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습작 1편
(이 글은 초단편소설 습작 시리즈 1부입니다. 당초, 이 글이 소설이라는 정보를 실수로 누락한 채 글을 올리는 바람에 오해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새로 쓰는 단편 소설 시리즈를 기존 에세이들과 구분하기 위해 소설모음 브런치북을 만들어 재게시합니다. 제 경험이라 여기고 위로의 마음을 나눠주신 작가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No Surprises - Radiohead
K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동아리의 신입생환영회였다.
그날 나는 선배들이 주는 술을 좋다고 덥석 덥석 받아먹다가 금세 알딸딸해져 버렸다. 취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구석에 있는 소파에 쓰러졌다. 쓰러진 옆 소파에 K가 앉아있었다. 뭘 보고 있는지 모를 공허한 눈동자를 지닌 남자였다. 그러나 그것 빼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친구였다. 외모도 평범했다. 그렇다고 적극적이지도 않아 보였다.
"괜찮아?"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나를 보며 K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약간 어지럽고 머리 아픈데, 좀 누워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술 많이 취할 것 같으면 물을 많이 마시랬어. 이거 한 잔 마셔."
K는 자기 앞에 있던 빈 컵에 물을 따라 나에게 건네줬다. 나는 얼른 물을 받아 마시며 물었다.
"근데 너는 왜 같이 안 놀아?"
"응.. 그냥."
그냥이라는 말을 할 때의 K는 무척 더 공허해 보였다.
"야 그래도 오늘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라고 만들어 준 자린데, 같이 놀아야지"
"그래 알았어."
그날의 신입생 환영회가 K의 처음이자 마지막 동아리 활동이었다. K는 그날 이후 동아리방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K의 배경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 일도 있었다. 다른 동기들과 수업이 끝난 뒤 밥을 먹을 때였다. K가 알고 보니 금수저란다. K의 부모님도 우리 대학 CC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 부부인데, 새로 지어진 으리으리한 학교 건물의 한쪽 벽면에 사람 머리통보다도 큰 글자로 K의 부모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 정도 크기려면 몇억, 아니 몇십억은 기부해야 되지 않겠냐고 누군가 말했다. 동기들은 그 주제를 가지고 한참 동안 갑론을박을 펼쳤다. 10억이면 될 거라니, 아니 우리 학교 정도면 100억으로도 택도 없을 것이라니.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저들이 K와 제대로 된 대화는 나눠본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K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와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게 되면서였다. 전공과 관계없이 들을 수 있는 교양수업이었는데 점수를 잘 안 주기로 유명한 교수님이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성적도 짠 데다, 고리타분한 주제라 폐강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수강하는 학생이 적었다.
매 학기마다 줄어드는 수강생 숫자에 심각함을 느꼈는지 교수님은 수업 첫 시간에 출석을 부르며 "호명된 학생은 자리에 일어나서 왜 이 과목을 신청했고, 학기를 마치고 나면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말해보세요"라며 학생들을 채근했다. 학생들의 수강신청 이유는 꽤나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점심시간 직전이라 시간대가 좋아서 신청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이 시간대에 수강할 수 있는 다른 교양과목의 수강신청을 전부 실패하는 바람에 선택지가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대답도 있었다. K차례가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요. 그래서 아무거나 신청했고, 학기가 끝났을 땐 제가 뭔가를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알바를 가려던 나를 K는 할 말이 있다며 붙잡았다.
"만약에 말이야"
K는 뜸을 들이며 정적을 깼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K를 바라봤다.
"만약 내가 죽는 순간을 고를 수 있다면, 나는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죽을 거야."
십 분도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K였다. 알바에, 과제에, 기말고사까지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한참 만에 한다는 소리가 갑자기 죽는 이야기라니.. 불현듯 짜증 섞인 감정이 올라왔다.
"그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는 불편함을 감출 이유를 찾지 못한 채로 K에게 대답했다.
"그냥 너한테는 말해주고 싶었어."
"너 요즘 뭐 힘든 일 있어?"
"아냐 그런 거. 그냥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매일 같이 이런 날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수없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죽는 날이 오겠지? 그럼 살기 좋은 날도 있는 날처럼, 죽기 좋은 날도 있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야. 넌 그런 생각 안 해봤어?"
"글쎄.. 난 그다지. 야 나 먼저 일어난다? 알바 가야 돼."
".. 응 나중에 봐."
"그래."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어 K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야 힘들면 연락해.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자."
