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민박에서 멈춰가기
Merry Christmas Mr. Lawrence - Ryuichi Sakamoto
"거북이 민박?"
"응"
"이름 맘에 드네 가자"
H가 흔쾌히 동의한다.
나도 거북이민박이라는 이름이 맘에 들어 그에게 추천한 참이었다.
H와 나는 직장 동기로 처음 만난 사이다. 신입사원 연수 때 서로 어색하게 통성명한 이후, 또 다른 동기인 M과 함께 수년간 세계의 오지들을 여행하며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H는 몇 년 전 핀테크 기업으로 이직을 해 더 이상 같은 회사의 동기는 아니지만, 아무리 바빠도 서로가 서로를 최우선순위로 두고 얼굴을 보는 사이로 남았다. 그런데 H가 이번에 다시 이직을 한단다. 이번에는 이직의 이유가 조금은 달라 보였다. 그 이야기도 자세히 들을 겸, 서로 휴식의 시기가 겹쳐 '무조건 잘 쉬자'는 콘셉트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각자 가정의 평화를 위해 '국내, 2박 3일'로 여행지와 기간을 한정하고 여러 후보지를 물색했다. 처음에는 제주에 있는 우리 부모님 집에 가서 함께 머물까도 고민했다. H는 우리 부모님도 좋아하는 친구라서, 종종 인천에 있는 고향집에 함께 가서 놀았다. 그러다 조금 더 인적 드물고 외진 곳, 그러니까 우리가 오지들을 다니며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곳으로 후보지를 좁혀나갔다.
최종 후보지 두 개가 결정됐다. 먼저 접촉을 한 곳은, 대천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섬의 민박집이었다. 그 민박집은 해가 지는 서해안의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맛있는 아침밥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민박집주인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금은 민박집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통화로 아쉬운 응답을 전했다. 그래서 차선책인 '거북이 민박'에 전화를 걸었다. 강원도 정선의 동강 상류자락에 있는 민박집이었다. 마침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유명해진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민박집 앞을 흘러내려가 물길이 이어지는 동강 아랫자락에 있었다.
"예 됩니다. 마침 말씀하신 날짜에 다른 손님이 없어서 좋으실 거예요."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이 날짜에 숙박이 가능하겠냐 물으니 반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이미 EBS의 한국기행에도 나온 곳이라서 우리가 가려는 시기에 남은 방이 없진 않을까 고민했는데, 다른 손님이 없다는 의외의 답변을 듣자마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와 이직 사이, 그 짧은 기간만큼은 '잘 쉬고 싶다'는 H의 바람에 더욱더 알맞은 장소가 될 것 같아 신속하게 예약금을 입금하고 여행지 고민을 끝냈다.
"거북이 민박은 별이 정말 잘 보여"
거북이 민박을 추천해 준 지인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거북이 민박을 예약한 뒤, 나와 H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아프리카의 대자연 속에서, 칠레 남극단의 빙하마을에서 봤던 황홀한 별들.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밤하늘을 다시 떠올린 채, 거북이 민박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장비들을 챙겼다.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를 차의 오른편에 두고 영월을 지나 정선 방향으로 조금 더 달렸다. 이윽고, 내비게이션이 산길을 가리켰다. 국도에서 마을길로 나와 산길에 들어서니 터널이 곧 나왔다. 짧은 터널을 지나자마자 굽이굽이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찌나 가파른지, 길 중간에는 큰 덤프트럭이 넘어져 있었다. 굽이길에서 머리를 돌리다가, 제 무게를 못 이겨 넘어진 것 같았다. 덤프트럭이 넘어진 자리에는 도로와 가드레일이 파손되어서 보수공사가 필요해 보였다. 문제는, 덤프트럭을 일으켜 세울 중장비 또한 안전하게 내려오기 어려운 비탈길이었다는 것이다. 차량이 넘어진 주변으로 가드레일이 쳐져 있었고, 안전요원들이 수신호를 보내 지나는 차량들이 우회하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기억에 남아있는, 눈 오던 대관령길이 문득 떠올랐다. 더디게 가는 차들. 앞자리에 앉아 뜻 모를 이야기들을 나누던 부모님. 뒷자리를 침대처럼 만들어 주어 나와 동생이 누워서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었던 작은 공간. 눈 오는 날 창 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군고구마를 손에 쥐고, 동생과 함께 까먹던 순간..
산을 넘고 강자락 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들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이 길이 맞나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다. 도로가 끊긴 것 같은 지점도 있었으며, 움푹 파인 길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 내비게이션을 믿고 작은 마을 길들을 지나쳐가니 저 멀리 동강이 보였다.
