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우는 한 끼 | 남아공 소울푸드 '팝(Pap)

부담은 나누고 기쁨은 채우며, 함께 만들어가는 파티

by morasafon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 이른바 ‘소울 푸드(Soul Food)’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기억의 총합이 아닐까. 한국인인 나에게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밥 한공기와, 칼칼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김치찌개가 그런 존재다. 그렇다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소울 푸드는 어떤 모습일까. 그 음식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남아프리카 공화국 Mooras(가명)와의 우연한 대화에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후 2시, 곧 사촌의 생일 파티에 가야 한다며 들떠 있던 그녀에게 무심코 건넨 질문 하나가 나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아공의 어느 집, 따스한 온기가 넘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시간과 정성이 빚어내는 온기, 남아공의 주식 팝(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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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중심에는 바비큐와 함께 먹는 남아공의 주식, ‘팝(Pap)’이 있다고 했다. 밥? 팝이라는 이름은 내게 생소했다. Mooras는 손을 저어가며 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옥수숫가루로 만들어요. 잘게 빻은 옥수숫가루를 끓는 물에 넣고 계속 저어주면 돼요. 질감은 으깬 감자 같은데, 맛은 쌀밥과 비슷해요. 아무 맛이 나지 않아서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죠.”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팝은 두 가지 종류다. 물을 많이 넣고 부드럽게 끓이면서 설탕을 넣으면 달콤한 포리지(porridge)가 되고, 물을 적게 넣고 되직하게 만들면서 소금을 살짝 넣으면 밥처럼 먹는 단단한 팝이 된다. 30분에서 1시간, 불 앞에서 정성스레 저어야만 완성되는,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담긴 음식.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울 푸드의 첫 번째 조건이 아닐까.


Mooras는 팝을 ‘마음을 채우는 음식’이라 표현했다. 아침에 먹으면 온종일 든든해서 잠이 올 정도라고.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사람의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 화면 너머 그녀의 설명만으로도 팝의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각자에 접시에, 함께 나누는 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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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는 보통 구워진 바비큐와 신선한 샐러드, 그리고 하얀 팝이 한 접시에 담긴다고 한다. 퍽퍽할 수 있는 팝과 고기를 위해 토마토와 양파, 피망을 끓여 만든 그레이비 소스도 곁들인다. 남아공에서는 이 조합을 ‘브라이(Braai)’이라 부른다고 했다. 브라이는 단순한 바비큐를 넘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는 사회적 의식에 가까웠다.


“한국에서는 각자 밥그릇을 두고 반찬은 다 같이 나눠 먹는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조금 달라요. 특히 저희 집에서는요. 엄마가 주방에서 각자의 접시에 팝과 고기를 똑같이 나눠 담아주세요. 샐러드만 각자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죠.”

“왜 그렇게 하세요?”

“안 그러면 누군가는 자기 접시에 고기를 하나도 못 올리게 될지도 몰라요! 우리 가족은 모두 고기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저도, 오빠도, 엄마도 고기를 많이 가져갈 테니까요.”


그녀의 유쾌한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고기를 둘러싼 가족들의 귀여운 신경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접시에 고기와 팝을 공평하게 배분한다’는 규칙이 생겨난 것이다. 모두가 고기를 좋아하기에, 누구 하나 서운하지 않도록 미리 마음을 써서 음식을 나누는 방식. 음식을 나누는 방식에도 그 공동체의 문화와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인공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 파티 문화


파티의 주인공은 장소와 수고를 제공할 뿐, 모든 음식과 음료 비용은 참석자들이 함께 마련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인 지점이었다. Mooras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생일인 사람이 돈을 쓰게 하진 않아요. 축하해 주러 온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인 거죠.”


그 말에 ‘파티’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졌다. 주인공 한 사람의 부담과 희생이 아닌, 축하하는 마음들이 모여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기꺼이 나눌 때, 비로소 모두의 축제가 완성된다는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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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남아공 음식 ‘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음식 너머의 사람과 문화, 그리고 관계의 온기까지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어쩌면 소울 푸드란 ‘함께’라는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 요리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책임을 감당하는 그 모든 과정이 합쳐져 영혼을 위로하는 따뜻한 음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1. 팝 (Pap)

남아프리카를 포함한 아프리카 남부 지역의 주식으로, ‘밀리(mealie)’라고 불리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다. 물의 양을 조절하여 되직한 죽(stiff pap)이나 묽은 포리지(soft porridge) 형태로 즐긴다. 맛이 거의 없어 고기 스튜, 소스, 채소 등 다양한 요리와 함께 곁들여 먹는다. 지역에 따라 우갈리(Ugali), 은시마(Nsima)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2. 브라이 (Braai)

아프리칸스어로 '굽다(grill)'를 의미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바비큐 문화를 지칭한다. 단순한 요리법을 넘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모여 어울리는 중요한 사교 활동으로 여겨진다. 주로 양고기, 소시지, 닭고기 등을 구우며, 팝과 다양한 샐러드를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년 9월 24일을 '브라이 데이'라는 공휴일로 지정하여 이 문화를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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