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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Dec 27. 2024

올 한 해 나를 칭찬해

30년 전,

고등 졸업 전에 취직을 했다.


당시 엄마는 집 근처 인형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20대 전후 여공들에게 괄시와 무시를 받고

너무 속상해서 언제 한번 내 앞에서 펑펑 우셨다.


엄마에게 그만두라고 했고

그때부터 나는 집안 가장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첫 직장에서 일 배우면서 많이도 울었다.

컴퓨터도 없고 엑셀도 없던 시절이라

당일 입출금 전표 작성, 세금계산서 발행, 영업마감 일일보고, 자재 재고 확인

일일이 수기로 장부에 기록하고 결재받고

상고를 나왔어도 실전업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랑 일하는 것도 두렵고

사수 언니의 매서운 말투에 매번 눈물바람이었는데

한 번도 엄마에게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엄마는 나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

챙기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였다.



한 집안에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역할,

생존의 중심에 서서 어떻게든 버티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내 역할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가족


지난 결혼생활동안 가장역할을 한 전남편 덕에

그 짐을 잠시 내려놨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또다시 시작.. 비슷한 상황의 되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땐 두 남동생들이 중고생이었다.


큰 동생은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막내 동생은 중학생이었다.


큰 아이가 현재 입시 중이고

둘째 아들 녀석이 중학생

과거와 겹치는 생각이 쓴웃음이 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의 나는 20살이었고

지금의 나는 딱 30살 더 많은 50이라는 나이다.


그때도 지금도 큰 돈벌이는 아니어서

매월 월급을 받으면 쪼개고 쪼개서

적금을 넣고 학원비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긴장상태를 놓지 않고 한 달을 살아간다.



내년 수입과 지출예산을 짜면서  

그렇게 지난 30년간 열심히 살았는데

여전히 팍팍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해졌다.



국민연금 25년 납,

올해부터 공무원연금 납입 1년 차


나를 위해 크게 뭘 써본 적도 없고

큰돈 들여 투자한 적도 없는데

내 삶이 참 기구하구나 싶다가도

그래도, 지금 기본적인 여유(?)를 가진 것은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원한 사람들은 모두 잘 풀렸다.

두 남동생도, 전남편도..

이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일까?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 아이들이 보이곤 하는데

나도 그런 류의 사람이었던 걸까?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내 인생이 이리 흘러온 것 같다.


글 쓰는 욕심은 반이상이 사라져 버렸다.

그 이유를 묻고 또 묻고 고민해 보니

사람을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걸 짐작해 본다.


얼마 전 강풀의 "조명가게" 드라마를 봤는데

인간의 대한 애정이 깊게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작 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데

끝없는 변명, 핑계, 시샘, 질투, 욕심 등

자신을 갈아 넣어 좋은 글을 쓴다 한들

비판하고 깎아내리고 삿대질하는 사람들한테 어차피 나는 상처받을 텐데...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사라지면서  

내 글을 써야햐는 목적도 퇴색되어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르게..

현재 상황을 잊고 싶을 때

좋은 작품을 보면서 힘든 상황을 극복한 적이 종종 있는데

나 역시 누군가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공존하는 걸 보면


계속 갈등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내 마음이 어디로 길을 찾을지 기다려볼 셈이다.  


올 한 해,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 하려 애썼던 나 자신을 칭찬한다.

나이 들어 새 직장에 적응하기 무척 어려웠는데

업무도 사람들도 많이 익숙해지기 위해 고생한 나를 칭찬한다.

큰아이의 고3 수험생활.. 묵묵히 곁을 지키며 응원해 준 엄마였던 나를 칭찬한다.

게임하고 말 안 듣던 아들과 갈등을 최소로 줄여가며 먹는 거 잘 챙겨줬던 나를 칭찬한다.

큰 아이 학원비를 쏟아붓고도 1년간 정기적금을 보았고 곧 만기인데..

알뜰하게 살아왔던 나 자신을 칭찬한다.

사람을 믿지 못해 더 이상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 했으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의지하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음에 감사한다.

순탄하지 않았던 친정가족들과도 적당한 관계의 거리를 찾아가며 잘 지내온 나를 칭찬한다.

여유 있지 않아도 지인들에게 올 한 해 소소하게 선물을 보냈던 나를 칭찬한다.


내년에는 가장역할, 엄마역할과 더불어

나 자신을 좀 더 챙기며 살아가야지 싶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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