"야 우리 이번에 별 못 보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니 잿빛의 하늘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트렁크에 챙겨 온 장작더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빗방울이 투둑-투둑- 하고 간헐적으로 유리창을 때렸다. 서울 동쪽에서 두 시간 반, 국도에서 빠져나와 산 넘고 물 건너 30분, 총 세 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온 우리는 하늘을 보고 어쩐지 기운이 조금 빠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대화도 조금 줄어들었다.
거북이마을이라는 팻말이 나오고도 한참 더 들어가자, 내비게이션이 최종 목적지임을 알렸다. 우리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가지런히 정돈된 장작더미와 그 옆에 백숙을 끓일 때 쓰이는 듯한 아궁이와 가마솥 몇 개가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장님을 애타게 불러봐도 대답이 없자, 나는 민박집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저희 도착했습니다."
"예, 제가 지금 밭에서 일하고 있어서요, 방에 불 올려놨으니까 들어가서 쉬고 계셔요. 제일 바깥쪽 작은 방이에요. 열쇠는 꼽아놨어요."
거친 숨소리가 그가 한창 바쁘게 일하는 중임을 알렸다. 차에서 내린 지 5분도 안되어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여기는 아직 겨울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짐을 꺼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을 들어가자마자 H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는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방금 서로 웃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분명 오지들에서 묵었던 숙소들보단 훨씬 좋은 시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 후 아내들과 주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하고 좋은 숙소에 몸이 적응을 해 버린 탓이었다. 두 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아주 작은 방, 십수 년쯤은 시간이 멈춘 듯한 집기와 침구들. 나는 H에게 "다른 손님도 없다는데, 좀 더 큰 방으로 바꿀까?"라며 물었지만, H는 "그러지 말자, 좀 불편하면 어때. 옛날에 우리 쿠바도 생각나고 좋네."라며 들고 온 짐을 하나 둘 풀었다.
"백숙은 내일 드신다고요? 그럼 고기는 오늘 저녁에 드시는 거니 이따 여섯 시쯤 불 피워드릴게요. 비가 조금 올 수도 있으니 지붕이 있는 저쪽에서 구워 드시고요, 내일 아침이랑 백숙은 여기서 해드릴게요."
사장님은 대청마루 같은 공간을 가리키며 민박집의 안내를 마쳤다. 2박 3일 동안 묵을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대청마루에는 나와 H를 단 둘만을 위한 상과 좌식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제 뭐 할래?"
"몰라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럼 우리 강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까?"
"그래 그러자."
사장님의 안내가 끝나고 나와 H는 강가로 나가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나는 떠나기 전 H의 집 근처에서 샀던 과자 한 봉지를 챙겼고, H는 집에서 챙겨 온 위스키 한 병과 공용주방에서 소주잔 두 개를 챙겼다.
민박길에서 강가로 이어지는 길에는 길고 넓은 밭이 펼쳐져있었다. 이곳 또한 민박집주인의 공간인 듯, 봄을 맞아 새로운 작물들이 뿌리를 내리는 중이었다. 기온은 아직 차지만, 그래도 봄이라는 듯 보라색 꽃이 예쁘게 피어나고 있었다.
강가에 도착하니 작은 배 한 척이 나무 기둥에 밧줄로 묶여있었다. 작은 배는 물살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지만, 그 정도 힘으로는 제 몸을 묶어둔 밧줄을 풀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거북이 민박은 앞뒤로 높은 산맥이 솟아있고, 민박집에서 5분 정도 걸어 나오면 유유히 흐르는 동강이 있는 공간이었다.
H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나침반을 켜서 '이쪽이 동쪽이고, 저쪽이 서쪽이네'라며 방향을 가늠했다. 비가 오는 탓에 해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강원도의 높은 산세는 거북이 민박을 품은 작은 땅에 온기를 앗아간 듯했다. 해가 뜨는 동쪽에도 높은 산맥이 솟아있었고, 해가 지는 서쪽에도 높은 산맥이 솟아 있었다. 즉,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지형이었다.
사진에는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않는 거대한 자연. 오로지 자연뿐인 공간. 나는 노르웨이에서 처음 피오르드를 마주했을 때를 떠올렸다. 거북이 민박 주변의 대지를 둘러싼 웅장한 산맥들이, 피오르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자연의 늠름함을 뽐내고 있었다.
"무슨 기운 느껴지지 않아?"
"무슨 기운?"
"모르겠어 일단 기운이 엄청 느껴지긴 하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
"음.."
