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5종 함께 하실래요?

늑대와 함께 춤을

by 나태리

25 킬로미터 달리기_4시간


번아웃이 오면 하프를 달린다. 요즈음도 그런 상황이었다. 솔직히 뛸 기운도 없었지만 보름이 지나도 도저히 기운이 반전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다시 하프에 도전해 보았다. 슬금슬금 뛰기 시작했다. 9분대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평소 달리던 호수를 벗어나 공주 방향으로 경로를 잡았다. 호수 주변을 뛰다가 힘들면 그만두고 집에 올 것 같았다. 멀리 가면 돌아와야 하기에 어차피 뛰거나 최소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에 금융카드 기능을 설정하지 않은 핸드폰 밖에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사장교 다리 주변에 조깅족, 사이클족을 위해 만들어 놓은 다리의 가장자리를 건너 도심을 빠져나갔다.


제일 맞이한 것은 황토색 고양이가 내 앞에 눕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간택당해야 한다고 하는데 처음 보는 나를 보고 애교를 떠는 것 같지만 간택당할까 봐 무시하고 지나갔다. 다음에는 고고한 학 한 마리가 마치 정물화의 꽃병처럼 움직이지 않고 냇물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조금 지나니 풀숲에서 꿩 한 마리가 부석 부석거린다. 감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 참새떼가 모여 앉아 있다가 뛰는 소리에 놀라 파르르 날아가 버린다. 논두덩 아래로 늑대 같이 보이는 들 개 한 마리가 목줄도 없이 비닐하우스를 서성인다. 집에 있는 강아지 생각이 나서 계속 쳐다보았다.


화장실을 가려고 찾았던 수목원은 6개월 전에 폐쇄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자주 오던 곳이었는데 폐쇄된 지도 모르고 있었다. 수목원을 반환점으로 돌아서 오는데 아까 보았던 들개가 언덕 아래에서 계속 어슬렁거렸다. 녀석을 계속 쳐다보며 뛰고 있었는데 이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들개는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같이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당장 언덕을 올라오진 않았지만 조금 뒤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19에 전화를 해야 하나 위기를 모면할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다. 근처 사이클 쉼터에 어른 남자분이 쉬고 계셔서 도움을 청했다. 그분이 나를 엄호해서 따라오기로 했다. 들개는 어른 두 명이 같이 달리고 사이클을 타고 가니 덤비지는 않았다. 그리고 10여분을 더 뛰었다. 도시로 들어오자 개는 보이지 않았다. 사이클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18킬로미터 달리던 지점이었다.


들개가 나를 해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에 오니 핸드폰 앱에 25킬로미터가 찍혀있었다. 42,000보였다. 다음번에 번아웃이 오면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야생동물을 마주하는 것은 힐링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했다. 영화처럼 늑대와 춤을 출 뻔했을지도 몰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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