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던 어느 날이 있었다.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내 하루를 가득 채우던 시절.
몸도 마음도 바닥에 붙어버려서 움직일 힘조차 없었고,말하는 법도 잊은 사람처럼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세상과 연결된 끈들이 하나둘씩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웃고, 일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그저 오래 누워 있었다. 침대에 누워 눈만 감고 있어도 머릿속은 복잡했고,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 마음의 무게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된 듯, 내 몸과 마음만 남겨진 채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유도 없이 손을 들어 펜을 잡았다.
그건 의미도, 욕심도 없었다.
‘잘 해보겠다’는 결심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의 선택은 작았지만, 나에게는 필사적인 생존이자 숨통을 트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때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우울의 깊은 웅덩이 위에 놓인 아주 얇은 다리처럼,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빠져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그 얇은 다리를 붙잡고 버틸 수 있게 해준 존재였다.
그날 이후 나는 틈만 나면 펜을 들었다.
밥을 먹고, 아이들을 재우고, 직장에서 쉬는 시간 겨우 5분이라도 그냥 조용히 펜을 꺼냈다.
그림이 잘 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릴 때만큼은 불안이 잠깐 멈췄다.
그 잠깐의 멈춤이 내 마음을 살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 이 작은 움직임이 날 살리고 있었구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하고, 집안일을 돌보고, 숨 돌릴 틈도 없는 와중에 나만의 무언가를 붙들고 있다는 건
언제나 미련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사치처럼도 느껴졌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그 사치 같던 마음이 나를 다시 세상 쪽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이고, 일하는 사람이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의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있었기에, 작은 시도들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작은 노력들이 이제 돌아보면 하나의 길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대단한 성공담이나, 남몰래 숨겨둔 비밀을 공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처럼 막막하고, 불안하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작게라도 건네고 싶은 말이다.
“이렇게 시작해도 괜찮아요.”
우울이 깊던 어느 날, 나는 펜을 들었다.
그 아주 작은 시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만한 시작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
조금 느리고, 조금 흔들리더라도, 그래도 앞으로 가는 존재다.
그리고 당신 역시 이미 그 길 위에 있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의 첫 걸음은 이미 시작되었다.
작고 느린 한 걸음이지만, 그것이 바로 변화의 시작이다.
당신이 펜을 들고,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작은 시도를 반복하는 순간, 그 작은 움직임이 결국 당신을 만들어갈 것이다.
세상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당신의 마음과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