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영화를 보러 갔다. 상영관 입구 쪽 벤치에 앉아 입장을 알리는 직원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애인이 대뜸 물었다. “형은 일기 쓰는 게 왜 좋아?” 자기도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뭐라고 했더라. 쓰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솔직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기억나는 건 왜 갑자기 일기가 쓰고 싶어졌냐는 내 물음에 대한 애인의 답이었다. “일기를 써 놓아야 죽고 나면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것 같더라고.”
우리는 <에밀리아 페레즈>를 봤다. 멕시코 카르텔의 수장 ‘후안’은 유능한 변호사 ‘리타’를 납치해 막무가내로 요구한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성 전환을 도우라고. 자신은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부터” 여성이 되고 싶었다면서, 아내와 자식들을 떠날 각오까지 됐다면서 말이다. 리타는 후안의 성 전환 수술을 비밀리에 추진한다. 후안은 죽을 위기를 넘어선 끝에 ‘에밀리아 페레즈’라는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몇 년 뒤 페레즈는 후안이 죽은 줄만 아는 멕시코 사회로 돌아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축적한 부를 카르텔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쏟아붓는다. 무수한 사람을 죽인 후안으로서의 죗값을 덜어내려는 듯이. 그러나 후안이 페레즈가 되어도 살인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듯, 원하는 바를 모조리 이루려는 페레즈의 욕심 또한 그대로다. 그리웠던 자식들을 찾아가 스스로를 후안의 이모라고 속이며 함께 살아간다. 이후 악착같이 비밀을 지키던 페레즈는 자신의 비밀에서 비롯한 걷잡을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결국 목숨을 잃는다. 멕시코 사람들은 약자를 수호한 영웅이 영면했다며 그를 추모한다. 비밀로 점철된 한 사람의 삶의 말로를 슬퍼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질문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영화에 관해 일기를 쓰며 생각했다. 나의 비밀이 내가 없는 세상에서 발각되면 그건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나와 애인이 일기를 쓰는 건 훗날 세상에 알려지기 위함이지만 동시에 지금의 비밀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함은 아닐까? 삶이 일기장에만 쓰인다면 그 끝에서 나는 슬퍼할까 안도할까?
일기를 굳이 브런치에 옮겨 적는 건 일기장 밖으로 삶을 뻗고 싶은 나의 욕심이자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페레즈도 내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