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lywood - 검정치마
산골 마을의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직전, 사장님이 화로에 숯을 넣어주러 방문했다. 숯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반찬으로 먹으려고 낮에 담갔어요."라면서 부추 겉절이와 파김치를 식탁에 툭- 올려놨다. 문득, 민박집 안내문에서 본 '밑반찬 상차림비 10,000원'이라는 정보가 떠올랐다. 원래는 반찬을 몇 개 더 해서 돈 받고 손님에게 내어 주는 것을, 고기와 맛있게 먹으라고 생색도 않고 무심코 내어주는 주인의 친절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H를 보며 손가락으로 딸기를 슬쩍 가리키고는 '이것 좀 드릴까?' 하는 눈짓을 던졌다. H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딸기 좀 드릴까요?"
"주시면 감사하죠."
넉넉하게 준비해서 나누는 일의 기쁨. 나이를 조금씩 먹어감에 따라 나누는 즐거움이 마음에서 생겨났다. 받는 기쁨이나, 사는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주는 기쁨이 훨씬 더 긴 여운을 남겼다. '여유가 있어서 나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유라는 것은 금전적 여유가 아니었다. 나누는 기쁨의 즐거움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겉절이와 딸기를 주고받는 순간의 감정이, 봄비를 타고 실려온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남았다.
방문 밖에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산골의 아침은 해가 동쪽 산맥을 넘어오기 전부터 부지런히 시작되고 있었다. 대충 옷을 걸치고는 눈을 비비며 방문을 나섰다. 영상 5도쯤 되는 쌀쌀한 공기가 콧구멍을 거쳐 폐에 전해졌다. 입김을 '호' 하고 불자,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연기가 났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주인할머니는 주름진 눈으로 웃음을 지어주고는, 손짓으로 슬쩍 저기 아침밥상이 다됐다는 것을 알려줬다. 방으로 다시 들어가 자고 있는 H를 조심스레 깨웠다. 둘 다 아주 오래간만에 아침을 먹었다.
"어떻게 반찬이 하나같이 다 신선하냐."
"그러니까.. 재료도 재룐데, 손 맛이 좋은 것 같네."
단출하지만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차려진 밥상은 산골의 봄을 닮았다. 된장국을 한 숟갈 떠먹자, 알싸한 냉이에서 봄의 생기가 느껴졌다.
며칠 전, H와 준비물을 이야기하다가 그에게 커피를 내려주겠노라 약속했다. H가 마침 사놓고 안 쓰는 핸드드립 커피세트가 있어, 그가 장비를 챙기고 내가 원두를 챙기기로 했다. H에게 커피를 마셨을 때 좋았던 경험을 몇 개 물어본 후 그가 산미가 있는 원두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마침 집에 적당한 것이 있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지역에서 생산된 게이샤 품종 원두를 선택해 챙겨 왔다.
커피를 직접 내려먹기 시작한 기간은 나의 결혼기간과 같다. 신혼집에 처음 들어온 후, 아내와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부모님이 커피를 매일 내려드시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따라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요령이 생기고, 흥미가 생기고, 찾아서 공부하게 되고, 여러 카페 사장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며 자연스럽게 내 취향이 생겼다.
손님을 초대해서 커피를 내려주게 되고, 원두를 가끔 지인들에게 선물해주기도 했다. '네가 내려준 커피가, 요즘 먹은 커피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아'랄지, '선물해 준 원두 정말 잘 먹고 있어'와 같은 고마움이 종종 타인으로부터 전해졌다. '핸드드립 커피'는 아내와 함께 즐기기 위한 취미로 출발해, 나누는 즐거움의 범위를 확장시킨 삶의 요소 중 하나가 됐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어떤 원두를 먹을지 고민하다 선택하고,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며 하루와 어울리는 잔을 선택하고 담아내는 일. 그 자체가 일상 속 수양이자 명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저쪽 아랫마을에 송전탑에 문제가 있나 봐요. 거북이 마을 전체가 정전이래요."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내리려는데, 사장님이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복구하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단다.
"물 어떻게 끓이지?"
"글쎄.. 좀 기다렸다 마실까?"
"아.. 지금 마셔야 제일 맛있는데.."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끓일까?"
"인덕션이던데?"
"아 맞다."
"그럼 그냥 가스버너에 끓이는 건?"
"오 맞네~ 그러자"
그렇게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커피 내리는 여유가 산골에서 찾아왔다.
때로는 무언가 불편해야, 잃어버려야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아침에 씻을 때도 뜨거운 물이 금세 끊겨서, 둘 다 덜덜 떨며 샤워를 했다. 그러고는 얼른 물기를 닦고, 따뜻한 방바닥에 몸을 뉘이고, 그 위에 요를 이불처럼 덮어서 온몸에 퍼지는 온기를 만끽했다. 거북이 민박에는 불편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었다.
