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0세에 죽을지도 몰라요. 90세를 걱정하진 않아요.
마흔아홉. 누군가에게는 절정의 나이지만, 한국의 직장인에게는 절벽의 나이다. '주된 일자리'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 100세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50대 초중반에 비자발적인 '퇴장'을 선고받는다. ‘은퇴’라는 두 글자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그 뒤에 남겨진 4, 5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막막함 때문이다.
"영국의 공식 은퇴 연령은 68세예요." Noorith(가명)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잠시 말을 고르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우린 그걸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요."
"우리는 68세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우리가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찰 때 인생을 즐기기로 했죠."
Noorith와 그녀의 남편은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자, 망설임 없이 영국을 떠나 프랑스 남부 시골로 이주했다. 몇 년 전 휴가용 별장으로 사두었던 오래된 시골집이 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프랑스의 생활비가 어떤지 물었을 때,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의 생활비는 영국보다 '훨씬' 적게 들어요."
그녀가 묘사한 프랑스 시골 생활은 단순하지만 풍요로웠다. 우선 날씨가 훨씬 좋아서 3월부터 10월까지 난방이 필요 없었다. 그녀의 집에는 중앙난방 시스템 대신 오래된 난로가 있다.
"우리는 정원에 있는 수백 그루의 나무에서 땔감을 직접 구해요. 겨울에는 그 난로 위에서 식사도 요리하죠. 난방과 요리를 동시에 해결하는 셈이에요."
가스도, 복잡한 도시 기반 시설도 없는 시골이라 주거세 또한 거의 무시할 수준이라고 했다. 그녀는 계산해 봤다며 놀라운 숫자를 알려주었다.
"집 보험, 인터넷, 세금… 집을 운영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합쳐서 일주일에 60유로(약 10만 원) 정도 들어요. 영국에 살 땐 한 달에 적어도 1,300~1,400달러(약 180만~190만 원)가 필요했어요. 차이가 어마어마하죠? 그 말은, 우리가 이곳에 살면 그만큼 일을 적게 해도 된다는 뜻이에요."
Noorith는 은퇴라는 개념 자체를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렸다. 그녀의 삶은 흔히 말하는 '파이어족(FIRE)'이나 '조기 은퇴'와는 결이 달랐다. 막대한 돈을 벌어 일찍 은퇴한 것이 아니었다. 대신, 삶에 필요한 비용의 기준점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
"저는 온라인에서 부업을 하고, 남편은 '핸디맨(Handyman, 만능 수리공)'으로 이웃들의 정원 일이나 자잘한 수리를 도와요. 어제는 일했지만, 오늘은 일하고 싶지 않아서 쉬기로 했어요. 우린 그냥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자유가 생긴 거죠."
연금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60세나 65세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내가 90세가 되었을 때를 미리 걱정하느라 지금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저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물론 그녀도 68세가 되면 영국 정부 연금을, 55세부터는 사적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필수'가 아닌 '보너스'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영국에서의 삶을 "Big Mess(총체적 난국)"라고 표현했다. 정부 연금(주 180~190달러 수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겨울철 가스비(주 60~70달러) 등을 내고 나면 식료품을 살 돈도 남지 않는 현실. 모두가 사적 연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의 생활비와 육아에 치여 가입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
그녀가 떠나온 것은 단지 영국이라는 나라가 아니었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저축해서, 불확실한 노후를 대비하라'고 속삭이는 거대한 불안의 시스템이었다. 그녀는 90세의 노후를 위해 50대의 오늘을 저당 잡히는 대신, 50대의 건강한 '지금'을 살기로 선택했다.
우리의 퇴직과 그 후의 긴 삶을 걱정하는 불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일이 끝난 후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설계된 이 사회의 'Big Mess'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질문은, '어떤 삶의 기준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닐지.
1. 영국 국가 연금 (UK State Pension)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 연금 제도로,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에게 은퇴 연령(현재 68세로 상향 조정 중)부터 지급된다. 연금을 일부라도 지급받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의 국민보험(National Insurance) 납부 또는 크레딧 인정 기록이 필요하다. 최대 금액의 연금을 전액 수령하기 위한 조건은 최소 35년의 국민보험 기여 기간을 충족하는 것이다. 이 연금만으로는 기초 생활 유지가 어려워, 대부분의 국민이 '사적 연금(Private Pension)'에 추가로 가입한다.
2. 한국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 이상이지만, 실제 체감 퇴직 연령은 이보다 낮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근로자가 가장 오래 다닌 일자리(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49.4세다. 이로 인해 50대 초중반에 '비자발적 조기 퇴직'을 맞이한 중장년층은 불안정한 재취업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