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능의 욕망 May 11. 2023

판타지아 이탈리아나 출간 3

원단과 오버코트


아름다운 옷을 찾아 떠난 여행을 통해 난 그것이 희귀한 존재임을 깨단해야만 했다. 명성 높은 사르토리아의 유명무실한 현재를, 오랜 기다림 끝에 받아 든 수트에서, 포장지도 채 다 뜯기도 전에, 성급히 집어든 재킷의 촉감만으로 단박에 통감하는 허탈함 역시 피할 수 없었던 비용이었다.


장인들의 공방을 거듭해서 방문하고, 그들의 작품을 향유하며 얻게 된 가장 값진 수확은 수트의 ‘만듦새(사르토의 바느질 실력)를 알아보는 눈’이었다. 경험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잘 만들어진 옷을 입고서 생활하는 경험이 필요했다. 형편없는 품질의 옷은 제 아무리 많이 입어본들 잘 만든 옷을 알아볼 안목을 길러주지 못한다. 반면 진정 아름다운 옷(숙련된 장인이 한 사람을 위해 손바느질로 완성한 옷)에 익숙해진다면, 품질이 떨어지는 옷을 분별하는 능력이 저절로 갖추어진다. 정확히 언어화할 수 없더라도, 걸쳐/만져 보는 순간 “이건 아닌데”라는 확신이 번개처럼 들어선다. "미(美)는 객관적이다"(김준산)라는 명제의 좋은 예시일 테다.


옷을 주문할 사르토리아를 결정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되는 요소는 ‘하우스 스타일’이다. 영국식,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밀라노식, 피렌체식, 나폴리식 등의 범주로 나뉘는 지역별 스타일과, 어깨 패딩, 내부 캔버스(심지) 사용 방식, 라펠 -칼라 -주머니의 모양새 등의 디테일로 수렴되는 '하우스 컷'은 분명 고객의 선택을 돕는 가장 결정적인 척도다.


그러나 하우스 스타일이란 개념은 늘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을 야기한다.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수미주라 수트의  가치는 실제로 ‘누가 수트를 재단하고' ‘누가 재봉하는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같은 앤더슨 앤 쉐퍼드, 치포넬리, A. 카라체니의 수트라 하더라도 다수의 재봉사가 상주하는 이들과 같은 대형 사르토리아의 경우 각 재봉사의 숙련도에 따라 옷의 만듦새와 완성도에는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현재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새빌로와 이탈리아의 대형 하우스들의 품질 문제가 개선이 어려운 난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승하는 인기와 함께 주문량이 증가하고, 제작하는 수트의 수가 늘어나며, 더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 과정에서 품질 관리가 어려워지는 문제는 통상적이다. 지속되는 문의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선에서 더 이상 새 고객을 받지 않고, 품질 유지를 위해 주문량을 제한하는 몇몇 고집 있는 장인들(특히 일본 출신 장인들의 이러한 경향은 도드라진다)이 있는 반면, 매출 증가와 함께 솟아오르는 가격에 비해 품질은 되려 악화되는 모순적 상황이 유명 하우스들의 현주소라는 것이 애호가들의 진단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부족 사태다.  최고급 재봉사(칼라, 소매와 같은 재킷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맡아서 완성하는))의 고갈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데릭가이는 <The New Faces of Tailoring> 포스트에서 서양의 많은 맞춤 양복점들이 재단이 끝난 후 재봉을 완성하기 위해 옷감 보자기를 전 세계 각지로 배송하고 있는 현 업계의 사정을 서술한 바 있다. 지루한 손바느질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하는 ‘미련한 맹목성’을 통해 탄생하는 숙련된 손가락이 희귀하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늘날 업계의 현실이 그 이치를 반영한다.


(‘전설’이라 불리는 마에스트로들 역시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깐깐하다 해도 재봉사의 수가 일정수를 초과하는 순간, 생산되는 모든 수트의 품질을 100% 관리하는 일은 어려워진다. 외주(外注)를 맡기는 사르토리아들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 없겠다. )



공방에서 지속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사르토들이 우선적으로 바느질 실력으로 경쟁 하우스들을 평가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미적 지향점, 스타일, 또는 ‘취향의 차이’는 부차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그들은 칼라, 라펠, 가슴, 주머니, 소매, 쿼터를 정교하고 꼼꼼한 바느질로 구현해 내는 ‘재봉 실력’으로, 즉 바느질의 숙련도로 경쟁 사르토를, 그리고 경쟁 하우스들을 평가하고 있다. 마에스트로 파스카리엘로의 도제 장원석 사르토와 사르토리아 살라비앙카의 대표 최호준 사르토 역시 이와 같은 현상은 불가피한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저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우선 만듦새부터 봅니다.” (최호준)


"옷을 만드는 사람은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재단보다 재봉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마련이니까요." (장원석)


