뀌어서 일시적으로 높았던 것이었다). 처음으로 쓴 회사에 합격을 해서 4학년 2학기를 교육생으로 회사에 진행하는 교육을 받고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개발자'가 되었다.


내 인생이 짤막한 동화였다면 '그렇게 모라키무는 개발자가 되었답니다'하고 위에서 끝나야겠지만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생각보다 희한했다.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그렸던 실리콘벨리의 CEO들의 삶을 꿈꿨지만 16층짜리 건물, 한 층에 100여 개에 달하는 책상에 중 한 자리에 앉아 내가 받은 일은 현재 잘 돌아가는 시스템의 화면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개발'도 아니고 '파악'이었다. 아무래도 신입 사원이 회사에 들어오면 '병아리', '백지', '무(無)' 같은 단어와 결을 같이 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일을 가르쳐주고 시키는 상사들 만난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을 파악하고 회의에 불려 다니고 조금씩 소스에 손을 대고 했었다.

그렇게 소스에 손을 조금씩 대고 가끔 사고 치고 화장실에서 울다가 또 소스 고치는 SM 개발자로서 2년을 보냈다. 어쩌다 보니 병가로 잠시 두 달을 쉰 다음에 SI 개발자로 새로운 솔루션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2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야망 쩔던 취준생 시절의 그렸던 나의 미래가 조금씩 바뀌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바뀐 생각은,

개발자로 남을 것인가, 관리자가 될 것인가

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IT서비스 플랫폼이나 애플리케이션을 떠올렸을 때, 새로운 것을 주로 만드는 사람을 SI 개발자, 그 시스템이 잘 돌아가기 위해 유지 보수하는 사람들을 SM 개발자라고 일컫었다. 2년씩 두 개를 모두 경험해나가면서 항상 '와 이렇게 30년씩 어떻게 일을 하지'라고 생각 없이 말하면 가끔 진지하게 진로 상담을 해주시던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라고 물으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들과 내가 했던 일을 짐작해보건대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돈을 못 벌 생각은 잠시 접어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에 욕심이 많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으나 입에 풀칠할 정도로는 연명이 가능해 보였다. 나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워낙 사람이 없는 직종이고 아직 내가 있는 분야는 힙한 스타트업으로 젊은이들이 다 뺏긴 분야 중 하나였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고인물이 된다면 임금 피크제를 겪고서라도 외주 프리랜서로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AI로 대체된다는 가능성 고려 안 함).

그래서 나의 진로에 함께 고민해주시던 분들이 저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이렇게 개발하는 것이 너의 적성에 맞느냐고. 그래서 나는 또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

- 개발이 적성에 맞다는 건 어떻게 아는 건가요?

어이없게도 이렇게 물어보면 그분들은

- 10년 해보면 알 수 있지라고 하셨다.

더러는 5년, 3년도 있었으나 10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그럼 나같이 성격이 급한 사람은 침울해지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 사는 인생을 10년이나 해봐야 적성에 맞는지 알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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