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계절, 첫 번째 작별 - '두 번째 계절'

스테판 브리제의 <두 번째 계절>이 재생시키는 이별

by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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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두 번째 계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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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두 번째 계절>이 1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80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의 상찬을 받은 이 작품은 절제되고 섬세한 연출로 익숙한 사랑 이야기를 새롭게 그려낸다.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스타 배우 마티유와 평온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을 품은 알리스는 15년만에 바닷가 휴양지에서 재회한다. 옛 연인인 그들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다시금 마음을 열고, 인생의 두 번째 계절을 맞이한다.



텅 빈 사람들


누구나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과거가 같은 무게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란 마치지 못하거나 해결되지 않은 일이 인지적 긴장을 유발해 더 오래 기억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더 애틋하게 기억하는 것 또한 자이가르닉 효과의 사례이다. 따라서 잊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매듭짓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 <두 번째 계절>에도 기억을 매듭지으려는 두 사람이 있다.

15년 전의 연인 마티유와 알리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는 것. 영화 초반부에서는 마티유와 알리스의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이 차례로 이어진다.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 속의 작은 균열에 갑작스럽게 눈물을 터뜨리는 이들의 모습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둘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 짐을 짊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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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알리스가 사는 마을에 마티유가 우연히 방문하면서 재회하게 된 그들은 서로에게 빠르게 물들어간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그러하듯 본심은 숨긴 채다. 알리스는 마티유가 연극 프로젝트를 갑작스럽게 취소하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모른다. 마티유는 알리스가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근황’은 너무나 그럴싸해 보인다. 성공한 스타 배우의 삶, 그리고 안락한 가정에서의 평온한 삶. 이 나무랄 데 없는 인생에 무엇이 부족했는지는 둘이 주고받는 연락과 사진들이 점점 늘어나고, 만남이 거듭되면서 천천히 밝혀진다.



새로운 클래식


<두 번째 계절>에서 눈에 띄는 점은 김각적 아름다움이다. 첫 장면에서 평행선을 그리며 곧게 뻗은 도로, 차선 사이로 유유히 미끄러지는 마티유의 자동차는 버드 아이 뷰(bird’s-eye view)로 조망된다.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화면 구도는 공간의 입체감을 소거하고 2차원의 평면으로 전환시킨다. 자로 잰 듯 정확한 각도와 폭으로 정렬된 직선들은 현실의 풍경보다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패턴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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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장면들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다. 대칭 구도와 정제된 화면 구성을 통해 프레임에 담기는 바닷가 마을과 호텔의 풍경들은 한 컷 한 컷이 잘 계산된 정물화 같다. 정지 상태로 전환되는 인서트 컷(insert cut)들은 마치 슬라이드쇼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한다. 빈티지하고 차분한 색감의 화면과 어우러지는 서정적인 선율의 OST 역시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감각적 체험을 극대화한다.


한 폭의 미술 작품처럼 회화적으로 조직된 화면은 일견 완벽해 보이는 인물들의 겉모습과 닮아있다. 그 틈새로 흐르는 음악의 변주는 이들의 심경 변화를 암시한다. 영화 초반부에 들려오는 기계적이고도 음울한 선율은 마티유와 알리스가 재회한 이후 부드럽고 감성적인 선율로 변모한다. 오래전 헤어진 전 연인과의 재회라는 전형적인 멜로 서사는 이렇듯 절제된 연출을 통해 새로움을 획득한다.



진정한 사랑


그러나 시청각적 연출의 특별함이 스토리텔링의 진부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정 대화나 상황이 유독 길게 할애되는 장면이 있는데, 감각적인 쇼트들과 달리 인물들의 현실감 있는 대사와 행동은 관객들의 정서적인 몰입을 유도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알리스의 지인 쉬라트의 인터뷰 영상이다. 전남편을 사랑했느냐는 질문에 쉬라트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답한다. 그때는 잘 지내면 그만이었다는 그녀의 대답은 성공한 앵커 아내와 마티유의 비즈니스적인 관계와 자상한 의사 남편과 알리스의 공허한 관계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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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이 죽은 뒤 쉬라트가 찾은 ‘진정한 사랑’은 메말라가던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쉬라트와 그녀의 동성 연인 질베르크의 결혼식 역시 꽤 길게 지속되는 장면이다. 행복해 보이는 신부들과 피로연을 즐기는 하객들에 뒤섞여 마티유와 알리스는 음악에 맞춰 천천히 춤을 춘다. 이때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듯하다. 결혼식이 끝난 뒤 둘은 차 안에서 서로의 손등에 키스한다. 마치 우리의 만남은 여기까지라고 선언하듯이.


그러나 둘은 결국 마티유의 호텔방에서 재회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불륜 서사를 불호하기에 아쉽게 느껴졌지만, 나중을 떠올리면 필요한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들은, 그럼에도 돌아오려 한다. 그러나 다음 날 호텔을 떠날 예정이었던 마티유가 그녀를 다시 찾아오면서 이들의 만남은 계속된다.



상처의 재구축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꿈속에서 외상적 장면을 되풀이하는 이유를 ‘과거의 상처를 소급적으로 다스리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즉, 심리적 충격을 주었던 과거의 장면을 현재로 소환하여 다시 마주함으로써 해결되지 못한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마티유와 알리스의 만남이 거듭되는 이유는 단순히 각자의 결혼 생활에서 충족되지 못한 결핍을 해소하려는 것일까?


그렇다기에 그들의 관계는 묘하게 강박적인 구석이 있다. 안전거리 밖으로 상대를 밀어내려는 태도와 서로를 향한 애틋한 이끌림이 공존한다. 선을 넘어선 안 된다는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국 만난다. 몇 번이나. 만약 그들의 만남이 서로에게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불러내려는 움직임이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마티유는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할까 봐 두려워 연극 출연을 취소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비겁한 행동에 오히려 고통받는다. 알리스는 15년 전 마티유와 헤어진 뒤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마티유와 달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서 그에게 버림받았다고 믿는다. 도망친 사람과 버려진 사람. 이별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고, 이들의 텅 빈 마음은 어쩌면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가지일지도 모른다.

왜 돌아가지 않았냐는 알리스의 물음에 마티유가 미적지근하게 답한 뒤 충동적으로 헤어진 그들은 결국 호텔 앞에서 재회한다. 알리스의 차 안에서 그들은 결국 자신의 상처를 함께 마주하기로 한다. 먼저 손을 건넨 알리스의 용기에 힘입어, 마티유도 숨겨왔던 치부를 고백한다. ‘최소한 당신처럼 솔직하고 싶어서’라는 그의 말은 '괜찮음'을 가장하던 그들의 가면이 끝내 벗겨졌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그들은 15년 전 완성하지 못한 이별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처음으로’ 작별한다.



때늦은 작별


첫 장면과 수미상관으로 연결되는 마지막 장면의 도로는 바닷가 마을로 향하는 마티유와 그곳을 떠나는 마티유를 같은 구도를 통해 보여준다. 일의 부담감으로부터 도망친 처음의 마티유와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떠나는 마지막의 마티유는 같지만 다르다. 그들이 진심을 나눈 공간이 대부분 차 안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엔딩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Out of Season]이다. ‘두 번째 계절’이 두 사람의 재회와 그들이 다시 만들어낸 이별을 뜻한다면 ‘Out of Season’이 가리키는 ‘철 지난 것’은 이미 때를 놓쳐 버린 두 사람의 인연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들의 첫 번째 작별은 결국 필연적인 것이었다. <두 번째 계절>은 ‘안녕-’ 하고 구태여 길게 발음해 작별을 고한다. 15년 전의 과거를 15년 전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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