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신뢰를 부여하는 법
좀 더 내 말에 집중하게 하고 싶고, 좀 더 내 말을 주의 깊게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해주기를 바랄 때.
다시 말해 상대에게 내 말이 신뢰 있게 다가갔으면 좋겠을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죠.
가장 흔한 방법은 '누가 말했습니다. 이러이러하다고.'라면서 권위 있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인데요.
해당분야의 권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료, 책 속 구절을 따오기도 합니다.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거고, 많이 사용도 해보셨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의 '점을 연결하라'라는 이야기라던지, 아인슈타인의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면서 다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미친 짓이다'라던지,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D. 수자의 시 구절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아예 여러 사람들의 명언들을 모아서 기사로 실은 신문도 있습니다.
새 출발 앞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명 인사들 명언 30 - 매일경제 2011.
이런 자료들을 잘 모아두었다가 적재적소에 쓰면 딱 좋겠다 싶긴 한데.. 그런데 말이죠, 이 방법이 잘 들어맞을 때도 있고, 전혀 터무니없게 다가갈 때도 있거든요. 쓰기에 정말 쉬운 방법이지만, 사실 효과는 100% 보장할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원자로 치러보고 또 면접관으로 주관을 해보면서 면접에서 가장 지루하거나 혹은 가장 극적인 순간이 '자기소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문장이 딱 나오자마자 하품을 할 수도 있고, 귀가 쫑긋해지기도 하거든요.
하품이 나온다는 건 앞서서 몇 시간 동안 혹은 몇 년 동안 들었던 똑같은 문장을 또 시작한다는 이야기일 테구요, 쫑긋해진다는 건 막 무슨 블록버스터 영화 예고 같은 그런 자기소개는 아니더라도, 명료하게 인상을 남겨줄 수 있게 말한다는 이야기지요.
문제는 이 '명료함'이 참 어렵다는 것이고, 자칫하면 하품이 나오고 마는데요, 지원자로서 면접을 보러 가면 아무래도 주눅 드는 입장이잖아요. 나보다 훨씬 경륜이 높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가진 역량을 자랑한다는 게, 이 회사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어필을 한다는 게, 참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합니다.
사실 신입사원이 되면 처음부터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잖아요. 대학에서, 또 다른 사회경험을 통해서 그동안 뭘 배웠나 싶을 만큼.
아나운서 지원자들이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목소리 교정 훈련을 하고, 뉴스원고 읽기 연습을 하고, MC 멘트 연습을 하고, 옆에서 보기에는 바로 방송에 투입이 되어도 괜찮을 것처럼 보여도, 신입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교육을 시작합니다.
복식호흡 훈련, 발성연습, 그러니까 아나운서가 되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시작한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때 받았던 첫 교육부터 다시 받습니다.
저는 지역방송에 입사한 터라 방송 투입이 빠르게 되긴 했지만, 현업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녹음실에 혼자 들어가 발성연습을 하고, 뉴스원고를 읽고, 녹음한 파일을 선배님께 드려서 검사를 받곤 했어요.
그러니 면접 자리에서, 선배님들 앞에서 '내가 이만한 역량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거죠.
그걸 생각하다 보니, 더욱 주눅이 들게 되고, 그래서 권위를 다른 데에서 빌려오면서 '내가 그걸 신조로 삼고 열심히 살아왔다' 정도로 얘기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또 느낌 오시죠? 누구나 다 알고, 깨달음을 주기에는 이제 신선도가 너무 떨어진 흔한 명언을 말해버리는 순간, 하품이 나오게 됩니다.
흔한 명언이라고 해서 다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 그 명언을 써야겠다면, 실제로 내가 증명해 낸, 믿을만한 사례를 같이 제시하는 게 좋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점을 이으라고 해서 정말 이런이런 점을 이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오더라. 이 명언은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나 다 증명해 보이지는 못했을 거다. 나는 해냈다.' 정도의 자신감이라면 괜찮겠죠?
명언까지 빌려오지는 않더라도, 너무 흔한 비유를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많이 써보면서 실패해 봤고, 취업준비 코칭을 하면서도 '아직도?' 하면서 많이 봤던 문장.
"저는 oo 같은 사람입니다."
특히 아나운서나, 승무원 쪽 준비하시는 분들께서 '저는 햇살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비유 문구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면접은 문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돼요.
저도 문과 출신이라 자꾸만 이야기가 감성적으로 흘러서 이걸 고치느라 참 애를 먹었는데요, 면접은 철저히 주장과 근거로 이어져야 하더라고요. fact위주로!
"면접관들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서는 감정을 건드려야 한다면서요?"
라고 물어보실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그 이야기는 말에 리듬을 넣고, 강조하는 부분을 두드러지게 표현해주는, 소리 자체의 음악적 요소를 이야기하거나, 표정, 제스처 같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쪽 이야기입니다. 말의 내용이 감성적이어야 한다던가,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면접관을 절대 모호함에 빠뜨리면 안 됩니다. 명언도 그렇고 비유도 그렇고 굉장히 주관적이잖아요? 각자가 정의하는 관념이나 개념이라는 것이 정말 다릅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무조건 경험, 근거 위주로 재질문이 들어오게 하라."
