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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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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디 Jul 07. 2024

D라는 세계


기억나? 우리가 처음 D 어플에서 만난 날 말이야.


아마 고2 때였을 거야. 그 시기의 나는 분명 여자를 좋아한다 생각하고, 여자와 썸을 타거나 연애를 하기도 했지만, 흥분되는 상상을 하면 근육질의 남자가 먼저 떠오르는 발칙하고 모순된 아이였지. 사실 그런 지는 한참 되었지만 어느 날 새삼스럽게 ‘혹시… 나 호모인가?’ 싶어 관련된 정보를 찾다가 D 어플을 알게 됐어.


게이들이 만남을 갖기 위해 사용하는 어플이라는 어느 커뮤니티 글을 보고 무작정 형이 쓰던 아이팟으로 다운을 받았어.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느렸던 와이파이가 그날따라 유난히 더 굼뜬 것 같더라. 설치되기까지 침을 몇 번이나 삼켰는지 몰라.


마침내 접속한 나는 충격에 빠졌어. 세상에 호모가 이렇게나 많다니! 게이들의 프로필 사진이 나와 위치가 가까운 순으로 조각보처럼 다닥다닥 붙어 화면을 채웠어. 하나하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지. 어떤 사람은 자기 얼굴이나 몸을 대놓고 드러냈고, 어떤 사람은 자신 있는 부위만 교묘하게 찍어 나를 설레거나 헷갈리게 만들었어.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아무 사진도 없는 ‘회색 화면‘이었고. 왜 카카오톡 프로필 기본 화면을 흑백 처리한 것 같은 그 사진 있잖아. 나 역시 그 기본 화면 뒤에 숨어 있었어. 익명성을 보장받은 채로 타인을 훔쳐보는 일은 짜릿했어. 사진을 누르면 나타나는 프로필 메시지에는 각자의 소개(라기보다는 자랑 아니면 구애에 가까운) 글이 적혀 있었지. 키랑 몸무게는 몇이고, 어떤 사람을 찾고 싶고, 성향은 어떻고, 사이즈는 얼마나 되고… 열에 아홉은 거짓말쟁이라는 걸 모르고 얼마나 꼼꼼하게 읽었는지 몰라. 


나는 뭐라고 적었으려나. 나이도 키도 몸무게도 뭐 하나 정확하게 적으면 신상이 노출될 수 있다는 과한 걱정에 조금씩 교묘하게 늘리거나 줄인 것 같아. 그러다 “안녕하세요.” 하고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쪽지가 오기라도 하면 만천하에 정체를 들킨 것마냥 부리나케 어플을 삭제했어. 형한테 들키지 않게 다운로드 받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고. 스스로 해선 안 될 짓을 했고, 가면 안 될 곳에 갔고, 보면 안 될 걸 봤다고 생각했나 봐. 훗날 D 없이는 못 살게 될 줄도 모르고… 참 귀엽지 않니?


아담과 이브가 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겠니. 한 번 눈뜬 욕망에 브레이크 거는 게 보통 일이겠어? 나 역시 D라는 동산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듯 수시로 반복했어. 깔고 눈팅하고 지우고, 깔고 눈팅하고 지우고, 깔고 눈팅하고 지우고…. 하루는 50미터 근처에 있다는 익명의 동갑내기에게 말을 걸어볼까 고민하다 ‘미쳤구나?’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지우고 한두 달은 안 들어가기도 했어.


얼마 안 가 다시 접속한 나는 너랑 메시지를 주고받게 됐지. 너한테 묻고 싶어. 우리가 어떻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지 기억나니? 그 과정에서 어떻게 너는 나인 걸, 나는 너인 걸 알게 된 건지 생각나?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잘 모르겠다. 선명히 기억에 남는 건 똥 싸고 있는데 네가 “나 J얔ㅋㅋㅋ”라고 메시지를 보낸 걸 보고 너무 놀라서 휴대폰을 변기 안에 떨어뜨릴 뻔했다는 것 정도? 한참을 경악한 채로 있다가 푸하하 하고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한시절 죽고 못 살았던 친구가 나랑 같은 금기의 낙원(혹은 지옥)에 있다는 게 우습기도,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안심이 되기도 했나 봐. 아마 우린 그날 서로의 정체를 비밀에 부치자고 약속했겠지? 진짜 미안하지만 나는 그 약속… 진작 깼는데 너도 그랬니?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흘러 우린 서른이 넘어버렸네. 그 긴 시간 동안 내 20대는 D와 함께였다고 봐도 무방해. 쉽게 쉽게 헤어진 애인들을 그나마 만날 수 있었던 장소도,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 치솟는 욕구를 순식간에 해결한 변소도 바로 거기였지. 


