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보쌈과 노동

물레방아(인천 화수동)

by 모블랙
Dang! - Mac Miller (feat. Anderson .Paak)


"아이고 부장님 전화를 하고 와야지!"


익숙한 목소리. 주인아주머니는 배추를 썰다 말고 나와 내 등짝을 살짝 때린다. 누가 봐도 눈가에 반가움이라고 쓰여있다.


"에이~ 또 전화하면, 사장님 막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줄라 그러니까 제가 미안해서 그냥 왔죠~"


나는 괜히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래도 담에는 꼭 전화하고 오라는 사장님의 신신당부에 마음은 아주 기쁘다. 참고로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져본 적 없다. "부장님"이라는 아주머니의 호칭은 그냥 아주머니의 상상에서 나왔다. 나는 구태여 그걸 정정하지 않았다. 부장이면 어떻고 과장이면 어떠랴. 반가운 손님이면 됐지.




(사진출처 : 네이버 지도 리뷰 물레방아 업체제공사진)

이곳은 인천 화수동에 있는 물레방아라는 식당이다. 50년 가까이 이 자리를 지켰다. 레트로 콘셉트로 차려진 식당이 아니고 순도 높은 진짜 노포다.


내가 찍은 한치보쌈
아내가 찍은 한치보쌈.

이곳의 주력 메뉴는 한치 보쌈.


우선 한치로 말할 것 같으면, 주인 할머니의 사돈댁이 제주도에서 한치 잡이를 하신다. 사돈댁은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본인들이 잡은 한치 중 '가장 좋은 물건'을 급랭하여 보내준다. 각종 야채 역시 실하다. 주인 할머니는 나에게 말하길, 식당을 하기 전에 남편과 함께 시장에서 야채를 팔았더란다. 그래서 야채 보는 눈은 아주 매서우시다고.


점심이랑 저녁이 살짝 다르다. 점심에는 옛날소시지, 김치, 나물, 멸치볶음 등 식사를 위한 반찬이 나온다. 저녁에는 계란프라이와 우거짓국이 나온다. 우거짓국도 진짜 기가 막히다. 점심에는 밥반찬으로, 저녁에는 술안주로 한치 보쌈이 손님들의 입에 들어간다.


한치 보쌈이 등장하면, 가장 실해 보이는 배추를 한 장 집어 일단 오이와 보쌈고기 한 점을 올린다. 가만있어보자 첫 점은 일단 다 넣고 봐야 한다. 한치와 고추 마늘, 그리고 삶은 한치 다리까지 쌈에 올린다. 그리고 싱싱한 배추의 탄력을 이겨내며 꾹꾹 말아서 한입에 넣는다. 입안에서 알싸한 고추와 매콤한 한치무침의 양념, 고소한 고기와 신선한 야채들의 향이 어우러진다. 미쳤다. 정신없이 들어간다.


극락가는 맛

끝이 아니다. 정신 차리자. 거의 다 먹었다 싶을 때, 주인아주머니(주인할머니의 친딸)가 한치양념에 소면을 비벼준다. 공깃밥이 필요 없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비벼진 소면까지 먹으면 딱 떨어지는 양과 맛이다.




처음부터 단골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일하던 동네 근처에 맛집을 찾다 알게 된 집이었다. 물레방아가 위치한 곳은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 본사 바로 앞으로, 주 고객은 두산인프라코어 직원이었다. 두산이 사정이 어려워지면 매출이 줄고, 두산이 상황이 좋아 법인카드 한도가 좀 풀리면 매출이 느는 식당이었다.


식당이 유명세를 탄 것은, 백종원이 출연한 삼대천왕이란 프로그램에서 물레방아가 소개된 이후였다. 방송 이후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치보쌈이라는 메뉴는 '물레방아'에서 처음 만들고 여기서만 파는 독특하고 역사가 깊은 메뉴였다. 그 점이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되었던 것 같다.


주인 할머니가 젊은 나이에 처음 장사를 시작하던 1970년대, 식당이 위치한 이곳은 화수부두라는 항구 근처였다. 고된 항구일을 끝낸 노동자들이 저녁에 소주 한잔 걸치며 하루의 노곤함을 풀던 식당이었다. 시절은 흘러 항구노동자에서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로 단골손님들이 바뀌고, 주인 할머니에서 주인아주머니로 주방의 주인도 바뀌었지만 한치보쌈의 맛은 시대를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주말에 차이나타운을 갔다가 물레방아에 들러 식사를 하려던 때였다. 주인 할머니 무릎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무릎이 괜찮으시냐 물어본 날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무릎은 조금씩 좋아지는데 다른 게 걱정이란다. 그게 뭐냐 물으니, 백종원 방송 나간 뒤로 전국에서 손님들이 몰렸는데, 걔 중에는 유명 맛집 블로거라고 대 놓고 광고비를 요구한 손님도 있었더란다. 그런 거 안 한다고 하니, 가게에 있는 강아지, 할머니 등을 지적하며 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블로그에도 네이버 리뷰에도 올렸단다.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그만할까 싶단다.


나는 그 사연을 듣고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리뷰를 올렸다. 그 리뷰를 보고 주인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너무너무 고마워하셨다. 그렇게 나는 물레방아의 단골이 되었다.


당시에 올렸던 리뷰. 벌써 5년 가까이 지났다.


다른 일도 있었다. 큰 선거를 두 번 치르는 동안, 나는 후보자와 함께 이 식당을 동선에 넣어 꼭 방문했다. 그리고 두 선거 모두 승리했다. 이곳은 나의 행운의 부적이기도 하다. 이 사연을 아는 주인아주머니는 "부장님 다음에 또 승리가 필요할 때 와서 보쌈 먹고 가요~" 라며 나가는 길에 요구르트를 하나 더 챙겨주신다.


“나는 그저~ 손님들이 우리 음식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기 내 행복이야~” 라며 빠진 이에도 배시시 소녀처럼 웃었던 할머니의 미소도, 그런 할머니를 어린 아이처럼 졸졸 쫒아다니던 강아지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주인아주머니도, 물레방아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그들과 물레방아를 떠올릴 때마다, 고된 노동 뒤에 따라오는 소주 첫 잔의 단맛과, 한치보쌈의 매콤하고 향긋한 맛 만큼은 영원히 생각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