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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Nov 24. 2019

죽고 싶다는 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참여하고 있는 오픈 카카오톡방에  "헉 구하라 사망 소식이 떴어요. 다들 보셨나요?"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카톡방 사람들은 놀라서 네이버에 구하라를 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이버 초록창에 구하라를 쳐보니 "가수 구하라 자택서 숨긴 채 발견... 경찰 사인 조사 중"이라는 뉴스들이 보였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확실한 건 없다. 설리의 죽음이 전해지고 채 두 달이 지나지도 않았다. 오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새로고침을 누르다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브런치 창을 켠다. 


 처음 설리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는 회사였다. 설리는 본인의 생각을 함부로 판단하고 왜곡하는 거대한 미디어 앞에서도 목소리를 냈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설리의 발언들에 위로를 받을 때도 있었다. 브라는 액세서리일 뿐이죠라는 설리의 말을 기억하며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나섰던 아침이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눈치 보는 행동을 싫어했다.”라며  ‘악플의 밤’에서 춤 연습 도중 윗사람이 오자, 갑자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 대충 추던 춤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일화를 듣고서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했던 밤이 있었다. 그래서 설리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그를 응원해주지 못했던 시간들이 원망스러웠다. 과거 설리에게 쏟아졌던 악플이 개인에 대한 모욕 아니라 여성 전체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이었음에도 방관과 침묵으로 대응했었다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SM


 그리고 약 40일의 시간이 흐른 지금 또다시 한 명의 연예인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최종범이 폭행 협박 유죄 판결과 성관계 동영상 유포 협박 무죄를 받은 판결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며 끝까지 법적으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사람. 과거 연애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나간 라디오스타 자리에서 규현이 계속 연애 이야기를 본인의 꺼내자 화가 난다며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내비쳤던 사람.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며 네 몫까지 열심히 지내겠다고 다짐했던 사람. 


@발자국 소리 

 

설리와 구하라는 인스타그램 게시물만 올려도 무근 별한 어뷰징 기사들을 통해 구설수에 올랐고, 그들의 몸은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쉽게 성애화 되었다. 최종법 역시 이 지점을 이용해 구하라를 협박했다. 여자 연예인의 취약한 위치 때문에 구하라는 "(동영상을 공개해)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 주겠다. 디스패치에 제보하겠다"는 폭력적인 협박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은 적나라하게  언론에 노출되었다. 여자 연예인들의  평범한 일상 조차 어뷰징 기사들을 통해 자극적으로 노출되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볼 수도 있는 댓글로 욕을 하고, 사회는 이 모든 악순환을 방치했다. 연예인이면 이 정도는 감당하라는 무책임한 변명만 하면서. 


 구하라 검색 키워드에 계속 새로고침을 누른다. 방금 공식입장이 나왔다. 보도는 사실이었나 보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뻗쳐나갈까.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H를 떠올린다. 


4년 전 겨울 H는 욕실에서 손목을 그었고, 손목을 그었지만 죽지는 않아서 응급실에 전화를 했고, 그날 아침 손상된 신경과 힘줄을 수술을 했다. 해외에 있던 H의 부모님이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자살 시도 환자의 보호자는 상시 병원에 대기해야 한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간호사를 찾아다니며 H의 수술 일정을 챙긴 건 나였다. 우리 둘 다 병원은 처음이어서 링거 꽂고 화장실은 어떻게 가며, 옷은 어떻게 갈아입는 건지, 잠은 어떤 방향으로 자야 하는지 다 몰랐는데, 모르는 걸 들키기는 싫어서 열심히 주변을 둘러봤다. 


어떤 기분이 드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묻지 않았고 H도 말하지 않았다. 그 흔한 ‘괜찮아?’라는 질문도 어려웠는데, H가 손목을 긋기 시작한 게 꽤 오래전부터의 일이라는 걸 아니까, 그 과정을 옆에서 함께했으니까. H가 얼마나 죽고 싶어 하는지 아니까. 나는 죽고 싶었는데 죽지 못한 H를 바라보면 무엇이 괜찮은 건지 혼란스러웠다. 크리스마스이브여도 밤 10시 이후의 병원은 적막하고 어두워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유리창 밖의 신촌 사거리의 네온 조명을 별 바라보듯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H의 부모님이 오셨고, 나에게 미안하다며 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5만 원을 주셨다. H는 아빠 때문에 죽고 싶어 했으니 H의 아빠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H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맞는 것 같아 그 돈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 5만 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H를 힘들게 하는 H의 아빠도 짜증 나고, 몇 년째 죽고 싶어 하는 H도 미웠다. 차라리 H가 죽으면 모두가 편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은 혐오스러웠다. 그렇게 엉엉 울고 나니 손 안의 5만 원이 거의 찢어질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나는 H가 힘들어할 때 내가 너무 성급한 위로와 무례한 용기를 건넬까 봐 무서웠다.

힘들 땐 내가 옆에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해라고 H에게 말하는 게 진심이 아닌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힘들 때 H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게 망설여졌다. H는 언제나 나보다 힘들고 괴로운 사람이니까 H가 겪는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짓눌렀다. 가끔 그게 억울했다. 나도 위로받고 싶은데. 나도 네가 손목을 그을 때마다 너무 무서운데. 왜 아무도 나의 두려움은 바라봐주지 않는 거야.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H에게 내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H 앞에서 점점 말이 없어졌고, H와 조금씩 멀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빠르게 H에게로 향한다. 너에게 '괜찮은 거지?' 라고 물어보고 싶다. 폰을 들어 카톡 H의 이름을 찾다가 핸드폰을 내려둔다.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 도대체 뭐가 괜찮은 걸까.  



설리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SNS에 한마디도 쓰지 못했다. 나는 왜 설리를 응원한다는 말을 진작하지 못했을까. 내가 만약 설리의 가까운 지인이었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설리씨에 대한 애도를 온전히 나를 관통하지 않고 오직 설리 씨만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무언가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구하라 씨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까. 


 나는 H에게도 너무 늦을까 두렵다. 언젠가 H는 나에게 '왜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했고 나 또한 여전히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면 H에게 다시 연락할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나는 계속 제자리다. 글을 쓰면서 용기를 얻고 싶었지만 더 이상 쓸말이 없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한가지 기억하고 싶은게 있다. 설리씨와 구하라씨 모두 올해 활발히 활동했었다는 것. 노래를 발표하고, 우울증을 고백하고 이겨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었다. 그들은 정말 진심이었고 나는 그 진심을 잊지 않고 싶다. 


진심을 다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11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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