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에도 성숙이 필요해

by 랑지

40~50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헤엄을 치다 보면 물속에 있어도 땀이 난다. 출근하기 전 수영을 하는 것이 사실 번거롭기는 하다. 그럼에도 나는 물속에 들어가서 움직이는 것이 정말 좋다. 수영 후 체온조절 사우나 잠깐 들어가는 것도 피로해소에 꽤 도움이 된다. 다이어트가 주목적은 아니지만 하다 보면 살도 조금 빠진다.


몇 년간 강습을 해오다가 재등록 기간을 놓치고 나니 그 이후로는 등록이 쉽지 않다. 자유수영만으로도 무척 상쾌하고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도 있어서 매우 만족한다. 2월 첫날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다들 월초에는 의지력이 솟아나니 부지런해지나 보다.


수영장은 샤워 시설과 탈의실이 있어서 복잡하다. 풀장을 들어가기 위해 청결은 당연하니까.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곳이니 더욱 더 청결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또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지켜야 할 매너도 있다.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아침시간에 유독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다. 어른들은 부지런하고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니 아침 일찍 운동을 하는 것이리라.


수용 인원에 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샤워장은 언제나 만원이고 대기를 해야 한다. 특히나 강습을 하기 위해 들어가고 강습이 끝나고 나오는 시간대가 겹치다 보니 샤워부스 자리 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늘 뒤에서 기다리거나 먼발치에서 끝나는 사람이 나오면 들어가곤 한다. 매일 다니다 보니 낯이 익은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중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분은 늘 느긋하게 들어오신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그렇듯, 그분도 구부정한 허리와 절뚝거리는 다리로 보아 많이 불편하신 것 같다) 그분은 수영은 거의 안 하고 사우나와 온탕만 이용하시는 분이다. 샤워부스 맨 안 쪽으로 들어와서는 샤워하는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대놓고 얘기하신다. 마치 당신의 고정석인양 말이다. 특히나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샤워 중에는 말도 없이 은근슬쩍 목욕용품 바구니를 놓고 들이댄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그냥 비켜준다. 나와 함께 다니는 작은 딸에게도 그렇게 하신 적이 있다.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냥 양보를 해주곤 했다.


그런데, 오늘 그 할머니는 결국 임자를 만났다. 샤워용품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사우나까지 하고 와서는 자기 자리라고 비켜달라고 하니 씻고 있던 중년의 아주머니는 참지 않았다. 한참 고성이 오고 갔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는 그 자리를 쓰겠다고 요구했다. 어이가 없는 아주머니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샤워장은 들어오는 순서대로 씻는 곳이고, 네 자리 내 자리가 없다고."

그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시선을 피했고 할머니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나이 듦이란 어떤 것일까?

그동안 살아온 삶의 패턴이 습성화가 되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지 않는 여러 가지 행동들이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기 위해 큰소리로 훈화하는 어르신들도 많이 봤다. 헛기침을 하거나, 무릎을 툭툭 치거나. 간혹 그런 분들이 내 앞에서 그럴 때가 있었다. 그런 행동을 할수록 더 비켜주기 싫은 게 사실이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데 간혹 어떤 노인들은 지갑은 닫고 입만 열려고 한다. 대우받기를 바란다. 내가 이렇게 나이 들었으니 젊은 너네들이 양보하고 배려 하라며 억지 효도를 만들려고 한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로 나이 들었다고 보상받아야 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하고, 국가가 그 개인에게 해주면 된다. 세상에 나오는 순간 동등한 대우를 받고 동일한 편리를 제공받아야 한다. 나이 듦이 권력이나 벼슬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이 든 어른들이 더 어른답게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야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겠지.

노인은 그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터득한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주위만 봐도 지혜롭다기보다는 나이 들수록 더 고집이 세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즐겁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맨날 '빨리 죽어야지' 라며 맘에 없는 소리 말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보는 것.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 나가 고스톱이라도 치시라) 상대를 배려해 주는 것 등 많은 것들을 연습해 나가야 한다. (자식에게 바라지만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면 좋겠다)


[아름다운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거기에 나오는 어른 '김장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가진 것은 사회가 준 것이니 다시 사회로 돌려준다."

평생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과 섬김과 나눔을 실천해 온 참된 어른의 모습이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베풀고 섬기는 사람이 아닐까.


SE-055bf563-8d8e-4a63-a495-0f11fa670e06.jpg [어른 김장하]_이미지출처_네이버블로그_심심킬러


언젠가 카페에서 모임을 하던 나이 지긋한 남성 몇 분을 본 적이 있다. 연말 즈음이라 송년회를 마치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커피한잔 하러 들어온것 같았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시며 커피를 다 드신 후 누군가 말씀하셨다.

"우리 내년에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정중한 모습이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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