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속도를 버리다 | 잔지바르에서 찾은 숨과 쉼

나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선택하다

by morasafon

뉴욕.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마천루 사이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노란 택시와 거리를 채운 인파. 그곳은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뜨거운 열망과 숨 가쁜 속도감으로 가득하다.


Xenia(가명)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형 기업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아프리카의 작은 섬,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 살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더 빨리, 더 높이'를 외치는 세상의 목소리 속에서 삶의 진짜 풍요로움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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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뉴욕, 닮은 꼴 도시의 속도


"서울 도심은 시끄럽고, 붐비고, 사람들은 아주 빨리 걷죠. 보행 속도가 그 나라의 경제속도와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나의 이야기에 Xenia는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떠나온 미국의 삶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해요.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돈을 좇아요. 스트레스가 엄청나죠. 하지만 여기서는 숨을 쉴 수 있어요."


끝없는 경쟁과 소비주의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적 여유를 잃어갔다. 그녀는 그런 삶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고 느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로운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더 차분한 삶을 살기 위해 잔지바르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다섯 명의 자녀를 둔 그녀에게 북적이는 대가족은 이곳에선 평범한 풍경이다. 평균 자녀 수가 여섯, 일곱 명인 잔지바르에서 그녀는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깊은 소속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의 선택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넘어, 삶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매일 장을 보는 삶, 매일 새로워지는 식탁


삶의 속도는 가장 먼저 식탁의 풍경을 바꿨다. Xenia는 아프리카의 작은 섬에서는 매일 신선한 재료를 사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두기보다 그날그날 자연이 주는 것을 먹는 삶. 그녀의 하루는 어제와 오늘, 장바구니에 담기는 생선과 채소의 종류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오늘은 생선과 쌀, 채소를 샀어요. 어제는 닭고기와 채소를 샀고요."


Xenia의 아침은 직접 만든 빵과 생강차로 가볍게 시작한다. 잔지바르에서는 점심을 가장 풍성하게 먹고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때로는 문어 수프나 '로조(Rojo)'라 불리는 고기와 카사바를 섞어 만든 특별한 수프를 먹기도 한다.


"이곳은 바다와 가까워서 신선한 해산물이 정말 많아요. 해산물이 가장 흔하고, 그다음이 닭고기, 소고기, 염소고기 순이죠. 오히려 닭고기가 해산물보다 비싼 편이에요."


바다에서 얻는 것이 더 풍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화된 시스템이 아닌,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섬의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식탁은 자연의 순리대로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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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가진 두 얼굴, 화려함과 그림자


Xenia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떠나온 땅, 미국으로 향했다. 온갖 채널을 통해 전 세계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쉽게 접하지만 그 이면의 깊은 속살까지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미국에는 좋은 점이 많지만, 차별, 폭력, 정신 건강 문제 같은 심각한 이슈들도 있어요. 제가 그곳을 떠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그녀는 넷플릭스 시리즈 '다머'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이웃들이 악취가 난다고 신고해도 '고기가 상했을 뿐'이라고 둘러대며 아파트 바로 옆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건. Xenia는 이 이야기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 시리즈는 매우 사실적이고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요. 한 번에 다 볼 수가 없어서 중간중간 쉬어야 했어요. 사람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죠."


그녀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복잡한 양면성을 이야기했다.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는 화려한 이미지 뒤에는 총기 문제와 같은 뿌리 깊은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미국인에게 총기 소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지만, 이제는 그 권리가 서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비극이 되고 있다. Xenia는 대화가 사라지고 총성만 남은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Xenia가 잔지바르에서 찾은 것은 단순히 느린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 쉴 틈이었고, 돈과 성공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과 공동체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였다. Xenia는 내게 잔지바르에 꼭 한번 와보라고, 가족과 함께 와서 바닷가에서 편히 쉬다 가라고 말했다. 그녀의 초대는 단순한 관광 권유가 아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다른 방식을 경험해 보라는 따뜻한 제안이었다.



잔지바르(Zanzibar)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에 속한 자치령으로, 인도양에 위치한 군도이다. 역사적으로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아랍, 페르시아, 인도, 유럽, 아프리카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스와힐리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중심 도시인 스톤타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