"오늘은 머 할래"
"일단.. 술을 사러 나갈까?"
"뭐 살래?"
"조니워커블랙 어때?"
"좋아. 난 원래 블랙 좋아해"
이틀간 나눠마시려 했던 H의 위스키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어젯밤, 대화가 끊이지 않고 새벽까지 이어진 탓이었다. 우리는 그간 못한 얘기의 버킷리스트라도 만들어온 것처럼 하나씩 꺼내고 있었다. H는 의외로 조니워커블랙을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나에게 조니워커블랙은 한 미국 언론인의 "조니워커블랙은 대용품이 없다"는 인터뷰로 기억되는 술이다. 나도 이 정도 저렴한 가격대에는 적수가 없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30분을 달려 어제 들어온 길을 되짚어 읍내로 향했다. 마트에는 조니워커블랙이 없었다. 다행히 인근에 있는 유일한 편의점에, 먼지가 잔뜩 쌓인 한 병이 남아 있었다. H는 민박집에서 겪은 다른 것들 보다도, 조니워커블랙이 이 인근에 마치 우리를 위한 것처럼 딱 한 병만 남아있었다는 것에 큰 즐거움과 감사함을 느끼는 듯했다.
숙소로 돌아와 강가로 나갔다. 그저 잠깐 나가서 얘기하다가, 추우면 방으로 들어와 저녁 전까지 낮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오늘도 하늘은 빈틈없이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저녁에 또 비소식이 있었다.
우리는 어제 시간을 보냈던 테이블에 앉아 자연을 감상했다. 저 멀리 하류에서 오리 한 마리가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H와 나는 참 열심히 사는 녀석이라고 하다가, 평생 눈뜨면 자기 전까지 먹이활동을 위해 살아야 하는 오리의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강가에서 자세히 보니 아래로 흐르는 큰 물줄기의 주변으로,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의 흐름이 있었다. 오리는 그 흐름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며, 물고기를 낚아채고 있는 것이었다. 나름 요령이 있었다.
높은 산봉우리에 닿을 듯 새들이 동쪽하늘에서 서쪽하늘로 날갯짓을 했다. 그러다 우리와 마주 보고 있는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처음에는 그게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복이 되자 H는 “한참 왔는데 저기서 뭔가 생각이 나는 거야. 둥지에 있는 새끼한테 먹이를 안 주고 온 게 생각이 난달지..”라고 말했다. 나는 저기가 유턴 표지판이 있는 거 아니냐며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러다 갑자기 영국에 있는 친구 C에게 카카오톡 음성통화가 걸려왔다. 런던에 파견근무를 하는 C는 나와 H와 함께 같은 조 동기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이었다. 출근길에 막 나섰는데, 너희가 같이 있는 거 같아서 오랜만에 얘기하고 싶어서 연락했단다. 나는 그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런던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지구 반대편에서도 C의 하루는 부지런히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해외 여러 곳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금융기관이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자랄 때 영미권에 있는 해외법인에 파견을 나가는 것은, 많은 직원들이 부모로서 꿈꾸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런 시선들 때문에 C는 지인들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도 못하겠다고 했다. 배부른 소리처럼 비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사실 해외의, 특히 국내에 기반을 둔 금융업 입장에서 영미권 현지 시장은 철저한 을에 가까웠다. 자본이 있어도 비즈니스에 끼워주질 않았다. 현지에 나가있는 직원들은 선진국의 금융 시스템을 배우기에 앞서, 일 자체를 할 수 있도록 영업하고 다니기 바빴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영어를 익힐 수 있어 좋다는 것도 부모의 입장이었다. 아이는 실제로 매우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고,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과 떨어져 말도 안 통하는 외국아이들 속에 섞여 고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길어지자 나는 슬쩍 H에게 전화의 바통을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 들어가 좀 더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까 편의점에서 산 과자와 초코우유 그리고 조니워커블랙도 챙기기 위해서였다.
민박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에, 주인 할머니가 나무에 의자를 대놓고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계셨다. 가까이 가 보니 꽃을 손으로 쓸어서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할머니 아까 보니까 저 산에 벚꽃나무가 하나 있던데, 봄 되면 여기 꽃 많이 피어요?”
나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슬쩍 질문을 던져 놓고는 가까이 가서 쪼그려 앉았다.
“진달래도 피고, 철쭉도 피고. 동강 할미꽃이라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여기서만 자라는 꽃도 피어요. 보라색도 있고 연분홍색도 있고 정말 예뻐요."
