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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블랙 Jan 05. 2019

슈퍼맨이 아니어도 괜찮아.

나의 슈퍼맨, 아버지에게.

평범한 주말.

늦은 저녁을 먹으며 조형기, 독고영재, 박준규 씨가 나오는 라디오스타 편을 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문답이 끝나고,  세 게스트들이 중년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강에 가서 차 안에서 본인의 인생을 돌아본다는 사람도, 갈 곳이 마땅히 없어서 통일전망대에서 500원 넣고 이북 땅 바라본다는 사람도, 외로움을 혼자 달랜다는 게스트도 있었다.


그리고는 MC가 질문을 한다.

게스트들에게 아버지란..


불현듯,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성인이 되어갈수록 세월은 비례하게 아버지에게도 지나쳐서, 작년에는 환갑을 맞이하셨다.

 

어렸을 때는 아주 가끔, 아버지의 늙음을 홀로 상상해 보곤 했다.

나이도 계산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되면 아버지가 몇 세실까, 내가 서른이 되면 아버지는 몇 세실까.


어린 나의 상상은, 나이라는 수치 앞에서 현실성을잃고 금세 생각놀이를 끝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아버지의 등이 정말로 작아 보이는 것을 느꼈다. 상상 속의 숫자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와 함께, 머리숱도, 주름살도, 숫자와 함께 점점 변했다.


나에게 아버지란 항상 든든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운동 좋아하는 것은 똑같은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모든 운동을 아버지한테 배웠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나는 원래 산타라는 것이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그렇게 느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색한 교복 입고 바뀐 환경에 적응 못하고 한 친구에게 괴롭힘들 당할 때도,

아버지는 나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줬다. 진짜로 싸우는 법 말이다.


"네가 코뼈 부러트려도, 충분히 치료비 주고 합의금 줄 정도로 돈 있다"는 아버지의 말이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그땐 그만큼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 없었다.


난 그 흔하디 흔한 반항기 한 번 겪지 않고 순탄하게 자랐다.

앞에서 뒤에서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 아래 커왔다. 나에게 아버지는 삶의 기준이었으며 옳고 그름이다.

슈퍼맨이었고, 가장 든든한 백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가 입대한 뒤에, 30년 가까이 일하신 직장에서 은퇴를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대 내에서 아버지 생일날 드리기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 짧은 단편 소설 쓰는 일밖에 없었다.


큰 감정동요가 없으신 아버지께서, 소설을 받고는 어느 날 새 컴퓨터를 사다 주셨다. 그게 아버지의 표현 방식이었다.


일 년간 심신의 휴식기를 가지신 후, 동종업계에 직장으로 재 취업을 하시고는 돌연히 못다 한 학업을 다하시겠다면서 박사과정에 진학하셨다.


대학에서 본인의 경험과 인생을 바탕으로 아들 나이뻘의 학생들 가르치고 소통하고 싶다고. 끝까지 너희 두 아들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나는 아버지의 등을 보며 살아왔다. 슈퍼맨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는 당당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버지의 앞모습은 보지 못했다. 본인의 삶에 고독함을 나는 알지 못했다.


늙어가는 얼굴 앞에, 작아져 가는 현실 앞에, 당당하고 싶어, 초라해지기 싫어 더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차마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버지가 느낄 나의 할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조형기 씨가 끝날 무렵, 아버지를 생각하며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불렀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는 아버지가 청춘을 다 바친 직장을 사임하며 사내 게시판에 후배 직원들한테 너희들의 인생을 살라며 게시한 곡이기도 하다.

노래방 가면 빠짐없이 한 곡씩 하신다.


이번 아버지 생일에는 노래 연습을 좀 해서, 이 노래를 불러봐야겠다.

아버지는 영원히 나와 내 동생에게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남자이며,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계속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https://youtu.be/5AVOpNR2P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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