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hsah Feb 05. 2021

[작업노트 1] 모라스토리 이름과 로고

급조된 임시 로고


1. 사업자의 이름이 정해지다


2019년 6월에 진행했던 퇴사의 과정은 정말이지 잊히지 않는다.

5-6년 간의 관계 정리도 그렇지만, 나처럼 정리가 어려운 자의 데이터, 책상 정리 같은 작업은 정말이지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 여러 가지를 천천히 작업하다 보니 정작 퇴사 마지막 날은 새벽 6시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었더랬다.(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외장하드에 옮겨지지 않아 계속 새벽 내내 조금씩 조금씩 옮겼다는 슬픈 사연이...)

이렇듯, 미루고 회피하다 오래 걸린 퇴사 정리와는 달리... 감사하게도 바로 외주가 들어온 덕분에 빠르게 사업자등록을 해야 했다. 그런데 가만. 사업자등록을 하려면 이름이 필요한데, 뭘 해야 하지?

내 별명은 많은데 - 삼식이, 개똥이, 애요, 키맹... - 성격과 주력 업무도 뚜렷하지 않은 사업자의 이름을 짓기가 너무나 쉽지 않다. 머리를 감싸 쥐고 백수가 된 7월의 며칠을 또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러다 보니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부터 고민하게 되면서 한 단어를 떠올렸다.


몰아가심 + 스토리

내 뜻대로 선택해 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 회사로의 이직 및 퇴사와 사업자등록까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몰아가심이라는 거다. 이 단어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디자인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 생각하는 ‘스토리’라는 단어를 합치니 [모라스토리]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그래, 이거야!

다음 날 바로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명과 정보를 쓰고, 사업자등록증과 보안카드를 발급받고 나니 감개무량한 마음이 들었다. 정해진 이름이 있어 업체 대표메일과 인스타 계정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근데... 로고는 어쩌지?


2. 급조된 로고 


퇴사와 맞물려 들어온 외주작업은 바로,,, 정부사업. 그렇기에 사업자등록증과 잘 갖춰진 포맷의 견적서가 필수였다.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견적서 안에는 B.I가 꼭 필요한데, 날짜의 압박이 있다 보니 안 그래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로고 디자인이 더욱 어려웠다. 안 되겠다 싶어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무료 오픈된 폰트를 이용해 상호명만 빠르게 디자인하는 거였다. 모라스토리의 색깔과 근접한(이라기보다는 직장에서 손그림을 주로 그리던 내 스타일과 닮아있는) 폰트를 골라 로고 타입을 먼저 만들어보았다. 고르고 골라 선택한 폰트는 가브리엘 차베즈라는 건축가이자 수도사의 실제 손글씨를 모티브로 한 Fray gabriel 폰트.

건축가 가브리엘 차베즈의 그림과 손글씨. 출처: https://pin.it/30vtbxl


이 예술가이자 신앙인의 글씨는 어딘가 정갈하면서도 순수하다. 미니멀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매력에 끌려 선택하게 되었다. (위키에서 mora라는 단어를 검색하다가 가브리엘 차베즈 데 라 모라 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폰트까지 선택하게 된 것은 안 비밀.)

하지만 이 폰트로 morastory라는 철자를 다 쓰려니 너무 길다;; 그래서 결국 줄임말로 mora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자를 낸 2019년 하반기의 외주 관련 문서를 보면 다 이 로고타입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업자를 낸 초창기에 임시로 사용하던 로고타입. 정말 급조...;;)


그런데 점점 다달이 견적서나 계약서를 인쇄해야 할 일도 생기고, 업체에 서류를 자주 드리다 보니 통일감과 각기 여백이 다른 서류마다 들어갈, 여러 비율로 변형된 로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명함이 필요한 미팅 자리도 늘어난다... 감사하긴 한데, 이대로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때, 벌써 2020년 4월이 되고 말았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적합한 때라는 말을 믿으며(;)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된 로고 작업에 돌입했다.


3. 스케치의 늪 


전 회사의 창업자들께서도 디자이너이신 덕분에,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신사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 작업은 꽤나 자주 진행했었다. 그래서 의뢰받는 프로젝트가 어떤 성격이어도 B.I 디자인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독 내 로고와 명함은 정말로 어렵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나는 자신이라는 존재에게 제일 관대하지 못하고, 제일 까다로운 상사이자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넣고 싶은 내용은 많고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 스타일과 경우의 수는 겁나게 많다... 그런데 로고는 심플하길 원하는 이 아이러니라니...;;

모라스토리 로고 초기 스케치1. 남편은 출판사의 로고 같다고 한다.

로고에 모라스토리의 지향점(모티브 '몰아가심' - 잠언 16:9절)과 숨겨진 스토리를 넣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던 난, 타이포에 달이나 표지판, 길, 등대, 펼쳐진 책 등 안내를 상징하는 직접적인 도안을 넣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심플하면 심플할수록 상대방에게 주는 인상과 각인이 쉽다는 것을...

그래서 또다시 며칠 뒤 새롭게 심플 스케치를 해 보았다.

모라스토리 로고 초기 스케치2. 또다시 남편은 도자기브랜드의 도장로고 같다며...


연필과 표지판의 형상화인데... 왜 이렇게 자신이 없는지 모르겠다. 최측근 혹은 동료 내지 상사이자 가장 신랄한 비평가인 남편 (내편아닌?) 은 조금만 더 스케치를 해 보라는 권면을 한다. 이쯤 해서 다시금 타 로고 외주가 들어오는 바람에 잠시 스톱하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놀라운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외주 로고 작업을 진행하며, 기존의 급조된 [모라스토리] 폰트를 버리지 말고 사용해야겠단 마음이 든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