사실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모호한 의미를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흐를수록 면접관의 생각과 멀어질 수도 있거든요.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다르게 사는 하루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성실하게? 본인은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성실'과 '다르게'의 의미가 같은 건가요?.... "
이런 식으로 수렁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러니 모호함은 에세이에서 풀어내고, 면접에서는 믿을만한 수치로 신뢰를 얻어냅시다. '나는 어떤 역량이 있고, 어떤 경험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만큼의 유의미한 수치 변화를 이뤄냈다'라고.
여기서 통계는 스토리화하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10%'보다는 '열에 하나'는 같은 표현이 더 쉽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죠. 그렇겠죠?
물론 이 방법은 목적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좀 더 수치상으로 돋보이고 싶을 때는 숫자를 제시하고, 이해를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스토리로. 이해되시죠?
마지막으로 내가 설득되지 못할 것 같은 내용에는 상대가 절대로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웃는 연습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호감 가는 미소를 만들 수 있을까' 연습해보신 분들 계실 것 같은데요, 연습을 해도 이게 잘 되고 있는 건지 아직 아닌지 모를 때가 많죠.
그걸 판단해보려면, 내가 나를 봤는데 웃는다? 그러면 잘 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웃는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봤는데, 슬며시 내가 미소 짓고 있더라 하면 연습이 잘 되고 있다는 의미인 거죠.
설득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뭔가를 주장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아닌지인지 상대의 관점에서 판단해보는 거죠. '내가 봐도 이게 말이 안 된다?'라고 한다면 아무리 좋은 자료를 덧붙여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동아TV에 합격한 적이 있어요. 앞선 글은 계속 실패담이었는데, 이번엔 합격담이죠? 포항 MBC와 같은 시기에 합격이 되어서 회사를 정식으로 다니지는 못했지만, 이 회사에는 참 신기하게 합격이 되었습니다.
서류전형이 통과되고 면접 날짜가 잡혔는데, 이메일이 아니라 전화상으로 일시를 전달받았어요. 문제는 담당자분이 11시라고 알려주셨는데, 저는 1시라고 들었고요, 혹시 잘못 들었을까 봐 재차 "1시 맞나요?"라고 물었는데, 담당자분은 이때에는 11시라고 들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네 맞습니다."라고 확인을 해주셨죠.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라는 주장의 전형적인 실례이기도 할 텐데요, 여하튼 저는 모든 지원자들이 면접을 다 치르고 돌아간 1시에 혼자 면접장에 도착했습니다.
담당자분 :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 : "면접 보러 왔습니다."
담당자분 : "네? 면접 다 끝났는데요?"
저 : "네? 1시라고 전달받았는데요?"
어정쩡하게 서 있었던 제 모습이 마침 점심을 드시고 들어오셨던 회장님의 눈에 들어갔어요. 다행히 이왕 온 김에 이야기나 해보자고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셔서 실무면접도 아니고 바로 회장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회장님(사장님이 아니고 회장님이라는 직함을 쓰시더라구요. 정확한 직위 구조는 제가 그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은 철저히 팩트 확인 위주로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대학을 갓 졸업했으니 사회경험은 없다고 봐야 할 거고, 그럼 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성적이나 동아리 활동이어야 하겠다'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학업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고등학교는 어디를 나왔나, 그때 성적은 어땠나, 대학 때 성적은 어땠나, 공부를 어떻게 했었나, 공부는 뭐라고 생각했었나, 동아리 활동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등등
명언이나 비유, 인상 깊은 포부 같은 건 생각도 안 날 만큼 팩트체크만 간략하고 빠르게 해 드렸네요. 물론 그 체크 속에 자기소개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겠지만요.
여하튼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을 했고, 방송 진행과 더불어 프로그램 기획과 마케팅 업무까지 할 수 있도록 선임에게 교육을 지시하셨습니다.
신기하죠? 면접 당일 지각까지 했는데, 바로 그날 합격에, 기획에 마케팅 교육까지?
입사지원을 시작하고 처음 합격 소식을 들었던 곳이 동아TV었어요. 회사에서 나와 삼성역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그때도 이야기했었어요. "엄마, 나 어떻게 합격한 거지?"
대단한 자기소개나, 포부를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합격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제 학업성적이 아주 좋았던 것도 아니니 공부를 잘해서 합격한 것 같지는 않고요, 팩트 위주의 간결하고 명료한 대답이 좋은 인상을 주는 것에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지각을 했지만, 분명히 면접일시를 재차 확인했다며, 근거를 대는 당당한 모습? 그 점도 어이없지만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모르겠어요. 이 부분은 농담입니다.
자, 정리하자면, 내 말에 신뢰를 부여하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고, 그 방법으로 명언이나 널리 알려진 글귀 등을 인용하면서 권위를 타인에게서 빌려오는 것은 좋은 방법이나, 목적에 따라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이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취업시험 실패담과 약간의 합격담을 곁들여 면접 이야기, 말하기 이야기를 쭉 들려드리고 있는데, 재미있으신가요?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