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울려라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이유
종이 울리면 그제야 눈을 뜬다. 느릿느릿 일어나 교실 뒤를 향한다. 사물함을 뒤져 교과서를 꺼낸다. 다시 느릿느릿 자리로 온다.
같은 시각. 종이 울리면 교무실에서 출발한다. 잰걸음으로 복도와 계단을 지나 교실문을 연다. 교탁 앞에 선다.
왜 매번 내가 더 빠른 걸까.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를 반긴다. 기다렸다는 듯.
"선생님,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선생님, 물 좀 마시고 와도 돼요?"
"선생님, 배가 아픈데 보건실 좀..."
다음 달이면 겨울방학인데, 3개월만 지나면 고2가 되는데. 왜 아직도 이러는 걸까.
한두 명 편의를 봐줬더니 교실 밖으로 나가야 될 이유를 순서대로 발표할 기세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건 이 녀석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분위기가 유난히도 산만하던 어느 학급. 화장실 가겠다던 아이들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단호한 내 표정을 보더니 두말 않고 자리로 가서 앉는다. 수업을 하면서도 별 문제없나 싶어 수시로 살폈다. 생리현상을 억지로 참게 하는 게 아동학대는 아닐까. 혹시라도 불상사가 생기진 않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앉아있다. 체념한 자의 평정심인가, 아님 말고 하는 무모한 도전이었던가.
수업을 10분 일찍 끝낸 어느 날. 내내 엎드려 있던 L이 언제 일어났는지, 교탁 앞으로 걸어왔다. 비밀스럽게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1초 고민하고 똑같이 속삭였다.
"응 안돼. 자리에 앉아."
우리 둘의 은밀한 속삭임은 고요한 교실 전체에 퍼졌고, 아이들은 배를 쥐고 웃었다.
L은 멋쩍게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수업이 끝나고 남은 시간은 자습하라는 말과 함께 조용히 손을 드는 반장 K.
"선생님,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음.. 수업이 끝났으니 그럴 수 있지. 수업도 집중해서 잘 들었잖아. 그래.
화장실에 보내줄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K는 그걸로 충분치 않았나 보다.
"저 너무 졸려서 세수 좀 하고 올게요. 잠 좀 깨려고요."
그래.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녀오렴. 가서 스트레칭도 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와.
잠시 후 말간 얼굴로 들어온 K는 남은 시간 동안 반짝거리는 눈으로 공부한다.
고백하건대 나도 수업 중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잠시 다녀온 적이 있다. 맹세코 쉬는 시간에 놀거나 자느라 미룬 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