나는 H의 말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추척추적 내리는 봄비에 미세한 꽃향기가 딸려왔다. 동강의 비릿한 강물냄새도 들숨과 함께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느끼기 정말 어려운 아주 청정한 공기. 내일모레 50이라던 사장님의 동안 비결이 공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렇긴 한데..
"해가 별로 들어오지 않는 응달이니까.. 나쁜 기운이려나?"
나는 H를 보며 되물었다. 깊은 산속에서 얇은 옷을 입고 덜덜 떨며 봄비를 맞으니 좋은 기운이라고 느껴지기는 쉽지 않은 날씨였다. '민박집에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이 없는 이유는 이 시기에 예정된 비 예보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기예보를 본 다음 날짜를 정할 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문득 스쳤다.
물가에서 한참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다, 우리는 뭍으로 조금 걸어 올라와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챙겨 온 술과 과자를 풀었다. 나와 함께 마시기 위해 아껴왔다는 말과 함께 H가 챙겨 온 위스키 뚜껑을 열었다. 뚜껑의 코르크에서 향긋한 과일향이 뿜어져 나왔다.
"야 우리가 10년 전쯤 말이야, 그게 쿠반지 칠레인지 남아공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왜 우리도 언젠가는 아재가 되는 거 아니겠냐며 웃었잖아. 그때는 그냥 길거리에서 아무 음식이나 시켜놓고 맥주 한 병 있으면 세상 행복했는데, 한 10년쯤 뒤에는 아마 좋은 고기 구워놓고 조니워커블루 까고 있을 거라고. 근데 진짜 그러고 있다 ㅋㅋ"
"진짜네ㅋㅋ 야 우리 뭐 영락없는 아재지 뭐 이제. 너도 이제 곧 아빠 되고. 진짜 축하한다."
아재가 다됐다는 말과는 다르게 H는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기다렸던 아이. 드디어 그 아이를 곧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에 H는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는 듯했다. 하늘을 올려보자 추적거리는 봄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H와 나는 '짠'과 함께 소주잔을 부딪히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난 세월 공유 못한 이야기들이 몇 순배 돌았다.
"H야. 너 사물에서 감정이 느껴진다는 말 알아?"
"글쎄, 그게 뭔데?"
"내가 어떤 건축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건축가들은 공간과 사물에서 감정을 느낀대. 그래서 건축을 할 때 그 공간들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배열하는 일을 한다는 거야."
"그렇겠네"
"만약 모든 사물에 감정이 있다면 지금 이 풍경의 감정은 뭘까?"
"글쎄.. 넌 뭔데?"
"나는 고독."
"재밌네 나도 쓸쓸함을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한 번 더 잔을 부딪힌 뒤 각자 경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곳이 왕사남에서 묘사된 청령포와 매우 유사한 환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는 높은 산이 있어, 나룻배가 아니면 다른 이와 닿을 수 없던 청령포. 단종이 머물렀던 그곳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섬 아닌 섬 같은 장소였다. 거북이 민박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다리는, 동강의 물이 불어나면 자주 침수되어 고립되기 일쑤란다. 사장님은 "여름에 태풍 오고 집중호우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다 취소시켜요.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다리가 물에 잠겨 못 오거나, 나가지 못하면 곤란하니까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떠나오기 전 서울에서는 한낮에 반팔을 입고 나가기도 했다. 집 앞 산책길엔 벚꽃이 만개해, 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조금 멀리 떨어진 강원도 산골에서는 계절이 아직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기 전이었다. 단종이 보내야 했던 긴 겨울밤은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
우울하고 깊은 고독에 빠지게 만드는 날씨와 지형. 유배지가 필요하다면 이런 곳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문명의 이기가 가장 늦게, 가장 비싸게 도달하는 산골에서는 햇빛이 귀중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전기도 없던 옛 시절엔 더욱더 그랬을 테지. 한양보다 훨씬 더 길고 깊은 겨울밤, 왕이었던 자가 깊은 산골에 유배를 와 지내며 마음에 품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살아나가자는 의지를 잇게 하는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고요한 시간들이 바람을 타고 지나간 뒤, 구름 뒤에 숨어있던 해는 지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채 기색을 감추었다. 산은 더욱 검어졌고, 비구름은 더욱 낮아졌다. 산 모퉁이를 끼고 구름들이 돌았고, 새들의 울음소리는 구슬피 울려 퍼졌다. 간간히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때렸고, 강물의 소리도 어쩐지 낮과 달라진 것 같았다. 산속에 밤이 찾아보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가운데 노란 전등만이 여기에 사람이 지내고 있음을 알렸다. 날이 맑았다면 별이 쏟아질 듯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