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여왕

by mori

계단을 뛰어가듯 내려가는 것은 내가 가진 몇 가지 소소한 재미 생활 중 하나이다. 걸을 때는 앞선 사람도 계단에서 만큼은 나의 뒤로 보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가능한 타지 않는다. 계단을 밟고 중력을 이용해 속도를 낼 수 있는 이 작은 행복을 에스컬레이터 따위를 타면서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래저래 다소 느린 나지만 계단에서 만큼은 좀 강하다.


이 행위에 재미를 느낀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그 시절 학교 계단은 차가운 돌의 피부가 그대로 노출된 계단이었다. 아이들의 종종 거리는 발바닥에 깨끗이 닳아서 모서리는 자연스러운 곡률로 깎여 나갔다. 반들반들한 딱 광이 나는 둥근 모서리를 하얀 천 실내화를 신고 서핑하듯 타고 내려갔다. 두발을 사선으로 모아 한 발로 아랫 계단을 딛음과 동시에 미끄러지며 대각선 뒤쪽 발이 이어받게 해야 한다. 마치 캔음료 제조공장처럼 혹은 재봉틀의 노루발처럼 어린아이의 발은 계단을 기계적으로 집어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계단을 기계적으로 재봉하듯 타고 내려갈 수는 없다. 워낙에 미끄럼 방지 부자재가 계단에 견고히 부착되어 있기도 하지만 체구가 계단을 타고 갈 만큼 작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던 동물적 DNA가 몸에 기억되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그 감각이 몸에 스며있다. 계단을 다다닥 뛰어 내려가면 무거운 몸이 가벼워지고 스릴이 뒷덜미에서 올라온다. 어쩌면 계단을 신나게 뛰어 내려가는 순간 유년시절의 개구진 시간이 상기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즐겁다. 앞선 신사복, 청바지, 롱치마, 구두, 하이힐 모두를 앞질러 계단의 끝에 먼저 다다를 때 먼저 골라인을 끊는 희열이 있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계단 중에서 가장 설레는 장소는 단연 지하철이다. 지하철의 계단만큼 넓고 쭉 뻗어있는 곳이 없다. 그리고 계단의 경쟁자 혹은 장애물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계단이 가장 지루하고 단조롭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모닝롤 같다고나 할까. 잘 갈려진 녹차밭 같이 지루하다. 몇 번은 내려갈 수 있지만 3층 넘어서 계속 계단을 타다간 어지러워서 집중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아파트에 비해 유난히 작은 환기창은 대부분 닫혀있어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넘어온 특유의 향이 계단 타기의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지하철 계단의 두 번째 독특한 매력은 에스컬레이터와 나란히 있는 경우이다. 이렇게 인간 대 기계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선명한 장소가 있을까? 출발하기 바로 직전 이곳의 최상단에서는 마치 스키장 곤돌라에서 막 내려 코끝 시큰한 찬바람에 슬로프가 꺾여나간 아래를 내려다보는 긴장감이 있다. 찰나의 순간에 양팔에 소름이 살짝 돋는다. 이 순간 계단을 타는 사람에겐 무척 자극적인 장소이다. 기계와의 경쟁이라고 할까? 대부분의 승리는 물론 나의 것이다. 계단을 타는 재미를 뺏어간 에스컬레이터 따위에게 나의 승리를 양보할 수는 없다.



내가 최고로 치는 계단은 이화여대 지하철역이다. 후불 교통카드를 대고 스타트를 끈고 나면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오른쪽? 왼쪽?. 기계냐 아니면 오롯이 자신의 무게를 감내하는 허벅지와 종아리, 동물적 감각의 반복 작업이냐 하는 선택이다. 주저 없이 왼쪽에 선다. 저 아래 종료지점이 아득히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길게 이어진 단일 직선의 계단을 과연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이곳만큼 길고 꾸준한 계단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공사를 하는지 계단의 표면을 메탈로 커버해 놓았다. 미끄럼 방지 테이핑이 없는 사이드 부분이 반들반들하다.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첫 부분에서 몸의 체중을 살짝 들었다 아래로 놓으며 중심을 계단 앞으로 던진다. 역시 나의 다리와 몸은 이 감각을 잊지 않았다.


역시 이곳은 계단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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