장원석 사르토는 내게 사르토의 ‘실력’이란 개념 역시 유동적인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사르토도 사람이다 보니까 컨디션이 안 좋은 날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날 만든 옷은 다른 옷들보다 미세하게 품질이 떨어지게 되죠”


아름다운 옷을 향한 열정을 타협 없이 추구하는 장인을 찾는 방황에서 여든셋의 나이에도 가위질과 바느질을 쉬지 않고 있는 안토니오 파스카리엘로보다 좋은 길잡이는 없었다. 그는 과거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의 황금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탁월한 일손들이 많았기 때문이야. 순전히 그들의 공이지. 큰 사르토리아의 유명 재단사들은 별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았어."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하면 밤 9시에 일이 끝났어. 어떤 아이들은 10시에서 11시까지 일을 했지. 칼라브리아에서 온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어. 다들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주려고 열심이었지. 많은 경우 돈이 없어서 재단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재봉만을 계속해야 했어. 물론 손님들을 상대할 소양도 없었지. 하지만 그 실력은 대단했어. 아이들은 서로 계속해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 누가 더 재봉 실력이 뛰어난 가는 중요한 문제였지. 그렇게 다들 무섭게 실력을 키워낸 거야.”


그들의 일과는 고된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그들은 좋은 옷을 알아볼 줄 아는 남자들이 즐비했던 20세기 초 나폴리의 거리에 그들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진정 옷을 사랑했던 나폴리의 귀족들은 런던 하우스(젠나로 루비나치의 사르토리아)의 간판 재단사인 빈첸초 아톨리니와의 교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직접 공방 내로 침입하여 옷을 만드는 재봉사들 중 실력이 뛰어난 이들을 찾아내어, 그에게 따로 돈을 쥐어주면서 자신의 옷만을 만들어달라고 강요했다고 전해진다. 실력 있는 재봉사를 독점하려는 그들 사이 경쟁은 치열했다. 평생 노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귀족들이 되려 아름다운 옷을 결정하는 것이 '숙련된 노동'이라는 사실, 즉 옷의 아름다움은 사르토리아의 이름과, '하우스 스타일'의 스펙타클이 아니라 실제로 누가 내 옷을 꿰매는가의 여부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오늘날 공방을 방문하여 누가 내 옷을 만드는 가의 여부를 직접 확인할 열정이 있는 고객이 소수라는 사실과 아름다운 옷이 드문 업계의 현재는 공생 관계에 있다. 우리의 시선이 가닿지 않는, 사유의 사각지대는 체제의 영역(김준산)이다. 원단과 만듦새를 알아볼 줄 아는 고객이 극소수인 상황에서  품질에 대한 타협(비용절감)이라는 유혹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우스의 규모가 커져도, 즉 재봉사의 숙련도가 예전 같지 못해도, 옷의 품질에는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는 그걸 알아볼 눈이 없다"는 시인과도 같다.  



<원단>


“원단 선택은 손님의 몫이야.”라고 마에스트로 파스카리엘로는 말한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여정에 있어서 나에게 맞는 원단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은 필수적이다.  그만큼 원단은 아름다운 옷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원단을 분석, 분별해 내기 위해서는 세밀한 언어가 필요하다.  "이탈리아 원단", "영국 원단" 정도의 단어에서 멈춰 선다면, 그 이상을 감각할 수 없게 된다. 간단한 이치다. 축구 팬이 이탈리아 축구, 영국 축구 따위의 단어로 클럽/대표팀의 전력을 도맷금으로 판단하지 않듯이, 애호가는 “이게 유행하는 옷입니다”라는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적지 않은 금액, 시간, 에너지라는 비용을 유발하는 수미주라 수트의 경험이 휘발되지 않고, 축적될 수 있도록 지침서를 마련하고자 했다.




<오버코트>


한국의 겨울 날씨와 의복 문화를 감안했을 때 수미주라 오버코트보다 클래식 남성복의 범주 내에서 더 ‘제 값을’하는 옷은 없을 테다. 활용이 쉬우면서, 걸치기 부담스럽지 않고, 내구성도 좋으며(양모라는 가정하에), 실용성은 말할 것도 없다.


K드라마 유행과 함께  해외에서도 이런 Meme이 유행하는 걸 보면, 분명 겨울철 코트는 폴리에스터 소재의 파카와는 다른 상상력을 자극한다.


완연한 혹한이 찾아오고 나서야 옷장에서 꺼내게 되는 오버코트의 경우 몇 가지의 모델만 구비돼 있다면 큰 문제없이 겨울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한 벌의 오버코트를 구매하는 일은 비교적 큰 비용을 의미하기에, 올바른 선택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오버코트 챕터에서는 이전 브런치에 작성했던 오버코트 편을 각색했고, 무엇보다 내 옷장속 코트들을 소개하고 그들에 대한 경험담을 적어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