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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Feb 23. 2024

그곳에 가면 더 이상 약은 먹지 않겠지요.

생애 최초 설계도, 최종안과 비교해봐야겠다.


날이 지난 달력을 부욱 찢어 깨끗한 뒷장을 반듯하게 펼쳤다.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동서남북 방향을 잡고 대문을 낸다. 다행히 도로까지 우리 땅이라 입구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대문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오래된 느티나무까지 있으니 데크를 만들어 놓으면 여름에 쉴만한 터가 될 것 같다. 입구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끝까지 걸어가면(몇 걸음 안되지만)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남편이 다니던 초등학교 분교가 보인다. 오래전 폐교가 되었고 누군가 운동장을 가꾸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바로 옆으로는 조그만 교회당이 있고 그 앞으로는 온통 너른 논이 펼쳐져 있어서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일렁인다. 약간 왼쪽으로는 또 다른 마을이 있고 몇 가구 안 되는 주택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해 질 녘에는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하는 곳. 마당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집을 짓기로 했고,  오른쪽으로는 작은 썬룸을 지어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카페 분위기를 내기로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꼭 황토방을 만들어 주고 싶다며 안방에는 보일러와 황토방을 접목해서 지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큰소리를 친다. 

남편은 요즘 고향에 집 지을 생각에 밤잠을 설쳐가며 유튜브를 섭렵 중이다. 



위에 사진들은 우리가 지을 집 마당에서 바라 본 앞 풍경이다. 


내가 처음부터 남편 고향에서 노후를 보낼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2~3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남편의 전원생활을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컨테이너를 놓고라도 고향 마을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길래 주말부부를 불사하고라도 나는 가지 않으마 했다. 우선 시골에서 살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나는 게으르고 아침잠도 많은 데다 커피도 느긋하게 마셔야 하며, 꼴에 글쓰기를 좋아한답시고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끄적거릴 때가 많다.  책은 읽지 않아도 책과 함께 멍 때리는 시간을 좋아하니 시골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곤 전혀 예상할 수 없다. 풀이 자라면 풀도 뽑아야 하고 텃밭도 가꿔야 하고 전원생활은 부지런해야 할 터.



언젠가 회사에서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시간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늦여름 깨타작을 위해서 산더미 같은 깻대를 쌓아놓으시곤 동서네 부부에게 연달아 전화를 해서 싣고 가라는 부탁(명령)을 하시려고 했는데 둘 다 전화를 안 받는단다. 결국 전국 각지에 사는 나머지 자식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린 것이다. 그 핑계로 안부도 묻고 이런저런 대화도 하면서 고부간의 통화를 끝냈지만 내가 거기에 산다면 나 또한 커피 한잔을 내려놓고 마시려는 찰나 다라이(대야)에 쌓아 놓은 농작물을 이고 가라는 전화를 받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드려야 하는 일이지만 내 자유시간까지도 침해받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의무적으로 시댁에 간다. 시어머니의 안부와 시동생이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들러보러 가는 편이다. 그러면 안 해본 농사일이기에 낑낑대며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그런 일이 내일이 아니기에 힘이 들기도 하겠지만 남들은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나는 우아하게 커피나 마시고 있다면 그것 또한 한 동네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저러한 사소한 충돌의 예상과 굳이 시월드로 속하고 싶지 않은 얕은 내 마음이 오도이촌을 결정하지 못했다. 


매일 먹어야 하는 내 약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도시생활에 지쳐가는 나는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이 올 때면 식은땀과 함께 메슥거리다가 결국 화장실에서 토하기를 반복하고 머리는 쪼개질 듯이 아파온다. 시중에 나온 두통약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 동안 회사를 열심히 다니다가 주말만 되면 두통이 시전을 하는 내게 가족들은 꾀병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 억울했다. 하지만 먹던 것도 다 토해내기 시작하면 별수 없이 혼자 내버려 두고 일정에 잡혀있던 여행을 셋이 떠나가 버리곤 했다. 때로는 여행지에서, 때로는 회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두통이 내 발목을 잡아챘다. 가족들도 이내 지쳐갔고 나 또한 내게 내린 저주스러운 병인가 싶을 정도로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갔다. 병원을 찾아서 온갖 검사를 하기 시작하고 약을 처방을 받아먹기 시작하면서 차츰 횟수가 줄어들어갔다. 몇 해를 그렇게 보내다가 나 스스로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 여러 검색을 통해 두통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운동으로 인한 효과가 나와 잘 맞을 것 같아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등산을 좋아했는데 혼자 가려니 사실 쉽지 않았다. 그러다 산책길 코스를 발견하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두통의 횟수가 줄어드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연과의 호흡, 숲 속의 바람, 나무냄새등 자연에 속해 있을 아프던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체험했다. 그렇게 자연이 내게 주는 효과를 서서히 시골 생활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시댁도 가기 전에는 뭔지 모를 부담감이 있기는 하지만 가고 나면 정말 좋다. 


천천히 지나는 구름.

조용하고 한적한 골목길. 

아무도 없는 논밭길.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  

밤이면 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은은한 나무향기 문득문득 스치는 바람과 꾸미지 않은 오솔길.

그 길을 걷노라면 걱정도 근심도 다 사라지고 만다. 

이제 자연 속으로 들어가 흙과 숲과 바람에 내 몸을 치유해 보려고 한다. 

단점을 생각하면 못하는 거고 장점을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흙을 밟으며 사는 곳에서는 더 이상 저 알약들은 필요없을지도 모르겠다. 

칡 뿌리 한아름 캐면서 뽀끌뽀글 파마머리 윤택MC와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에 나올날도 가까워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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