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by Haein


며칠 동안 극심한 두통과 이명 현상, 메스꺼움에 시달렸다. 비슷한 증상을 종종 겪어왔다. 원인은 알 수 없다.

너무 피곤해서, 혹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원인을 모를 때의 원인, 혹은 모든 것의 원인. 하나는 몸을 시달리게 해서 하나는 정신을 시달리게 해서. 두통과 메스꺼움이 심해지면 일상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그럴 때 나는 만사가 귀찮고 동굴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말할 기력도 없고 그 어떤 것에도 반응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에너지가 바닥이니까.

그런데 그러면 아메드는 금세 눈치를 챈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처음 만났을 때 아메드는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아프면 나를 그냥 내버려 둬.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마. 혼자 쉬게 해 줘. 그게 네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이야.”라고 말했을 때 머리로는 알았다고 했지만, 행동으로는 쉽지 않았다. 아메드의 행동 패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말이 없어지고 메신저에 아주 간단한 대답만 남기면 아메드는 어딘가 불안을 느꼈다. 연습한다고는 했지만 그런 불안은 쉽지 않았으리라.

어제도 내가 “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잘게”라고 하자 아메드는 “알았어. 잘 자”라고 했지만

일어나서 “잘 잤어?”라고 메시지를 남기자 바로 죽을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알렉산드리아로 가고 있어.”

“왜?”

“직접 모든 걸 해결하려고.”

그러니까 아메드는 자신의 이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

그리고 말했다.

“네가 아프면 쉬게 해줘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아주 간단한 ‘안녕. 뭐 먹었어?’ ‘몸은 괜찮아?’이런 말을 건네주는 거 어려워? 단 1분이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나는 너랑 단절되는 느낌이 너무 어려워.”

“왜? 우린 항상 연결되어 있어.”

“알아. 그렇지만 연결 말고 소통과 대화 말이야. 네가 갑자기 소통을 일방적으로 멈추면 나는 ‘어떡하지, 내가 뭘 해야 하지?’하면서 머리가 하얘진단 말이야. 다른 사람은 그러거나 발거나 관심 없는데, 너한테는 그런 게 안된다고. 그러면 나는 순식간에 나와 삶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

불안해진다는 의미였다. 사실 전혀 생각 못 했다. 몸이 아프면 사람은 이기적이 된다. 오직 자신만 챙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이라고, 그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메드는 언제나 자신이 느끼는 것을 100% 솔직하게, 그리고 돌려 말하는 법 없이 말해서 그가 뭘 느끼는지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미안해. 내가 생각 못 했어. 앞으로는 내가 신경 쓸게.”

그러자 아메드는 금세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진짜? 고마워. 이해해 줘서 고마워” 하고 웃었다. 조카가 다섯 살 때 나는 그런 게 참 신기하고 부러웠다. 사소한 일로 화나고 속상해했다가도 “이모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화 다 풀리면 다시 말 걸어줘.” 하면 10초도 되지 않아서 “그런데 이모.”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밝아져서 오는 것 말이다. 어떻게 저렇게 모든 용서가 쉽고 어떻게 저렇게 금세 다시 밝은 에너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분노를 몇 년씩 품고 용서하지 못하고 그래서 관계는 늘 단절되곤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 다섯 살 조카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상태가 변해?”

“응? 왜? 네가 안 그런다고 했으니까 이제 나는 행복한데.”

어린아이 같은 면을 사랑했다. 어떤 때에는 할아버지같이 삶과 인간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울고, 매 순간 맑고 투명해서 금방 사랑으로 돌아올 줄 알고, 겁이 많아서 어처구니없는 걱정을 100만 가지씩 하지만 내가 발끈해서 “그만해. 걱정으로는 아무 데에도 이를 수가 없어. 게다나 네가 하는 걱정은 99.9999% 일어나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라고.”라고 짜증을 내면 “진짜? 알았어. 그럼 나는 이제부터 걱정하지 않을게.”라고 말하고 진짜 다음부터는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두통에 대해, 피곤함 혹은 스트레스. 둘 다였다. 이사를 생각하고 집을 구할 생각을 하니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계속 서울에서 살아와서 대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내 관계와 일의 영역의 모든 게 서울에 있다. 아메드의 수업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이니 아메드만 대전에 가고 나는 서울에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또 그런 불안정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게 내키지 않는다. 아메드는 한국에 오직 나밖에 없는데 아메드가 자리 잡을 때까지는 곁에 붙어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집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가진 예산에서 필요한 가구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알아보는 것까지 다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시간도, 체력도 없었고 이 모든 걸 내가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도 모르게 어깨를 누르고 있었나 보다. 아메드는 내가 늘 생각과 계획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았다. 내가 앓아눕자 아메드는 전화를 해서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내가 돌아가면 그때 함께 이야기해”

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늘 다음 스텝을 떠올렸다. 쉼 없이 계획을 세웠다. 아메드와 밥을 먹는 동안에도 밥을 먹고 난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아메드는 늘 “현실을 느껴. 현실을 즐겨. 다음 스텝 생각하는 걸 멈춰봐. 이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 느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누군가는 생각을 해야 하잖아. 네가 안 하니까 내가 하는 거야.”라고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나는 내 계획이 참으로 무 쓸모 하다는 걸 알았다. 늘 아무 계획이 없어 보이는 아메드는 마지막에 자기만의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종종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내가 죽을힘을 다해 계획하고 준비한 방법들이 아니라(모든 게 실패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전혀 얘기치 않은 방법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통해 이뤄졌다.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건 아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원하는 결과를 굳건히 믿지만 손아귀에서 힘을 빼는 걸 연습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걸 원해. 그러니 우주야, 이제 우리를 위해서 네가 일하렴. 내가 허락해 줄게.”라는 태도랄까.

그리고 그렇게 힘을 빼고 굳건히 결과를 믿었을 때 결과는 늘 우리에게 정확하게 왔다. 우리는 책장 한편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써 놓았다.

“We will meet the best way in love"

처음에는 믿음을 위해 써 놓은 것인데 이제는 완전히 믿어진다. 우리가 그 문장을 잃고 반복하지 않았어도 반보되는 경험 속에서 나는 완전히 믿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우주에 주문하고 좋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명상을 하고 산책을 하고 사랑 안에 머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습관이란 무서워서 아메드가 없는 며칠 동안 나는 다시 내 습성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계획 세우고 정보를 찾고 내 하찮은 지식으로 용을 쓰면서 최고의 길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시간도 여력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최선의 핵심은 내가 나를 건강하게 하고 사랑 가운데 머물고 맑고 밝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어도 못하고 경제적 기반도 취약한 아메드가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모든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메드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마. 내가 가면 같이 이야기하자“라고 했을 때 나는 바로 ”응!“ 하고 대답한 뒤에 아픈 몸을 일으며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리고 명상을 했다. 기분을 좋게 하고 사랑 가운데 머무는 것. 그게 내가 제일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좋은 길을 만나러 가야지.