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형과 형수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어느새 옛 얘기로 샜다. 늘 같은 레퍼토리, 그러나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추억을 함께 떠들다 보면 언제나 형을 향한 타박으로 귀결된다. 10대 때 나를 징그럽게도 못 살게 군 형을 엄마, 아빠가 눈을 흘기며 나무라면 나는 그 옆에서 맞장구치거나 그저 웃는다. 이제는 옛일이므로.
에피소드는 형과 나의 초등학생 시절에 도착해 있었다. 아빠가 형수를 향해 말했다. “얘는 로봇 가지고 놀 때, 얘는 인형 옷 입히기 같은 거 좋아했어.” 그러자 형이 맞장구쳤다. “맞아. 그래서 내가 맨날 얘한테 뭐라고 했었어. 기집애냐고.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 그때를 후회한다는 형에게 나는 되물었다. “진짜 후회해?” “당연하지.”
나도 후회한다. 한 번이라도 들이받아 볼걸. 남자애가 기집애 같은 게 대체 뭐가 그렇게 잘못인지 따져 묻기라도 해 볼걸. 형이 그런 말을 할 때면 어린 나는 그저 헤헤 웃었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생각에 잠겼다. 왜 나는 기집애 같지? 왜 나는 아무리 갖은 애를 써도 로봇이 재미없고 인형 옷 입히는 건 이렇게나 재미있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다 볼기짝을 만져 보면 평소보다 뜨끈해져 있었다. 수치심은 체온으로 발현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얼마 전 군대 동기를 3년 만에 만났다. 고깃집 원형 테이블에 마주앉아 삼겹살 3인분과 술을 시키려던 참이었다. 친구는 소주를 마시자고 했지만 나는 맥주 한 잔 먼저 마시고 소주로 넘어가겠다고 했다. 그 말에 동기가 부산 애다운 걸쭉한 사투리로 말했다. “기집애가.” 서른이 넘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들은 탓이었을까. 헤헤 웃는 얼굴로 상황을 능숙하게 얼버무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대체 왜 소맥을 마시는 게 기집애 같은 건지, 그 말이 성차별적이라는 건 아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악의가 조금도 없는 얼굴 앞에서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황급히 말을 돌리며 친구 몰래 왼뺨을 만져 보았다. 술은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어떤 말은 조금도 옛일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술이 도착하자마자 친구와 잔을 부딪혔다.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지만 얼굴의 온도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