알지? 거기가 얼마나 냉혹한 곳인지. 사회에서 설움받는 소외된 동지들끼리 똘똘 뭉치긴커녕 서로를 배척하고, 질투하고, 멸시하고… 소위 ‘식’이 되지 못하면 먹힐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지독하게 잔혹한 생태계잖아. 고심하고 고심해서 고른 사진을 용기 내서 보내면 열에 다섯은 답장이 없거나 나를 차단했어. 셋 정도는 답장을 해 줬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대화를 나눴지. 나머지 둘 중 하나는 나를 맘에 들어하는 눈치지만 안타깝게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남은 하나 정도가 그나마 기대를 돋우는 식이었어. 얼마 못 가 대화하다 보면 알게 돼. 괜찮은 놈인 줄 알았으나 심각한 노잼이거나, 성향이 안 맞거나, 특이 취향이거나, 남의 사진 도용한 놈이거나… 인연이 못 될 이유는 참 다양했어. 


나 역시 무시와 차단과 단답과 능욕으로 숱한 동지들의 기분을 잡치게 했으니 억울해할 자격은 없었지만, 이따금씩 못 견디게 싫어지곤 했어. 이 어플이, 여기 있는 남자들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내가.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 ‘J는 좋겠다. 결혼해서. 더는 어플 안 해도 되잖아…’ 애인 있는 사람들이 D에 머물기도 한다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말이야. 


살면서 처음으로 사귄 지 500일 넘은 애인과 만나고 있어. 애인이 정말 좋아. 보고만 있어도 막 꼬집고 싶고 깨물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도 조금도 지루하거나 양심에 찔리지 않을 만큼. 그렇다고 애인이랑 마냥 평화롭기만 하냐면 그건 또 아니야. 가끔 서로 지독하게 못된 말을 주고받고, 끝도 없는 논쟁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을 때도 있어. 그러면 여느 연인들처럼 생각해. ‘헤어져야 하나?’ 그럼 또 내 머릿속은 그럴 수 없는 이유들로 복잡해지지. 사랑하니까, 이 사람만큼 착하고 귀엽고 똑똑한 사람을 못 만날 테니까, 우리는 어느덧 ‘동거’나 ‘결혼’이라는 말을 수시로 입에 올릴 만큼 깊은 관계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나도 D라는 세계로부터 멀어졌으니까. D로 돌아가 먹히기 위한 싸움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애인과 화해를 하고 난 밤이면 곁에서 다섯 살 아이처럼 자고 있는 애인을 꽉 껴안기도 해. 내가 다시 사랑을 택한 결정적 요인이 애인을 향한 마음인지 D에 대한 두려움인지 잠시 헷갈렸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어쩌면 애인도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나만큼이나 D를 지긋지긋해하거든. 어쩌면 D가 우리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반 같기도 해. 서로를 그곳으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우린 더 열심히 사랑하는지도 몰라. 


두 달 전쯤, 애인이랑 3호선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어. 애인이 나를 툭툭 치더니 조용히 읊조리더라. “저 아저씨, D 하고 있다.” 눈이 똥그래진 나는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면서 3미터쯤 떨어져 있는 아저씨를 재빨리 훑었어. 4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아저씨는 몸에 착 붙는 흰색 반팔에 청반바지를 입고 크리스찬 디올 로고가 빼곡하게 박힌 크로스백을 둘러멘 채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어.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정말 D를 하는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열심히 관리한 까무잡잡한 피부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잔근육이 세월 따라 별수 없이 탄력을 잃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지. 


마침 열차가 도착했어. 좌석이 널널해 애인과 나란히 앉았는데, 글쎄 내 오른쪽에 디올 아저씨가 앉은 거 있지. 정면을 보는 척하면서 동공을 힘껏 오른쪽으로 굴려 아저씨의 폰 화면을 훔쳐봤어. 정말 D를 하고 있더라. 그것도 아주 가열차게. 주변에 있는 남자들의 사진을 엄지로 재빠르게 넘기면서, 그러다 맘에 드는 애를 발견하면 머뭇거림 없이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 아저씨는 ‘게이더’도 없나? 내가 게이인 줄도 모르나? 아님 남을 아예 신경 안 쓰나?’ 별별 생각을 하는 와중에 디올 아저씨가 내렸고, 나는 애인에게 스캔 결과를 보고했어. “아저씨 대단해. 진짜 열심히 하시더라. 좀 짠할 정도로…” 참 오만하지? 아저씨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D를 했을 수도 있는데, 아저씨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는데. 그에게는 D가 완벽한 에덴 동산일 수도 있는데, 함부로 동정하다니. 


그럼에도 D는 나에게 여전히 낙원이라기보단 지옥에 가까워서, D로 돌아간 40대 후반을 상상하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서, 애인에게 종종 물어. “나랑 살 거야?” “당연하지.” “나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살 거야? 막 똥기저귀 갈아 주고 그럴 거야?” “당연.” 대답에 흡족한 나는 애인을 세게 안아. 나를 안은 애인의 양팔에도 힘이 실려. 우리는 아무 말 않고도 서로 얘기하지.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말자고.


그러니까 한국 오면 꼭 연락 줘. 너랑 다시 마주치는 곳이 D는 아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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