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하여

'24 11. 04.

by 아침놀

글을 백지에 휘갈기는 것은 보기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펜 끝이 어디로 향할지 필자 본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작하는 행위이고 그 끝은 늘 보기보다 미약하기에 그렇다. 이 글 또한 그럴 것이기에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엘리베이터 기다리기 위해 목적 없이 눈을 기대 두는 종이 전단지나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크롤하는 기사들, 인류의 지혜가 켜켜이 쌓여있는 책들을 수없이 읽고 또 읽어나가며 가차 없이 품평하지만 비난의 칼끝이 너무 날카로워서였을까. 사람들의 말 끝에 베어져나가는 글쓴이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러한가. '글을 본다'라는 행위는 익숙하지만 '글을 쓴다'라는 행위는 식자층의 전유물로 취급되어 버리는 듯하다.



"왜 사람들은 글을 쓰고자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은 너무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왜 사람들은 글을 읽지 않을까?"에 후행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성인 열 명 중 한 명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기사가 놀랍지도 않게 된 지 몇 년이 지나버리지 않았는가. 청소년들도 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학업에 치여서, 우선순위에 밀려서 짜깁기로 감상문을 제출한 친구들이 한둘은 기억나지 않은가? 물론 자기 자신도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겠지마는, 유명한 연설을 보며 화술을 익히듯이 명문을 읽어보아야 글쟁이가 될 수 있다. 소설 하나 읽어보지도 않은 이에게 왜 글을 쓰지 않냐는 일갈이 너무 일러보이기도 하는 이유이다.


허나 이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은 있다. 글은 늘 책상에 앉아 자세를 바로하고 연필을 곱게 간 뒤에 다짐을 해야만 나오는 게 아니다. 생명력 넘치는 천재가 그 활력을 주체하지 못해 곳곳에 능력을 펼치듯, 내 생각을 널리 퍼트리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간은 필시 글을 쓸 터인데 어째서 글쓰기는 대중화되지 않는가. 비록 명문을 많이 보지 못하여 흐트러지고 비웃음 받는 글일지라도, 비문으로 점철되어 심혈을 기울여야 읽을 수 있는 글일지라도 곳곳에서 글 쓰는 이들이 보여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마 우리는 익명의 공포에 떨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더욱 세분화되고 쪼개져서 전문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플라톤이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땅을 가리키며 형이상학부터 자연과학까지 치열하게 논쟁한 후로부터 수천 년, 인류는 목록화하기도 힘든 정도의 수많은 분야들에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루었다. 위대한 인간도 모든 분야에서 끝에 닿을 수 없는 이 드넓은 지식의 나무에서 凡人이 자기의 의견을 쉽사리 피력할 수 있을까? 과학혁명 이후 자연에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인간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군중 속에서 바보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게 무서워서 사람들은 펜을 들려다가도 내려놓은 것 아니었을까.


이것도 이유가 아니라면, 나는 사람들이 생각을 펼치고 싶은 욕구, 그 원초적 의지를 발산시키는 방법으로 글을 선택하지 않았다고밖에 결론 내릴 수 없다. 돌이켜보면, 글 쓰는 게 중요하다고 설파하는 강의를 접해본 기억은 나나. 그 이유를 탐문하거나 글쓰기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배워본 기억은 흐릿하다. 대학진학자 비율이 높아지고,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학생들이 학업성취만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온 사람이 마음속 응어리를 쏟아내기 위해, 내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 글을 쓰리라 예상하는 것은 억측이다. 수능이나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 문데, 프랑스 바칼로레아 등 외국 교육제도와 우리나라 제도 간 비교. 이런 문제들은 필자가 다룰 문제가 아니기에 더 적지는 않으나, 그저 우리의 교육체계와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 간 유의미한 연관관계가 있다 생각하기에 한탄할 뿐이다.



작은 의문에서 시작한 물음은 늘 장대하고 추상적인 답을 남기고 멈춘다. 산꼭대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바다로 향하게 되어있듯 늘 그렇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타인의 시선에서 관찰하고, 또 추측한 것을 써 내려갔기에 그 답은 개인 안에서 머물 수 없고 늘 사회로 뻗어나간다. 그렇기에 "왜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내밀하고 개인적인 답을 원한다면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얻어야 할 텐데, 이는 필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하나 "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추측성 답변이 아닌, 확실한 답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글쓰기에서 얻는 행복감은 개인 간 편차가 있기에 논외로 하더라도, 글쓰기는 여전히 필요하기에 우리는 글을 써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뉴런의 전기신호를 통해 직접 내 생각을 표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 인간이 생각을 표출하는 가장 중요한 두 수단은 말과 글이다. 우리는 말과 글을 통해서만 서로를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 어디선가 책은 물과 같이 차갑고, 영화는 불과 같이 뜨겁기에 교양을 쌓는 측면에서 영화는 책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뜨겁고 감성적인 것이 냉철하고 이성적인 수단에 비해 교양을 쌓는데 부족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 불과 물의 비유는 말과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짤막하게 제시하기에 좋은 비유라 본다. 말은 불과 같이 뜨거움을 담고, 글은 물과 같이 차가움을 담고 있어 한 인간이 완성되려면 두 성질이 조화롭게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인간은 감정이 차오를 때는 말로 표현하고, 논리를 보여주고 싶을 때는 글을 내세운다. 내 논리와 생각의 전개과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아직까지도 글이다. 글을 써야 하는 강력한 이유는 - 감상을 차치하고서라도 - 아직 그 필요성이 잔존해 있기 때문에 있다.



꽤 길게 글쓰기에 대해 역설했음에도, 나 자신조차 매일 글 씀을 실천하지 못하기에 부끄럽다. 어릴 때 방학숙제로 꾸역꾸역 써 내려가야만 했던 강압이 남아서 그럴까. 일기라 하면 무릇 그날의 소회를 압축적으로 적어내려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올해를 맞이하면서 새 마음으로 사들였던 일기장이 어느덧 끝자락을 향해간다. 왼쪽 장에 글을 쓰려면 수평이 안 맞아 끙끙댔던 기억들도 가물가물해지고, 오른편에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연말이 되면 글 쓰는 게 조금은 쉬워질 줄 알았는데, 그러기엔 일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 헤세는 책 [데미안]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인간은 각자 저마다의 시도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향하여 노력한다고. 내 글 쓰는 실력이 영 마뜩잖음에도 계속 끄적이는 이유가 이 구절에 담겨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꼭 글을 읽으라는 결론은 너무 진부하여 내리고 싶지도 않거니와, 독자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무의미한 결론을 내리고 싶지도 않아 접어둔다. 나는 그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운명을 향해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을 뿐이며,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이 글로서 독자가 하는 그 최선의 노력에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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