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3: 화난 사람’이 되지 싶지 않았어
어제가 지나고, 오늘이 되었다.
토요일엔 중요한 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 일은 결국 실패로 끝날 거라고 어떤 유명 강사가 말했다. 학생들에게 주말이라고 놀지 말라는 말이겠지만, 나는 그 말이 내게도 해당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중요한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는 때일지도 모른다.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조용히 컴퓨터를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도 계속 잠을 잤다. 비가 사부작사부작 내려서, 잠들기 좋은 날씨였다. 나는 잠을 통해 감정을 정수해 보려 했다. 수면 속 어딘가, 깊은 무의식에 닿으면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다른 사람이 10만큼 잘못했더라도, 50만큼 화를 내면 안 돼.”
그 말은 명령처럼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 화를 냈던 그 50의 몇 배로 네가 더 힘들어질 거야.”
그건 경고였다.
“결국 그렇게 하다 보면,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거야.”
마지막 말은 공포처럼 다가왔다.
재미있게도, 남편의 설명에는 항상 숫자가 들어간다. 감정의 무게를 수치로 표현하는 방식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논리라는 이름으로 다정해진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왜 친구가 없어?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여보인데.”
그의 말에 나는 장난처럼, 그리고 조금은 진심으로, 그의 등에 올라탔다.
거실에서 안방까지 업어 달라고 깔깔거리며 애처럼 굴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화난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인간의 99% 고민은 결국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 틈에 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또, 그들로 인해 상처받는다며 원망한다.
우리는 참 모순적인 존재다. 그 모순은 어쩌면 태생적 기형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맺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혹독하게 어렵다.
가끔은 생각한다.
인류는 왜 이런 후진 유전자를 품고 진화해왔을까?
차라리 관계맺기를 잘하는 유전자만 살아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지금쯤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조금 더 본능처럼 알았을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