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해자였다.
죄책감.
외부와 내부로부터 오는 보복에 대한 공포, 후회, 회한 그리고 참회를 포함한 복합 정서. 죄책감의 핵심에는 일종의 불안이 있는데, 이 불안에는“만약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결국 나도 다칠 거야”라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정신분석용어사전, 2002. 8. 10., 미국정신분석학회, 이재훈)
오랫동안 날 괴롭혔던 감정에 대해 털어놓으려 한다.
쉽게 털어놓기 어렵고 수치스럽기도 하다.
이혼 후 후련했던 이유도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히 내 감정에 대해 털어놓으려 한다.
배우자 외도를 겪으면 피해자가 되어있다.
자연스레 외도한 배우자는 가해자가 되어있다.
나 역시 그랬다.
오랜 결혼생활동안 전남편과 나는 평등한 위치가 아니였다.
배우자의 외도 사실을 알고
깊은 고통과 절망감에 아팠지만
항상 "을"의 위치에서 많은 희생을 해야했던 나는
무릎꿇고 용서를 비는 애들아빠를 보며
잠깐이나마 희열을 느꼈던 걸 부인하지 않는다.
그 때부터였다.
마음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피해자니깐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나는 폭군이었고 가해자였다.
외도한 배우자를 모독했고 비인격적으로 대했으며
존재를 부정하고 욕을 했고 심리적 공격을 서슴치 않았다.
범죄자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상대방을 옥죄이고 복종을 강요했다.
그럴 때마다 잘못을 비는 배우자를 보며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당시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지만
내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자.
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두고봐. 내가 어떻게 하는지
등등 일종의 복수심리지 않았을까?
물론, 잘해주고 회유하고 설득하는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다.
어떤 행동들은 선을 넘어선 것이었다.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면서부터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나는 괴물이 되어갔다.
그렇게 이성을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잠잠해지는 어느날이면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어려웠다.
회피하고 싶지만 회피할 수 없고
내려놓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나자신을 욕하고 경멸했다.
너는 이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이었어.
가정보다 너 감정이 소중한 거야?
사랑? 웃기지마. 너도 그 사람 이용하고 있짆아.
힘들고 싶지 않아 너 편한대로 하려는 거잖아.
너 역시 이기적인 인간이었어.
넌 좋은 사람이 아니야.
배우자의 경제적인 안정감을 누리면서도
그 목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스스로가 너무 싫어져 감당하기 힘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나 자신을 통해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하다.
이혼 후, 평온이 찾아온 건
그런 죄책감의 상당부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모두 벗어난 건 아니다.
나는 나의 끔찍한 이기심을 보았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라 믿었건만
현재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남을 믿을 수 있을까?
이제껏 알던 사람들도, 앞으로 만날 사람들도
나는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마음을 열지 않게 되고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미 잿빛인 것이다.
앞으로 감당해야할 일종의 "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벌을 달게 받을 생각이다.
외롭고 고독한 삶을 앞으로 성실하고 충실히 잘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잿빛이 조금 옅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