“그렇구나.. 할머니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들 몸이 안 좋아서 꽃차 타줄라고. 꽃차가 근육에 좋대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꽃나무들을 둘러보니, 여든이 넘는 할머니의 손이 닿는 나무의 앞쪽 편은 이미 깨끗했다. 나무 뒤쪽은 땅이 경사가 져서 따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런데 다른 데서 봤어요?”
“아뇨 할머니 너무 좋아요.”
“여기가 8대째 사는 땅이에요. 나는 7대에 시집왔고.”
“아 그럼 민박집 사장님이랑, 형님이 8대손 인가 보네요.”
“그렇지. 내가 항상 걔덜들한테 미안하지..”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밭은 눈물을 주름진 손으로 훔쳤다.
“20년 전쯤, 남편이 환갑을 넘자마자 근육암에 걸렸어요. 평생 밭농사 하고 건강하게 지내던 양반이 하루하루 약해져서 나중엔 거동도 못하게 됐어요. 무섭더라고. 여기가 워낙 외진 곳이라, 누가 나쁜 마음먹고 와서 죽기라도 하면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있나.."
할머니는 그 막막함을 떠올리려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애들이 나가서 살다가, 서른이 넘어 다시 둘 다 들어왔어요. 엄마 챙긴다고. 그때 민박을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 한 20년 됐지. 지금은 캠핑장 한다고 막 저들 둘이 직접 자재 사다가 공사하는데 걱정도 되고.. 작은 애가 몸이 아파서, 꽃차가 근육에 좋다고 해서 내가 계속 타줘요. “
사장님은 노모가 쉬지도 않고 일한다고 걱정이었고, 노모는 아들들이 고생한다고 걱정이었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전해진 넓은 산비탈의 밭에서, 자손들은 여전히 조상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사람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이 되면 밭에서 저렇게 작물들이 힘차게 자라요. “
밭농사를 삶의 기반으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 피할 수도 없고, 쉬어가기도 힘들지만 농사가 잘 안 되는 것은 더 싫은. 새싹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복잡한 마음이 그녀의 시선을 통해 느껴졌다.
“저녁은 몇 시쯤 드실까요?”
아침에 식사를 하는데 사장님이 물었다. 전날 해가 지고 식사를 하니 추웠다. 우리는 오늘은 5시쯤 해가 지기 전에 식사를 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했다. 그러시자는 대답과 함께 가마솥에 백숙이 끓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끓이기 시작해서 저녁에 우리에게 내주기 전까지 푹 고으는 것 같았다. 긴 시간 동안 가스나 전기가 아닌 장작으로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신경을 쓰는 듯했다. 손님에게 내어줄 음식을 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한 마리, 3~4인분, 8만 원’은 오히려 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해는 이미 서쪽 산맥을 타고 넘어갈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이틀 동안 해를 처음 본 것 같았다. 5시가 되자 해가 산을 넘어갔고, 서서히 산골마을의 명암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백숙이 준비가 되었다.
한 마리 3~4인분이라는 안내에 걸맞게, 백숙은 양이 무척 많아 보였다. “국물 색깔이 대단한데요?”라는 말에 “12개의 약재를 넣었어요. 보약이에요.”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사장님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거북이민박은 오며 가며 산길에 한 시간을 쏟더라도, 오로지 백숙을 먹기 위한 목적으로 손님들이 종종 찾는 곳이었다.
국은 예상과 다르게 아주 담백했다. 푹 고와진 닭국물이라 치킨수프의 걸쭉함을 기대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담백한데 뒷맛이 길고 깊었다. 생선으로 만든 맑은 지리와 같은 맛이 났다. 풀어서 키운 시골닭의 단단한 육질과, 쫀득한 껍질도 별미였다. 닭을 꼭꼭 씹으며 밭에서 난 반찬을 함께 먹으니, 산내음이 오랫동안 입안에 퍼졌다. 식사를 하는 풍경과 더불어 먹으니, 입안에서 봄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드실만하세요?”
반 정도 먹어가자 사장님이 살피러 나왔다. 육수가 필요하면 더 주겠단다. 담백한 국물맛을 위해 닭과 따로 끓이는 건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무 맛있어요. 사장님 술 좋아하세요? 한 잔 드릴까요?”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블루병을 집으며 대답했다.
“아뇨 제가 술을 잘 못해서요. 근데 제가 술 담그는 건 좋아하거든요. 제 술 드시면 그런 거 못 드셔요. “
“오 그래요?”
