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은 내가 만든다
사회생활하면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요가 갔다가 도시락 싸고 잠든다’라고 대답했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좀 더 색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취미가 없어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딱히 끌리는 건 마땅히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도 뜨개질을 만났다.
사실 엄연하게 말하면 처음은 코바늘(crochet)로 시작했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회사 동료가 코바늘 뜨개질로 만들어준 에어팟 케이스를 들고 왔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날 바로 그 친구가 추천해준 남대문시장으로 가서 바늘과 실을 사버렸다. 유튜브를 보며 하나씩 아이템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곧 손목이 아파왔다
직업상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캐드로 도면을 그리려면 엄청난 클릭이 필요하다. 항상 손목이 피곤하다. 퇴근 후 또 손목을 사용하는 코바늘을 하고 있으니 약 한 달이 지나나 손목에 무리가 왔다. 시큰한 느낌. 이렇게 하다가는 일에 지장이 생길게 분명했다.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그즈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대바늘로 쁘띠 목도리를 만들어보았다. 다행히 크게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았고 코바늘보다 더 재미있었다. 더 잘해보고 싶은 느낌. 고수가 되고 싶은 느낌. 성취감이 컸다.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였다.
목도리나 모자 말고 이왕 대바늘을 시작했으니 바로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 기억 속 뜨개질로 만든 니트들은 무늬가 화려하고 빈티지함이 묻어났었다. 하지만 좀 더 찾아보니 뜨개질로도 충분히 모던한 니트를 만들 수 있었다. 직장인이라 온라인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스를 신청했다. 위에서 아래로 떠내려가면 되는 타입의 니트라 쉽고 재미있게 약 3주 만에 완성했다.
이후 니터(knitter:뜨개질하는 이들을 지칭한다)들의 최대 사이트인 레이블리 (https://www.ravelry.com/)에 가입해서 영문도안을 보고 여러 벌 떠보고 있다. 한글로 된 도안은 이 사이트에서 구할 수 없지만 국내 뜨개질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
반년 넘게 뜨개질을 해오면서 4개의 니트를 만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3개. 마음 같아서는 빨리 완성하고 싶으나 퇴근 후 밥 먹고 운동하고 씻고 도시락도 만들면 보통 10시가 넘어버린다. 그러면 종종 12시를 넘겨 자곤 한다.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뜨개질이 좋은 이유를 적어 보자면,
인스타그램에도 #knitting is my therapy #knitting is my yoga #knitting is the new yoga 같은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꽤 된다. 전 세계적으로 뜨개질을 하며 심신의 안정을 추구하는 니 터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요가는 동작을 할 때마다 본인의 호흡에 집중한다. 움직이는 몸에 집중하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는다. 뜨개질도 마찬가지다. 뜨개질하는 동안 오롯이 나와 뜨개질하는 대상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서도 집중력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작년부터 서서히 ‘대량 생산된 옷을 소비하는 것’에 대하여 경각심을 느꼈다. 옷을 구입하고 입는 동안 만족과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몇 번 입다 보면 “왜 내 옷장엔 입을 옷이 없지?”라며 또 소비를 한다. 이렇게 소비의 이유를 만들어내 새로운 옷을 산다. 전에 입었던 옷은 입게 되지 않아 묵혀두다 헌 옷 폐기함에 버린다. 버려진 옷들이 산처럼 쌓여 자연을 파괴하며 소각되거나 땅에 묻힌다. 또한 열약한 조건에서 값싼 옷을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다. 대중이 소비를 하면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고 기업만 더 배불러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반면 뜨개질은 나의 노동력을 통해 내가 입을 니트를 만드는 행위다. 몸에 딱 맞는 맞춤 니트를 만들기 때문에 사이즈 실패 확률도 낮다. 또한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들어 매일 입고 싶다. 크롭으로 만들고 싶으면 몸통 부분을 짧게 뜨면 된다. 소매를 8부로 입고 싶으면 소매를 짧게 뜨면 된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옷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뜨개질하는 실(yarn)은 정말 다양하다. 가장 크게 분류를 해보자면 합성섬유와 천연섬유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천연섬유는 식물섬유와 동물 섬유로 나눠진다. 그중 동물 섬유들로 니트를 만든다. 양모(wool) , 산양모(모헤어 mohair, 캐시미어 cashmere) *새끼 염소의 모헤어는 키드 모헤어, 낙타모(알파카 alpaca) , 토끼털(앙고라 angora) 을 사용한다. 보통 시중에 판매되는 스웨터나 풀오버를 살펴보면 동물 섬유와 함께 아크릴 같은 합성섬유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합성섬유를 사용하는 게 모두 좋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최대한 합성섬유의 사용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울 100%나 울+캐시미어같이 천연섬유끼리 합사 된 실을 사용해서 뜨개질을 한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자연과 환경을 배려하니 행복하다.
우연히 시작한 뜨개질이 평생 취미가 되었다. 요즘엔 도안을 구입해 다른 작가님들이 디자인한 니트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디자인한 니트를 만들기 위해 제도 클래스를 수강 중이다. 200일 안에, 서른이 되기 전 내 디자인을 도안으로 만들어 보는 게 목표다. 느낌이 좋다. 오늘도 퇴근하면 모헤어로 뜨고 있는 가디건을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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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