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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라 Jul 28. 2022

제주 한달살이 vs 보름살이

두 번째 제주살이를 시작하며



한여름 제주살이




제주로 떠나는 날 새벽, 1년 전 기록을 찾아보다 놀랐다. 달력에 적어 넣은 장소들을 눈으로 읽으니 그때 그 시간 속으로 순간 이동이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 노트를 채웠다. 1년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다시 읽으며 기억을 소환한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다는 건가? 한달살이 이후 들추지 않았던 기록들과 함께 다시 여행을 떠난다. 작년에는 한달살이, 이번엔 보름살이다.






왜 제주일까?



스무 살에 처음 제주도에 다녀왔던 것 같다. 그냥 좋았고, 누구나 그럴 테지만 갈 때마다 좋았다. 여행이라면 무조건 좋지만 비행기 타고 가는 제주라면 더 좋았다.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면서 거의 매년 제주도에 다녀왔던 것 같다.


"나 나이 들면 제주도에 집 짓고 살래-"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언젠가는 그러고 싶지만, 그 꿈은 점점 작아져 "한 달이라도 살아볼래-"로 바뀌었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라있는 제주 한달살이를 작년에 드디어 감행했다.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여행이 힘들다나 뭐라나. 마지노선이라 생각했고 과감히 사무실에 휴직을 신청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방학과 어른들 휴가가 있는 7,8월 뜨거운 여름으로 정했지만 후회는 없다. 그렇게 떠난 제주살이, 나는 왜 제주에 살고 싶었나?



하늘이 좋고 바람이 좋고 바다가 좋다. 어딜 가도 하늘이 보이고,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불고, 조금만 가면 바다가 있다. 생각해보면 20년 전이 더 좋았다. 사람은 더 적었고 초록은 더 많았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종종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갈 때마다 많이 변해있다.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놀기 좋게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의 핵심은 자연이란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파랑과 초록이 가득한 곳, 바다와 하늘과 오름이 있는 곳이다.




보름살이를 시작하며


늘 그렇듯 여행 전엔 분주하다. 작년엔 더욱 그랬다. 한 달 동안 쉬려고 생각하니 끝내 놓을 일이 어찌나 많던지. 한 달이란 공백을 미리 채우기 위해 두 배로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몇 가지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여행 가서는 뭐 하기가 싫어 막판에 다 듣느라 혼났다. 막상 여행 준비는 별로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어디어디 가고 싶은지 메모해두고,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주 여행책 하나를 리뷰하고 그것 하나 의지해서 제주도로 떠났다.



그런데 어쩌지. 이번엔 준비를 더 못했다. 한 번 다녀왔으니 믿는 구석이 있달까. 준비할 게 있나 싶다. 쇼핑은 주말에 잠깐 하고, 짐 싸는 것도 하루 전에 후다닥. 작년에 만들어둔 리스트를 조금 수정해서 뺄 거 빼고 넣을 거 넣어서 후딱 해치웠다. 회사일도 바빠져서 집에 오면 조금 쉬고 아이들 챙기기 바빴던 것 같다. 하던 대로 책 읽고 이것저것 하면서 걱정 없이 보냈다. 가고 싶었는데 작년에 못 갔던 곳들과 정말로 다시 가고 싶은 곳들을 가보지 뭐.




한달살이와 보름살이


작년엔 휴직하고 꽉 채운 5주를 보냈는데 이번엔 휴가와 연차를 붙여 15일이란 시간을 얻었다. 아 짧다 짧아. 그런데 이렇게 부담이 없는 걸 보면 한 달이란 시간보다는 훨씬 여행다운 느낌이다. 한 달을 살기 위해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 등 일상을 해결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집을 한 달 임대했기에 밥을 해 먹어야 했고 그러려니 식용유와 기초적인 양념, 주방 살림살이 등 필요한 게 많았다. 1박 2일 캠핑 갈 때야 조그만 양념통에 가져가면 되지만 아무래도 한 달이니까. 화장품이며 마스크며 챙겨야 할 것들의 단위가 다르다. 제주도엔 쿠팡이 되나? 궁금했는데 안된다. 하루 배송이란 이곳에 없다. 작년에 제주살이 중 급해서 잠깐 책을 주문했는데 다음날이면 도착할 게 며칠이 걸린다. 맞다. 여기 제주, 도서산간지역이다.


한달살이는 일상에 가깝고

보름살이는 여행에 가깝다


보름살이는 그래서 부담이 없었나 보다. 이번엔 밥은 되도록 사먹을 작정이다. 작년 여름 한 달 동안 너무나 즐거웠지만,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에 집안일까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일상의 의무를 조금 덜어야 쉴 틈이 생긴다. 함께 또 혼자의 시간을 벌려면 다른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누군가 그랬지. 여행 가면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바로 요리와 빨래! 요리와 빨래에서만 해방되어도 하루에 1~2시간의 여유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이번엔 조식이 나오고 청소를 잘 해준다는 펜션으로 정했다ㅎ




2021, 제주살이 하루 전날


작년 한 달 동안 한 권의 노트에 기록을 남겼는데 그 첫 페이지를 펼쳤더니 피식 웃음이 난다. 한달살이를 시작하며 했던 다짐들.. 그 첫 번째가 "아무것도 안 하기"다. 꽤 진지하게 다짐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부럽다고 했던 것 같다. 떠나기 전 몸도 마음도 많이 바빴고, 나의 버킷리스트, 제주에 한 달 살기 가서는 아무것도 안 하기를 간절하게 실천하고 싶었다. 허나 이는 허황된 바람이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아무것도 안 한 시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들이 훨씬 더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제주살이에서는 아무래도 일상의 일들이 많기에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많을 수밖에.


2021년 7월의 기록





2022, 두 번째 제주살이를 시작하며..

2022, 나의 포켓 노트


작년에 제주에서 샀던 예쁜 노트와 스티커. 아끼고 아끼다가 (그래서 한 번도 못쓰다가) 이번에 가져왔다. 작은 사이즈라 들고 다니기 좋다. 소중한 추억이 깃든 노트에 기록을 남겨볼까? 이번 여름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다짐을 적어놓는다.


1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2 매일 아티스트 데이트 하기

3 디지털 디톡스

4 글쓰기


아이들도 한 살 더 먹었으니 조금 더 나를 위한 시간을 갖자.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고, 그냥 즐길 것. 얼마 전 시작한 아티스트 웨이도 계속된다. 하루 10분만이라도 온전한 나와의 데이트를 할 것. 그리고 폰과는 조금 떨어져서 지낼 것. 특히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카톡에 중독되었다. 이제 해방이다!



2022년 7월, 제주살이를 시작하며



그리고 미뤄두었던 글쓰기. 작년 가을, 브런치에 입문한 날 뛸듯이 기뻤는데 올해 들어 이곳엔 왜 글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매일 새벽을 꽉 채운 것 같은데 브런치에는 어떠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에 글을 써볼까? 쓰고 싶은 글은 참 많은데 어쩜 시간을 내기가 이토록 힘든 건지.



2022년 7월, 제주에서의 아침



동이 터오르는 거실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아이들이 도와주려는지 늦잠을 잔다. 오랜만의 브런치 접속. 느낌이 좋은걸? 이렇게 여유 있는 시간에 조금씩 기록을 남겨야지. 이렇게 기쁨 충만하게 현재를 살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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