“네. 구경하실래요? 솟대도 보여드릴게요 “
“좋죠~”
우리는 식사를 하다 말고 사장님의 손에 이끌려, 그의 창고로 향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해 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다. 어느새 스마트폰 라이트 기능을 켜지 않으면, 한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져 있었다.
“우와.. 이게 다 뭐예요?”
“저거는 제가 봄마다 나물을 캐면, 제일 좋은 것들로 술을 담가요. 이거는 제가 해가 지면 작업하는 솟대들이고요.”
“안 그래도 민박집 입구에 솟대가 있더라고요.”
“맞아요. 처음에는 손님들이 와서 사진이라도 찍을 게 있어야 하지 않나고 생각돼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솟대가 예전에는 하늘에 이야기를 대신 전해 듣고, 마을에 전해주는 새의 모습을 형상화해 입구에 세워놓기 시작했대요. 그 이야기가 좋아서 저도 만들기 시작했고요. “
"사장님 이건 왜 따로 유리에 보관하셨어요?"
“아 그게 처음 만든 솟대 중 하나예요. 원래 그냥 도토리 같은걸 몸통으로 해서 얇은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주워다 깎아서 꼽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새들이 자꾸 날아와서 쪼아 먹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 나무로만 만들었어요.”
"다 애정이 있으시겠지만, 어떤 작품이 특히 마음에 남으세요?"
“이거요. 이 작업물은 엄마와 자식 둘을 나타낸 작품이에요.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엄마의 큰 품에서 아들 둘이 있는 거예요. 엄마를 나타내는 저 나무를 오랫동안 찾고 골랐어요. 형제 둘을 나타내는 새 머리 위에 얇은 뿔 같은 거 보이세요?"
“네. 독특하네요.”
“맞아요. 저렇게 솟대를 만드는 건 저밖에 없어요. 저게 제 작품의 포인트거든요. 뿔을 나타낼 수 있는 얇은 나뭇가지를 찾아서 그대로 쪄서 말리고, 나머지 나무 부분은 깎아서 새를 만드는 거예요.”
“엄청난 노력이네요.”
“네 맘에 드는 걸 찾기가 힘들죠. 저는 모두 자연에서 나온 걸 쓰거든요.”
나는 그의 답변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솟대들은 산골의 긴 밤들이 서려있었다. 그의 외로움과 고독이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자연에 대한 찬미로 승화된 것처럼 보였다.
“우리 민박집이 한국기행에도 나오고, 사노라면도 나오고 하면서 유명해지고 제 솟대들도 세상에 알려졌어요. 그러니까 솟대협횐가? 어디서 나와가지고는 솟대 작가 협회에 속하게 해 주겠다면서 제 작품을 앞으로는 고치라고 하더라고요. 원래 한국의 솟대는 새의 모습을 가장 축약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거라 목이랑 뿔이 있으면 안 된다고요. 근데 그게 제가 만드는 솟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어떻게 빼나요. 그래서 그냥 알아서 하겠다고 했어요. 협회에 속하지 않겠다고. 그냥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혼자 해나가겠다고.”
그의 답변은 작품관이라기 보단 삶의 철학에 가까워 보였다. 민박집, 밭농사, 음식, 솟대 같은 것들이 하나로 연결된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우리는 챙겨 온 장작 한 박스를 전부 태우고 나서도 잔불에 온기를 의존한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H는 가족을 위해 치열한 전쟁터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직장으로 다시 옮긴다고 이직의 이유를 밝혔다.
퇴사를 거의 하지 않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그곳을 떠나서 치열하게 자기 능력을 증명하며 살다가, 다시 안정적인 직장으로 되돌아간다는 H. 그의 이직이 타협이나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때로는 높은 연봉, 사회적 지위, 성공 등의 공식에서 벗어나 삶을 바라보면 더 중요한 것들이 곁에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H는 예비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삶의 새로운 모습을 써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스펙터클한 정치조직에서 떠나 다시 본업인 금융업으로 회귀하는 원년. 나와 H는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삶의 방향을 크게 틀고 있었고, 그 이유 또한 비슷했다. 그러나 나도 그도, 이전보다는 삶에서 내리는 선택들의 근거가 더욱 단단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떠나는 날 아침은 매우 맑았다. 빈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먹구름으로 가득 찼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었다. 하루만 늦게 왔으면 밤에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별을 못 보고 가는 것 또한 다음에 다시 거북이 민박을 방문할 이유가 되는 것 같아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삶의 순간들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면 정 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 오늘의 부족은 내일의 동기가 된다. 오늘의 불운은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는 계기로 삼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거북이 민박은 서울의 삶에서 가장 먼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차에 시동을 걸고 서울로 출발했다. 창문을 열자 흩날리는 꽃가루가 코 끝을 간질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