그게 K와 단 둘이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K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막 직장에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XXX 씨 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K의 엄마예요."
"K요? 그게 누구죠..? 잘못거신 것 같은데요.."
K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낸 터라, 그의 이름을 바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혹시 XX대학교 나오시지 않았나요?"
"맞는데 그걸 어떻게.."
"아 사실은 우리 아들 전화번호부에 대학친구라고 저장이 돼있길래요."
"아.. 죄송해요 제가 잠시 헷갈렸나 봐요. K 친구 맞아요 동기였어요."
"... 사실 우리 K가 오늘 새벽에 세상을 떠났어요. 워낙 제 얘기를 안 하는 아들이었어서, 어떤 친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누구랑 연락을 하고 지내는지 통 몰라서 아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대학친구 XXX라고 이름이 저장되어 있길래 연락해 봤어요. 갑자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머님.. K소식은 너무 당황스럽네요. 장례식장이 어디죠?"
"안 오셔도 괜찮아요.. 그냥 친구들한테는 알려야지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아니에요 가야죠. 친군데요."
예상과 달리 K의 장례식장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빈소는 대학병원에서 가장 큰 특실이었고, 복도를 따라 XX기업 대표 아무개, Y당 국회의원 누구누구 등 사회에서 힘 좀 있는 사람들이 보낸 화환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마저도 작은 화환은, 꽃은 도로 가져가고 리본만 따로 떼어 한쪽 면에 우승 트로피처럼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K의 부모는 마치 자식의 결혼식이라도 되는 양, 정신없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까 제가 전화드린 XX 씨 맞으시죠?"
K의 어머니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K 또래니까요. 제가 전화를 한 건 XX 씨 밖에 없어요. K가 사실 내성적이라 친구를 잘 못 사귀거든요."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K가 어떤 아이인지 저는 잘 몰라요. 엄마가 돼가지고 웃기죠. K가 어려서부터 워낙 말이 없고, 자기표현이 서툰 아이라 한 번도 뭐가 좋다 싫다 한 적이 없었어요. 애가 비뚤어진 건 아닌데, 시큰둥하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 하루는 어땠니, 어떤 친구랑 놀았니 하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전 그냥 아이가 소극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K의 엄마는 마지막 말을 미처 매듭짓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죄송해요. K의 친구라서 그런지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요."
"아녜요 아주머니 더 이야기하셔도 괜찮아요"
"미안해요. 아휴.. 지금 돌이키면 모든 것이 다 허무하네요. 무얼 위해서 그렇게 저랑 아이 아빠는 바쁘게 살았을까요. 배로 낳은 자식하나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네요. 자식 잘 키운다고 K에게 엄하게 한 기억밖에 없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건 하지 마라, 저건 하지 마라. 돌이켜보면 넌 뭘 하고 싶냐고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이제야 K가 친구들 한텐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K가 학교에서는 어떤 친구였나요, 혹시 친구가 본 K에 대해 이야기 좀 해줄래요?"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K의 어머니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했다. 이름을 듣고도 전화 잘못 건 것 아니냐며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던 K였다. 20대의 풋풋한 청년들이 나눈 뜨거운 우정 같은 것은 나와 K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K의 죽음만큼이나 차가운 사실이었다. 그러다 문득, K가 했던 말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교양수업 첫 시간에 K가 학생들과 교수님 앞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K랑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K는 그때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고 했어요. 그리고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고요."
K가 떠난 날은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장례식장을 조금 벗어나자 인적이 드문 길에는 가로등도 꽤나 거리를 벌려 드문드문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엔 밝은 별들이 촘촘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K의 어머니에게는 할 수 없었던, K와의 다른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만약 내가 죽는 순간을 고를 수 있다면, 나는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죽을 거야."
그 이야기를 했던 날도, K가 떠난 날도 구름 하나 없는 완벽한 날이었다. 그는 어째서 완벽한 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일까.
금수저로 태어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삶. 그러나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잘 모르는 무미건조한 자아. 낳고 길러준 부모조차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 유일하게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조차, 자신의 죽음을 두고도 단박에 떠올려내지 못하는 무형의 공기 같은 존재. 그는 어찌 보면 살아야 할 이유도, 죽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지내왔던 것 아닐까?
생각이 여기가 미치자 나는 문득 그를 조금은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완벽한 날이니까 떠날 수 있었던 거야. 바다에 표류하는 시체처럼 사는 것보다, 충만한 채로 눈물을 흘리며 죽는 게 더 자유로우니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