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v(sic) - Nujabes feat.Shing02
수술실에서 깨어났다.
이번에는 한기보단 온기가 먼저 느껴졌다. 아마 내 허리 아래를 두르고 있는 수술용 모포 덕분이겠지. 의식을 차리고 난 뒤 들었던 생각도 지난 수술들과는 조금 달랐다.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의 내 수술을 집도한 의사였다. 의사가 아닌 인간으로서도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나는 걱정보단 평온한 기분으로 수술용 침대에서 일어나 휠체어를 탔다. 뒤에서 누군가 나를 이리저리 끌며 병실로 안전하게 실어날랐다.
병실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내와 자주 다니는 쇼핑몰 꼭대기가 보였다. <Time Square>라고 쓰인 백색의 간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짙은 눈발에도 꺼질 줄 모르고 영등포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병실이 아닌 크리스마스 뉴욕 한 복판에 있는 숙소에서, 타임스퀘어를 바라보며 여행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잠깐의 낭만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루한 병실의 시간들이 창 밖의 눈처럼 켜켜이 쌓였다.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나뿐 아니라,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려 하며 간호한 아내 모두, 건조한 온풍기에 수분을 뺏기는 피부처럼 점점 서걱거려 갔다.
퇴원 후의 일상은 극도로 정적이었다. 주말이건 휴일이건 일이 있으면 일을 해야 했던 삶에서, 온전한 고요 속으로 삶이 침전했다. 나는 한쪽 팔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극도로 제한적인 나날을 보냈다. 40도가 넘는 열탕에 몸을 푹 담가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있다가, 갑자기 냉탕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과 같은 나날이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빈 시간'에 당황했다. 글을 쓰기도 읽기도 어려웠다. 한 손으로, 혹은 제한된 자세에서 나는 시간을 때워낼 요깃거리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맛이 있던 없던, 빈 공간에서 느껴지는 허기를 모면하기 급급한 나날들이었다. 갑자기 들어닥친 갈급함은, 무엇을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았다.
눈이 오는 날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몸이 멀쩡한 나였어도 오늘은 조금 쉬어가는 날이었을 테니까. 난 그렇게 하루하루를 회복의 시간을 고대하며 버텼다. 마지막으로 글을 게시했던 1월 중순에서 점점 새 글이 멀어질수록, 더더욱 복귀는 어려워졌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았다. 매일같이 하면 어렵지 않게 긴 글도 써낼 수 있지만, 쓰지 않으면 첫 문장을 토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좀처럼 영상으로 올라올 기미가 없던 한파도 어느덧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지막 수술 전 잠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내려갔던 제주집에선, 1월 제주의 싱그러운 자연이 푸릇함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봄이 미리 피었었다. 아직 어깨 수술을 하기도 전이었지만, 나는 수술 후 회복하는 가운데 피어날 봄을 미리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마침내 몸이 회복되자 다시 봄이 찾아왔다.
이제 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