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의 내신 이야기
내신(명사)
1. 상급 학교 진학이나 취직과 관련하여 선발의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지원자의 출신 학교에서 학업 성적, 품행 등을 적어 보냄. 또는 그 성적.
2. 인사 문제나 사업 내용 따위를 공개하지 아니하고 상급 기관에 보고함. 또는 그 보고. 보고
주로 학교 시험성적을 뜻하는 의미로 내신이라는 단어를 써왔다. 사립 고등학교에서 6개월간 근무할 때도 내신은 그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공립 고등학교 교무실에 있으면서, 또 다른 의미의 내신이 많이 쓰임을 알게 됐다.
"선생님 이번에 내신 써요?"
"내신 써야 되는데, 어디로 쓰지?"
인사 문제를 상급 기관에 보고한다는 그 내신. 교사는 5년마다 근무 학교를 옮긴다는 기준에 의해, 또는 여러 사정에 의해 근무지 이동 신청을 할 때 내신을 쓴다고 표현했다. 집 가까운 곳에 결원이 생긴대서, 지역만기가 돌아와서 등등 저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고민은 비슷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광역시가 아닌 도의 경우, 지역 범위가 넓어서 내신을 쓰는 교사의 불안과 긴장감 또한 높았다. 최근 5년간 근무하면서 쌓은 점수를 반영해 장학사가 최종 배정한다고 했다. 이때 주소지와 가족관계를 최대한 고려하는데,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단다. 고등학교에서 중학교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본인의 교과목이 중점인 학교에 가게 될 수도 있다. 교내 학폭이 많기로 유명한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집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으로 갈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도 내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오래 근무한 교사에게 고등학교의 장점을 물었다.
1. 중학교보다 수업 시수가 적다.
2. 중학교보다 생활 지도가 수월하다.
3. 중학교보다 비담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고등학교의 단점은 뭔가 있을까.
1. 생기부 작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
2. 야자감독이나 방과 후 수업으로 퇴근이 늦다.
집에서 가깝지만 근무시간 내 생활지도나 수업시수 측면에서 강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학교가 나을지, 야자니 생기부니 해도 학생과 말이 통하는 고등학교가 나을지 고심하던 P 선생님. 어제 결론과 오늘 결론이 달라지는 모습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며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교사는 정년퇴직까지 아무 걱정과 불안 없이 일하는 줄 알았다. 계약기간이 끝나갈 때, 다음 계약을 기약하며 불안 해하는 건 기간제 교사뿐인 줄 알았다. 근무연한이 끝난 교사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잠시 동질감을 느꼈다. 갈 곳이 있는 정교사들과, 그렇지 않은 기간제교사의 간극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건가.
기간제교사라서 좋은 점은 뭘까. 내신으로 고민하던 정교사에 비하면, 학교를 결정할 때 선택지를 확인하고 고를 수 있다. 다만 선택지가 한 개일 수도, 또는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이런 걸 도박이라고 부르나? 이 시대의 취업준비생도 마찬가지다. 원서를 낼 수 있는 곳은 채용하는 곳 전체이지만, 실제 본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니.
현재로선 유일하게 떠오르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 기간제 모집 공고가 났을 때 일하고 싶은 곳, 합격하면 근무하고 싶은 곳에 지원하는 특권 정도는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